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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기획] 음악실험실_실험음악, 기성을 전복시키는 시도4

                                                           "완벽하게 음악이 승리하는 순간"

 

글 : 서정민갑(대중음악 의견가) bandobyul@hanmail.net

 

 

 

 

 

뒷세대가 앞세대를 밀어내듯 뒤에 나온 음악들이 먼저 나온 음악들을 밀어낸다. 먼저 나온 음악이 있었기에 장르의 양식과 스타일이 생겨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음악들이 과거의 전통을 끊임없이 바꾸지 않았다면 세상의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많은 음악은 실험음악이며, 기성을 전복시키는 시도이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떤 음악은 과거에 영합하고 심지어 과거로 퇴행하기도 하지만, 어떤 음악은 과거와 단절하며, 어떤 음악은 과거에 기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 미묘한 차이가 쌓이고 쌓이면서 계단 같은 변화들이 하나씩 만들어진다. 음악의 역사는 크고 작은 변화가 만들어냈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계단의 연속이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중음악의 변화 가운데 가장 뚜렷한 변화는 비트와 데시벨, 노이즈의 차이가 아닐까? 초기의 팝과 현재 일렉트로닉 음악의 비트 사이에 존재하는 비피엠(BPM, Beats Per Minute)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과거 음악의 비트는 지금 들으면 지루할 정도다. 데시벨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주인공 마이클 제이. 폭스가 일렉트릭 기타를 치다가 록킹한 연주를 선보였을 때 과거의 인물들이 황당해했던 장면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지금은 록 음악에서 흔히 구사하는 주법도 과거의 감각으로는 귀 아픈 소음으로만 들렸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록과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노이즈 역시 처음에는 음악으로 들렸을 리 만무하다. 지금도 음악이 고상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이런 음악을 시끄러운 소리로만 여기지 않는가.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에프엑스의 노래를 100년 전에 들려주었다면 천둥번개 치는 소리 같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음악의 역사는 음악이 될 수 있는 소리의 스펙트럼이 계속 확장된 역사였다. 지금 소수만이 열광하는 노이즈 음악이 나중에는 가장 팝에 가까운 음악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현재 가장 빠른 음악, 가장 시끄러운 음악, 가장 격렬한 음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귀를 강하게 자극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뜻이 아니다. 지금도 의도적으로 소리를 찌그러뜨리는 음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음압을 조정해 의도적으로 강한 자극을 만들어냄으로써 오히려 소리의 미세한 차이를 놓치게 만들어버리는 음악들이 음악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사실 비트와 데시벨, 노이즈의 사용은 음악적 완성도와 무관하다. 오히려 지금은 비트와 데시벨, 노이즈를 높여가는 음악보다 낮춰가는 음악들이 더 새롭게 느껴질 정도로 음악적 실험이 만연해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를 둘러싼 삶의 속도 자체가 과거의 비트와 데시벨, 노이즈를 사용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한 시간이면 서울에서 제주도로 훌쩍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과 손전화는 우리를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여 주는가. 손전화에 연결된 스마트한 시스템은 서로 연락하고 자료를 주고받고 물건을 사고파는 등등의 행위를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할 수 있게 만들어버렸다. 그 속도를 비트로 표현한다면 어떤 비트로도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의 기계 문명이 만들어낸 소음의 데시벨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한 인간이 날마다 접하게 되는 정보의 양도 실로 엄청나지 않은가. 과거 평생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땅을 껴안고 살았을 절대다수의 인민을 지배한 속도와 고요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음악 역시 더 빨라지고 더 시끄러워질 수밖에. 현실이 이렇게 빠르고 시끄러워지는데도 음악이 느리고 조용하기를 바라는 것은 음악만이 농경사회의 전통, 그러니까 포크 음악의 흐름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가장 빠른 음악이라면 이디엠(EDM, Electronic Dance Music)을 찾아야 하고, 가장 시끄러운 음악이라면 노이즈 음악을 찾아야 하며, 가장 격렬한 음악이라면 헤비니스 음악을 찾아야 할까? 한국에서 좋은 이디엠 음악을 하는 디제이와 뮤지션이 이미 적지 않고,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임에도 꾸준히 노이즈 음악을 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인디 신을 중심으로 헤비메탈과 하드코어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 역시 많다. 이들이 대중음악의 형식을 보다 전위적으로 바꿔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 역시 인간의 감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이 느낀 것 없이 만들 수 있는 음악은 어디에도 없다. 감정적 동요에 대한 표현과 공감의 욕구가 바로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 아니겠는가? 물론 이제는 그 욕구가 바로 상품으로 물화 되지만 말이다.

 

그래서 빠르고 시끄럽고 격렬한 음악 중에서도 마음을 흔드는 음악에 주목하게 된다. 형식적으로 아무리 인위적인 설정을 한다고 해도 음악이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냥 기술과 소리의 집합일 뿐이다. 극단으로 향해가는 소리의 방법론이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박수를 받게 되는 음악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 중에서도 내게 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음악은 할로우 잰(Hollow Jan)이다. 하드코어와 포스트 록의 방법론에 기초한 밴드 할로우 잰의 음악은 자신이 기초하고 있는 음악의 특성대로 격렬하다. 보컬은 비명을 지르듯 격렬하고 기타와 드럼 역시 마구 긁어대고 두들겨댄다. 소리의 높이가 높고 간격이 촘촘하다고 할 수 있는 음악이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할 수밖에 없는 음악이다.

 

그러나 할로우 잰의 음악에는 분명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 세상에 헤비니스 계열의 음악은 무수히 많고 그들의 음악 중에서 명곡도 많지만 할로우 잰의 음악만큼 마음을 압도해 들어오면서 아프게 하는 음악은 흔하지 않다. 승리자가 되지 못한 이들의 패배감과 상처가 은유적으로 새겨진 노랫말과 비감한 멜로디를 결합하며 폭발하는 할로우 잰 음악의 서사는 극적이면서도 한없이 인간적이다. 기술적 장치를 활용하지 않으면 만들어낼 수 없는 음악임에도 보컬과 연주자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 모두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매달린 현을 기어이 건드리고 만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인간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슬픔과 외로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삶이 아무리 즐겁고 행복하더라도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혼자로는 어떤 운명도 세계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삶은 끝내 슬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할로우 잰의 음악만큼 처절하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음악은 드물다.

 

사실 할로우 잰의 음악은 이미 있는 록 음악의 어법을 그다지 많이 전복시키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로우 잰의 음악은 확실히 우리가 잘 표현하지 않고 잘 드러내지 않았던 우리의 무의식 같은 절망과 슬픔을 적어도 그들의 음악과 함께 있는 순간에는 수시로 전복시키며 드러나게 한다. 의식으로 통제하고 부정하던 감정들은 할로우 잰의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는 금세 목울대를 넘어 우리를 휘감아 출렁이게 하고 만다. 그 순간 우리는 그 어떤 사회적 지위와 역할, 계급과 성별, 나이를 뛰어넘은 그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 완벽하게 음악이 승리하는 순간, 그 순간을 일컬어 우리는 감동이라고 할 것이다.

 

음악의 역사는 이렇게 감동으로 흐르는 땀과 눈물방울들로 앞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다른가보다 얼마나 마음을 움직이는가이다. 다른 표현인 동시에 마음을 움직이는 표현일 때 음악은 비로소 음악으로서 새로움에 그치지 않는 힘을 획득하고 새로운 길이 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할 또 다른 방법을 알게 되고 또 다른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수많은 사잇길로 만들어지는 음악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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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기획] 거리예술 _ 거리예술의 다양성

 

글, 사진제공 : 임수택(과천축제예술감독, 한국거리예술센터 대표) sutaeksi@hanmail.net

 

 

 

 

거리예술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실로 거리예술은 어느 공연예술 장르보다 다양한 실험들을 시도하면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매년 거리예술축제에 가보면 이런 형식의 공연도 가능하구나 하고 자주 감탄하곤 한다. 프랑스국립거리예술연구소(horlemurs)가 펴낸 ‘거리예술의 미학’이라는 비디오에서는 거리예술을 8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중 연극 혹은 무용 등 형식에 따른 7가지 외에 딱히 어떤 형식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달라진 도시(The diverted city)” 편이 있다. 이에 속하는 공연들은 도시의 질서를 파괴하고, 자동차와 보행자의 흐름을 바꾸는가 하면 공공공간과 건물의 본래 목적을 변형시킨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질서를 조장하는 것은 아니고 허구를 지어냄으로써 익숙한 환경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델리스 다다(Délices Dada_프랑스)의 “D 코스, 가이드 방문”(Circuit D, visites guidées)에서 관객은 가이드를 따라 도시 관광에 나선다. 가이드는 안내를 하는 동안 도시의 갖가지 모습을 작위적으로 해석하고 이야기를 지어내 관광객이 된 관객들에게 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가 하는 안내는 전부 거짓이고, 아주 순진한 관객 외에는 모두가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관객은 그의 거짓에서 유쾌한 상상력을 확인하는가 하면, 때로는 현실에 대한 씁쓸한 풍자도 읽을 수 있다.

 

그룹 류드(Ljud Group_슬로베이나)의 “거리미술관”(Street Walker)에도 가이드와 비슷한 도슨트가 관객에게 미술관을 안내한다. 물론 미술관은 거리에 있다. 그렇다고 미술관을 거리에 옮겨놓은 것은 아니고, 거리의 갖가지 간판이나 물건 혹은 구조물을 미술작품으로 해석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설명 역시 모두 거짓이고, 관객들도 이 사실을 안다. 그러나 이들의 거짓된 엉터리 안내는 거리를 유쾌한 상상력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줌과 동시에 종종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해석을 지어냄으로써 현실에 개입하려는 예술을 제시하기도 하며, 또한 미술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다소 긴 이름의 원스텝 엣 어 타임 라이크 디스(One Step at a time like this)(호주)의 “거리에서”(en route)는 관객 한 명만을 대상으로 한다. 관객은 엠피스리(MP3)와 거기에 연결된 헤드셋을 제공받고,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지시하는 대로 길을 가고 음악을 듣는다.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들음으로써 그는 거친 현실에서 벗어나 감성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때로는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거리의 어느 전광판에는 광고나 경고 문구 대신에 아름다운 시(詩)가 흘러나온다. 헤드셋을 쓰고 있으니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읽게 된다. 텅 빈 옥상 주차장에서 홀로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음악을 듣다 보면 저절로 침잠해지기도 한다. 이동의 마지막은 아무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이루어진다. 그곳에서 관객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벽에 쓰게 한다. 그동안 음악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일깨워진 감성이 폭발한다. “**야 사랑해!”가 가장 자주 쓰는 문구이다.

 

오페라 파가이(Opera Pagai)의 “가까이 들여다보는 사파리”(Safari intime)는 관객을 좁은 골목으로 안내한다. 이 공연의 목적은 거리극을 표방했음에도 ‘거리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 공연에도 안내원이 있지만, 적극적인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흐트러지지 않게 흐름을 조절하거나 발견하기 어려운 곳을 가리키는 역할만 한다. 공연의 목적대로 관객은 ‘거리에서 볼 수 없는’ 집안이나 정원, 지하주차장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한다. ‘사파리’의 대상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와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창문에는 다음과 같이 안내문구가 적혀있다; “♀ 45세, ♂ 42세, 사내아이 10세, 아이는 오랫동안 부모와 함께 살지만, 10세 무렵이 되면 정신적으로는 부모 곁을 떠날 준비를 한다.” 주차장에서 사랑을 나누는 한 쌍의 젊은이, 방에서 수없이 속옷을 갈아입는 소녀, 경찰차 안에서 남의 편지를 뜯어보는 경찰, 성적 정체성에 방황하는 젊은이,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홀로 된 중년 남자 등을 볼 수 있다. 공연은 실제로 우리가 거리에서 볼 수 없는 갖가지 풍경들을 마련하고서, 인간이라는 동물의 숨겨진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

 

어느 광대는 왕복 6차선의 도로 한가운데에서 샤워를 하고 싶었다. “로빈슨크루섬”(호모루덴스_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작품에서 그는 교차로 한 가운데에 아주 작고 예쁜 오두막집을 섬처럼 세우고,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은 후 샤워를 했다. 다시 옷을 차려입으려는 찰나 옷이 오두막집 밖으로 떨어지고, 그는 옷을 집어 들기 위해 할 수 없이 극히 중요 부위만 가린 채 밖으로 나와야 했다. 관객들도 배우만큼 긴장했다. 한낮 큰길에 한 사내가 거의 벌거벗고 나타난 것이다. 옷을 주어 입은 그는 지휘를 하기 시작한다. 그의 지휘에 맞춰 준비된 음악이 흘러나왔다. 차량의 거친 소음이나 들리던 곳에 아름다운 음악이 크게 울려 나오는 것이다. 그의 이 행위가 용납될 리 없다. 이내 어디선가 지게차가 나타나 오두막집과 함께 그를 데리고 가버리고, 음악도 사라진다. 그 광대는 이를 통해 차량으로 점령된 삭막한 도로에 인간적인 면모와 아름다운 음악을 안겨주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 거리예술은 마치 봇물이 터져 나오듯 매년 아주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래서 종종 이런 형식도 가능하구나 하는 감탄이 나오는가 하면, 이런 작품도 거리예술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거리예술을 정립하려는 학자들은 매번 이러한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허덕인다. 유럽에서 1970년대 시작된 이래 1990년대 질과 양 모두 크게 발전한 ‘거리극’(street theater)은 2000년대 들어 영상예술이 합류하면서 ‘거리예술’(street arts)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그러더니 몇 년 전부터는 ‘공공공간 예술’(arts in public space) 등 다른 용어들이 아주 많이 등장했다. 용어가 이렇게 자주 바뀌고 또 여러 용어가 난무한다는 데에서도 우리는 거리예술이 얼마나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2012서울국제공연예술제 “거리에서” 참가기(블로그 참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ziayang&logNo=60200225502

 

원스텝 엣 어 타임 라이크 디스 홈페이지

http://www.onestepatatimelikethis.com/enrout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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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기획]예술협동조합 _ 4.협동조합 설립과 그 이후

 

 

글: 이은진(문화예술협동조합 연구원) jini0501@gmail.com

 

 

 

 

 

 

 

4. 협동조합 전환, 그 이후 - 풀어야 할 과제들

 

 

1) 문화예술협동조합 현황

2012년 문화관광연구원자료에 따르면 문화예술인들은 협동조합에 대한 인지도는 높으나 제도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전체 2,518개의 일반 협동조합 중 문화예술협동조합의 비중은 대략 370개소이고 이는 일반 협동조합 중에서 14.2%를 차지하는 것으로 비율이 높은 편이다.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이 5년이 지나면서 전체 인증 사회적기업 중 16%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설립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예술분야 일반 협동조합 현황>

사업 분야 / 업종

개소

사업 분야 / 업종

개소

문화, 문화예술

23

한지공예, 제조, 판매

7

교육, 문화, 문학컨텐츠

20

문예 아카데미

4

공연

28

댄스, 스포츠, 체육

48

공예 (생산,교육,판매)

23

디자인

20

도예, 도자기, 흙놀이

15

패션

3

미술은행, 아트마켓

4

출판

11

만화

3

광고, 미디어, 영상, 인터넷 관련

45

목공, 수공예

4

극장운영, 시설운영, 공방

10

사진

6

공연기획, 제작, 이벤트

15

전통 문화

3

마을공동체 기반 문화예술 활동

12

음악교육/악기제작/밴드지원/공동구매

4

마술, 마임, 단청문화, 예술상담

4

문화예술교육, 체험

13

문화관광, 여행

38

천연염색

7

합 계 

370

 

이렇게 많은 협동조합들이 설립되는 것을 보고 일각에서는 벌써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체 협동조합 중에서 정말로 조합원들이 필요해서 자발적으로 결성하고, 또 협동조합적 가치와 원리로 움직이는 곳이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개점 휴업 상태인 협동조합도 있다고 하고, 기존 조직에 이름만 바꾼 협동조합도 많다고 한다. 물론 이제 막 설립된 곳들을 두고 이러니 저러니 추측하기보다는 좀 더 두고 볼 일이긴 하다. 그리고 또 그러한들 어떠하겠는가? 자영업이나 벤쳐기업도 생겼다가 1∼2년 만에 문을 닫거나 망하는 곳이 허다한데, 협동조합이라고 다르겠나 싶기도 하다.

문화예술협동조합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이 되기 위해서는 꼭 챙겨야 할 필수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들을 짚어보고, 또 설립 이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자바르떼의 시행착오 경험을 토대로 풀어보고자 한다.

 

 

2) 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고려해야 할 문제들

자바르떼도 2007년부터 문화예술생산자협동조합을 목표로 하면서 생산자를 노동자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는데, 제도상으로 노동자는 4대보험을 적용한 고용관계로, 생산자는 개별 사업을 하는 사업자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합원 유형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니 조합원 유형이나 영리, 비영리라는 틀에 갇힐 필요 없이 공통의 필요를 가진 주체들이 모여서 다양한 상상력을 작동시켜 가며, 존재와 활동방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 후에 목적과 사업성격에 맞게 조합원 유형과 영리, 비영리를 선택하면 된다.

 

높은 관심 덕분에 최근 협동조합 설립에 관한 상담을 종종 하게 되는데, 쉽게 설립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의외로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설립 절차를 알려주면 되지만, 대부분 아직 준비가 안된 채 혼자 찾아오는 경우에는 몇 가지 필수 과정을 강조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이 맞고 같은 필요를 느끼는 파트너를 최소 3∼5명 이상 찾아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협동조합이 절실하게 필요한 지 확인해야 한다. 상담을 받는 분들은 대부분 혼자 먼저 급하게 생각하고 준비한 뒤에 함께할 파트너를 찾으려 하는데, 그러면 결국은 계속해서 혼자서만 뒷감당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설립동의자들이 모여 몇 차례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조건과 욕구를 솔직하게 논의해야 한다. 설립이 아니라 전환이라면 그 과정은 조직의 현 상태를 진단하고, 인적역량과 관계를 혁신하는 과정으로 삼으면 좋겠고, 마찬가지로 지역과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여 사업모델을 어떻게 연대할 지를 찾아봐야 한다. 협동조합은 지역을 떠나서는 성공하기 어렵고, 또 협동조직 간의 협동이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 필요하고, 또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비용이 얼마나 필요한 지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예산을 작성하게 된다. 이때 ‘나는 무엇을 얼마나 낼 것이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조합원 유형과 출자금이 결정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협동조합으로 갈 것인지, 사회적협동조합인지, 일반협동조합인지, 생산자협동조합인지, 노동자협동조합인지, 다중이해협동조합인지 자연스럽게 결정할 수 있다.

 

.조합원들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좀 더 지역사회와 공공적인 활동이 중요한 부분이라면 사회적협동조합을 선택하는 것이 다. 행정이나 인가과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일반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난 후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부각시켜 사회적기업으로 인가를 받으려는 분들이 많은데, 그럴 바엔 사회적협동조합을 준비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 그런 후에 좀 더 책임있게 결정하고 운영할 임원을 선발하면 된다. 누가 우리의 이해를 잘 대변하고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 내용들 정관과 사업계획서로 정리하면 설립 신고서를 작성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설립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기 위한 안정적인 수익모델이 있어야 하는데, 다들 여기서 다시 머리가 아플 것이다. 수익모델이라는 것은 얼마나 돈을 잘 벌 것인가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음악인들이 연습실을 공동으로 마련해서 운영하는 것이 필요라면, 공동으로 공간을 얻음으로서 절감되는 비용의 측면과, 각자들이 연습실 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최소 수익구조를 협동해서 마련하면 된다. 즉, 수익모델은 필요한 적정 비용을 산출하고, 그 만큼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필요한 비용이라는 게 누구나 다르겠지만, 협동조합이 되었다고 갑자기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화예술인 중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비용을 줄임으로서 수익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기존 사업을 어떻게 재배치하면 좋을지, 혹은 각자의 활동을 협동조합과 어떻게 연결시키고 공동의 사업으로 확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지역에서 이미 협동조합에 관해 이해하고 활동하고 있는 다른 조합의 조합원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해 가는 것이다. 결국 협동조합간 협동이 서로 믿고 팔아주고, 노동력 교환도 하면서, 돈으로 써야만 하는 영역을 줄이는 것이어서, 덜 벌더라도 삶이 불안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망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3) 협동조합 운영을 위한 논의 과정

자바르떼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지난 2월 7일 창립을 한 후 설립 신고서를 작성하는데 한 달, 문광부를 거쳐 사회적기업 진흥원에서 인가 심사를 받는데 두 달, 인가 통고 후 등기를 하는데 다시 한 달, 그 후에 조직명칭을 변경하고 각종 서류의 전환 변경 신고를 하는데 한 달. 모두 다섯 달이 걸렸다. 창립 이후에만도 그러한데, 전환 준비기간까지 생각해보면 8∼9개월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기존 회원을 교육하고 동의를 얻어 기존 사업을 모두 가져가려 하니 신규 설립에 비해서 비용과 시간이 3배쯤 들어갔다. 그러니 협동조합을 고려하면서 굳이 전환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면 설립을 하는 게 좀 더 쉽다. 하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충분히 고민하고 논의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후다닥 한두 달 만에 만들어도 어차피 설립 이후 조합 내에서 논의하고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즉, 사전에 겪든 사후에 겪든 필수 과정은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 전환, 창립을 한 자바르떼도 모임을 진행하고 발전 방향 논의를 하다보니 부딪히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3월부터 생산자 조합원들은 월 3회의 모임을 하면서 각자의 예술활동을 자바르떼의 새로운 사업으로 어떻게 연결시키고, 지속적인 수익구조를 만들 것인지 논의하기 시작했고, 몇가지 사업 제안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6월부터는 월 1회의 조합원 교육을 겸한 모임을 가졌다. 모여서 구체적으로 내년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런저런 논의를 해보니, 정말 자신이 절실히 필요해서 조합원이 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존 사업 관계 때문에 참여하기도 했고, 또 굳이 당장 사업적으로 결합할 건 없는데도 과거에 회원이었거나 직원이었으니 의리상 가입한 사람도 없잖아 있는 듯했다. 또 기존의 사업적 관성을 여전히 갖고 있다보니 새로운 조합원들이 참여하거나 끼어들 요소가 많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나고서 매달 모여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며 함께 즐거운 일들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조합원들은 지겨워했고, 참여율도 낮았다. 늘 나오는 조합원들은 나오지 않는 조합원들을 원망하면서도, 왜 나오지 않는지, 어떤 시간대로 옮기면 나올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고, 시간을 정해 공지하곤 했다. 그리고 생산자 조합원들은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이고 노동자 조합원들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하는 역할이라서 서로 이해관계가 달랐다. 생산자 조합원들에게 높은 강사비나 인건비를 지급하면 수익이 적게 남아 노동자 조합원들의 안정적인 급여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업의 집행권이 노동자 조합원들에게 있다보니, 생산자 조합원들이 어떤 경우는 ‘을’인 것도 같고, 어떤 경우는 고객인 것도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조합원 규약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듣고, 마침 올해 총회 때 다른 사안이 많아 진행하지 못한 자바르떼 조합원 규약을 같이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모여서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규약을 만들어 운영의 원칙으로 삼자는 제안을 했고, 두 달간 5회의 교육과 두 번의 워크숍을 통해 조합원 규약을 논의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들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운영 원칙을 각각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야 하니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렇게 조금씩 간격을 줄여가고 있고, 공통의 필요를 이끌어 내고 있는 중이다.

4) 협동조합은 대안적 삶의 가치를 실천하는 운동이어야

 

도대체 언제까지 논의와 교육을 반복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잎으로도 계속이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7, 80년대 민주노조가 설립되고 노조운동이 성장하던 시기, 조합원 교육과 소모임은 기본이었다. 다양한 소모임을 조직하고, 일상적으로 교육과 토론을 하면서 조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느끼고 공감했다. 나아가 논의의 내용이 임금인상에 머물지 않고 노동권의 문제와 사회개혁에 관한 부분까지 인식을 확장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좋은 재료는 문화예술이었다. 모든 조직은 교육과 소모임을 통해 탄탄해지고, 성장한다고 믿는다. 협동조합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유난한 건 아닐 것이다. 당연하게도 설립보다 운영이 더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문화예술이 고민할 만한 것인가? 대안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역시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첫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의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활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단순히 문화예술이 처한 현실만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 차별의 문제, 삶의 주체로서의 문제를 다시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그러한 고민을 해결하려는 과정을 통해 문화예술 활동의 가치를 증명하고, 잘못을 바로 잡고, 상품의 가격을 정하고, 공정한 무역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등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나타나겠지만, 이는 또 함께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협동조합이 하나의 운동으로서 펼쳐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산 뿐 아니라 소비의 영역에서도 대안적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확산할 수 있는 운동성을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산 영역에서만 만났던 노동자들을 소비 영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 지역이다. 또 나아가 기존 관계에서는 후원자이거나 경제적 이해나 참여가 없는 비영리단체의 회원이었다면, 조합원으로 재결합하여 경제적인 참여와 더불어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생산(창작)에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발전시켜갈 수 있다. 문화 창조와 향유의 주체로서 자기문화를 만들어가고, 또 스스로 필요한 예술 창작물의 맞춤 생산을 요구하는 수용자(소비자, 자원봉사자, 후원자) 조합원들은,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문화를 생산하는 문화예술 노동자, 생산자 조합원들을 지키는 것이 중요다고 여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협동조합이라는 조직 형식을 고민하면서 지역 안에서 비자본적인 삶의 방식을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함께 나누는 대안적 가치로 접근하고, 또 지역의 관계망을 새롭게 재구축하기를 바란다.

 

협동조합이 내 일상을 바꾸는 실천 방식으로 선택되고, 전체 삶의 영역에 걸쳐 협동적 삶을 살아가는 연대와 실천의 방식으로 채택되는 것은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공동체 내에서 협동조합적 삶 살기, 일상을 다른 가치의 삶으로 재기획하는 운동으로 만들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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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리다] 스파클생수_박종철

 

 글: 박후기(시인) emptyho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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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어떻노 부산살피기] 공무원이 띄우는 오래된 사진 한장_매우 사적인 관광지

 

글: 노진숙(공무원) jinsuknoh@hanmail.net

사진: 김은주

 

 

 

 

이십 년은 훌쩍 넘었을 법한 한 장의 사진 속에는 그야말로 온 국민의 관광지인 해운대를 찾은 청춘들이 앉아 있다. 영화 박하사탕에 나오는 장면 같기도 하다. 우리는 매번 동그라미를 그려 둘러앉았었다. 무대라고 할 만한 것은 모래가 빽빽한 백사장과 바다였다. 우리들의 노랫가락에 효과음이라면 파도소리나 갈매기 소리, 그리고 친구들의 손뼉 치는 소리였고, 조명이라곤 달빛이 전부였다. 그것으로도 충분했었다.

저 사진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들, 털어도 털어도 남겨져서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모래알처럼 우리들의 기억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들, 그것은 무엇일까. 오래된 사진에서 느끼는 낭만적인 향수를 제거하더라도 끝내 남는 어떤 기운, 그것은 꾸밈없는 해운대라는 장소가 가진 힘이 아닐까?

그런데 이제는 해운대라는 고유의 장소성은 점점 탈취당하고, 그 위에 덧입혀진, 문화(?) 또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오염된, 전혀 다른 해운대가 등장한 듯하다. 관광과 문화가 산업이 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매력을 잃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오히려 극도로 화려하게 치장하게 된 탓이다. 그런 극한의 화려함 속으로 빨려 들어간 해운대, 그리고 해운대와 같은 운명의 그 많은 “장소들”에 애도를 보낸다.

주목받던 관광지가 점점 매력을 잃자 사람들은 도시 외곽의 삶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화려함에 싫증난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한 소재가 바로 골목길이고 산복도로인 것.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사업이 몇 년 전부터 추진되고 있고, 취지는 인문학적이기는 하지만 산복도로 르네상스로 행복해진 사람들은 누구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자신들의 담벼락에 총천연색 물감을 칠해준 것에 대해 그들은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을까.

칠팔 년 전 취미 삼아 사진 찍는 것을 즐겼는데, 그때 벽화로 유명해진 안창마을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회색 담벼락보다는 벽화가 그려진 담이 이색적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니 그곳은 숨기고 싶어하는 도시의 외곽을 벽화 안으로 은폐해 놓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작 그 터 주인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고, 그곳을 관광 삼아 찾는 자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치. 타자들의 삶의 장소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즐거워하는 자들의 폭력성,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이 느껴졌었다. 자신의 사적 공간을 지킬 권리마저 박탈당한 개인, 타인의 삶을 향수로 느끼고 추억하고 즐기기를 강요받는 익명의 다수들. 극히 개인적인 삶의 장소인 담벼락까지 관광화되고 있으니 가히 이러한 문화는 폭력적이라고 할 만하다.

온 나라가 관광지이고 연중 축제인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전국의 유명한 장소가 더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지 못하자 찾아낸 것이 보호되어야 할 사적 공간인 내 이웃의 담벼락, 내 이웃의 골목길, 내 이웃의 처절한 삶의 장소라 생각하니 사뭇 서글프다. (“나”는 그 곳에 전혀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러한 빈민촌/산복도로에 살아주어야만 “나”는 그곳을 즐길 수 있다. 그곳은 나의 구경거리가 될 때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그곳은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며 개인들에게 반환되어야 할 지극히 사적인 장소라 여기면서 오래된 한 장의 사진에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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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어떻노 부산살피기] 손바닥소설_ 종편뉴스에도 늠름한 이병욱씨를 보라

 

: 배길남(소설가) rakesku@hanmail.net

일러스트 : 전진경 wjswlswls@naver.com

 

 

 

< 종편 뉴스에도 늠름한 이병욱 씨를 보라>

 

 

“철수야, 니 대체 어데고?”

“아, 미안하다. 빨리 서둘렀는데 차가 말썽을 일으켜서…. 내 금방 갈게. 먼저 들어가서 시키고 있어라.”

“아아 새끼, 니가 먼저 점심 묵자 안했나? 머리를 다 쥐 뜯어 뿔라. 빨리 빨리 안 오나?”

이병욱 씨는 투덜거리며 식당에 들어갑니다. 김철수 씨는 경기도로 직장을 옮겼다가 당당히 부산으로 컴백했습니다.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일본계 제약회사에 면접을 보더니 철컥 붙어버리고는 요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 자슥, 이거…. 돈 잘 벌면 비싼 걸 사야지. 착한 식당이면 저렴한 가격에 모시는 거 아이가?”

이병욱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분은 좋습니다. 항상 아웅다웅 싸워대도 철수 씨가 없었던 몇 달 동안 술친구, 밥 친구가 없어 많이 심심했었기 때문입니다. 줄 서서 먹는다는 식당은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자리가 몇 개 비어있습니다. 돌솥 정식을 시키고 앉아 있자니 몇 가지 반찬부터 먼저 나옵니다. 하릴없이 기다리던 병욱 씨는 무심코 가게 벽에 걸린 티브이를 봅니다. 티브이 뉴스는 찬으로 놓인 땡초보다 자극적인 단어들을 뱉어내는 중입니다. 정부의 정당해산 조치에 종북이니 국가안보란 말이 연결되는 걸 보니 종편채널의 뉴스 프로그램인 모양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대한자유총연대 대표란 이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있습니다. 옆 테이블의 어르신 한 분이 소리칩니다.

“아지매, 테레비 소리 좀 키아 주이소.”

아주머니가 리모컨을 드는데 다른 자리의 키 큰 중년 남자가 어깃장을 놓습니다.

“거, 안 그래도 시끄럽구만. 밥 묵는데 정신 사납소.”

리모컨을 든 아주머니의 표정이 난처해집니다. 뉴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옆자리의 다른 어르신이 다짜고짜 큰 소리를 냅니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밥이 문제가? 소리 캐소!”

아주머니가 눈치를 보다 볼륨을 높이려 하자 중년 남자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소리를 높입니다.

“거기 영감님들. 식당에 왔으면 밥이 제일 큰 문제지 뭐가 문제요? 그리 중요한 뉴스면 집에 가서 보면 되지, 와 남한테 피해를 주요?”

“거, 젊은 사람이 말을 막 하는구마.”

“뭐? 가만히 밥 묵는 거 방해한 쪽이 누군데 그라요?”

슬슬 고성이 오고 가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중간을 막아섭니다.

“아이고오, 와 이라십니까? 여기 영업하는 집입니다. 그냥 식사들 하시고 가세요.”

말다툼은 중단되었지만, 밥을 다 먹었던 어른신들 쪽에서 먼저 ‘어흠’하며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일어납니다. 그중엔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식당 문을 나서면서도 아까의 중년 쪽을 보고 투덜거리는 어르신도 있습니다.

“세상이 우째 될라꼬 이라노? 빨갱이 같은 것들 못 설치구로 옛날 맨치로 다 바까야 돼.”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와 눈까지 마주쳤으나 중년 남자는 이내 모른 척 식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괜히 가슴을 졸이던 병욱 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원망스런 표정으로 티브이를 흘깃 쳐다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뉴스 꼭지가 바뀌었는지 패널이 바뀌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을 알아보자마자 볼륨을 올리고 싶은 충동에 침을 꿀꺽 삼킵니다. 화면에 나온 이는 칼(KAL)기 폭탄테러범 김현희입니다.

“아따, 마유미 저 여자도 인자 늙었네. 하! 그라고 보이 칼(KAL)기 사건 났을 때가 우리 중학교 1학년 때 아이가?”

어느새 나타난 김철수 씨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수다를 떱니다.

“저 아줌마 한국 들어온 날이 대통령 선거 바로 전날 아니었나? 북한 쳐들어온다고 멋모르는 어른들은 전부 노태우 찍었다 아이가? 무슨 놈의 대통령 선거가 그때나 지금이나 엉망진창인 건 다 똑같노? 아! 배고프다. 아지매, 밥 좀 빨리 주이소. 그라고 테레비 볼륨도 좀 높이 주이소.”

속사포 같은 수다를 감당 못 한 병욱 씨가 볼륨 부분에서 “야, 거…, 볼륨 안 되고…, 아, 거참!” 하며 아까의 중년 남자를 흘깃 쳐다봅니다. ‘눈치 없기 100단’ 소유자 철수 씨는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이며 아예 리모컨을 가져오는 중입니다.

“와 또 난리고? 식당 테레비 와 틀어놨겠노? 봐라고 틀어난 기지, 저 아줌마 뭐라 하는지 좀 듣자.”

조금 전의 말다툼을 본 식당 아주머니도 난처한 표정으로 아까의 중년 남자 눈치를 봅니다. 그러자 병욱 씨 쪽을 보던 중년 남자가 아주머니에게 한마디 합니다.

“내가 뭐 소리가 시끄러워서 영감들하고 실랑이 했는교? 대통령 지지 안 하면 무조건 빨갱이 취급하는 영감들 보기 싫어서 그랬지. 저거가 도로 빨갱이 짓 하는 건 모를 기야. 뉴스가 개판이라도 저 젊은 사람들처럼 뺄 거는 빼고 척척 알아들으면 누가 뭐라 하요? 내 신경 쓰지 마소.”

아주머니가 마침 나온 돌솥 정식을 갖다 줍니다. 병욱 씨는 중년 남자의 말을 듣고 슬쩍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중년 남자도 고개를 끄덕하고는 식사를 마치고 나갑니다. 리모컨 볼륨을 조절하던 ‘눈치 없기 100단’ 청년이 병욱 씨의 얼굴을 보며 의아해합니다.

“니 혼자 와 씰씰 웃고 난리고? 밥 오는 기 그리 좋나? 또라이 새끼…. 밥 묵자.”

꼴통 친구의 귀환에 병욱 씨는 오늘도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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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어떻노 부산살피기]청년예술가 에프씨_ 우리도 쫌 케어해 주자냐!

 

글 : 구태희(청년예술가 대변인) kttk199@gmail.com

일러스트: 이희은 eunillust@naver.com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점점 추워지고, 겨울이 다가오고, 2013년은 막바지를 바라보고, 이쯤 되면 시곗바늘 부여잡고 억울한 거, 실수한 거, 열 받은 거 몽땅 리와인드해야 할 거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이 엄습하고 2013년은 나에게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라고 외치고 있어.

하지만 연말이니 송년, 신년 선물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선물은 기분 좋게 하닌까! 이런 드러운 찝찝함 다 없애줄 꺼야! 그보다 청년예술가 에프씨 이야기도 횟수로 3년째인데 어찌 F씨 팬은 없는 거야? 선물 주면 안 되겠니?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잖아! 선물은 에프씨를 춤추게 한단 말야! 주소를 모른다구? 주소는 목차에 있는 발행처를 참고하셔! 우체국이 멀어? 그럼 얼릉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서 택배 쫌 보내줘! 착불도 좋으니. ^^;

나도 요즘 꼭 선물을 주고 싶은 두 사람이 있는데 말야~ 궁금하지? 궁금하면 나에게 선물 보내! ㅋㅋㅋ

 

 

인사가 문제야!!!

 

연말에 이 무슨 날 벼락인지, 여기저기서 인사 문제가 나타나고 있어! 거참 드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일들이 잔뜩 일어나고 있어! 관 주도의 문화예술 행정을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전환하고 소프트 역량을 강화하겠다던 부산시는 문화회관관장, 비엔날레 운영위원장, 국악원장 자리에 서울서 내려온 낙하산을 임명했단 말이지! 근데 이 사람들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람일 뿐만 아니라 나이도 엄청 많은 늙은이들이라는 거지! 그냥 서울에 있지 왜 부산으로 왔데? 그리고 나이가 들면 후배를 양성하고, 후배에게 좋은 자리 만들어주는 그런 아량과 깔쌈함은 없는 거야? 부산엔 젊고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왜 깡그리 무시하냐고? 결국, 이렇게 무시당하면 등 돌리고 떠나는 게 이치인 걸 싸가지없는 나도 알고 있는데 부산시는 모르는 거야?

이뿐만이 아니야!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 건으로 시끄러운 건 다들 알고 있지? 한 명 뽑아 놓고는 갑자기 한 명 더 밀어 넣어서는 공동체제로 가자는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하고 있다는 거지! 도대체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이래?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야! 그냥 솔직히 말해! 내가 원하는 사람 밀어 넣기 위한 압력 행세라고! 아냐? 아님 완전 공개를 해! 그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선정하란 말야! 드러운 갑질 행세나 하지 말고!

그리고 이런 갑질이 이곳에서만 있었냐구? 아냐! 예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활동을 지원하라고 만든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잘나신 문화체육관광부의 ‘갑질’ 때문에 전 대표가 그만두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거야! 문체부 예술정책과장이 재단 대표에게 ‘직원 교육 잘 시켜라!’, ‘찍어서 자르겠다’는 말을 하질 않나, 말 뿐만 아니라 실제로 특정 직원을 해고하라는 지시를 내리질 않나, 길들이기와 압박을 일관해 놓고는 전 재단 대표가 그만둔 것을 ‘업무적 중압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하질 않나, 참으로,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단 말이지. 그래 놓고는 예술정책과장이라는 작자가 인터뷰에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가관이야! 내가 좋아라 마지않는 ‘뉴스타파’가 이걸 밝히지 않았으면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고, 그럼 얼마나 억울했겠어! 고로! 인사가 문제이고!

부산시는, 문체부는 이제 갑질 행세 그만하면 되자냐~

 

 

생각 해주자냐!

 

얼마 전에 사상경전철역 앞에 컨테이너를 들었다 놨다, 눕혔다 기울였다! 별 희한한 짓을 다 해서 컨테이너 아트터미널 ‘사상인디스테이션(CATs)’이라는 완전 까리한 컨테이너 건물이 만들어졌어! 열악한 서부권역에 청년문화예술을 활성화할 것 같아서 무척 기대가 컸었지. 레지던스 공간도 있고, 주민 커뮤니티를 표방하기도 하고, 초기에는 힌두 문화권의 ‘디왈리 축제’도 선보이고 다문화,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 같았어! 이주민이 많은 사상과 북구권역으로 봐서는 완전 아싸~ 뵹인데...

이 사상인디스테이션이 생긴지 5개월도 안 되어서 문을 닫게 생겼어! 부산시가 인디스테이션에 대한 예산 지원을 내부논의를 통해서 자립을 전제로 인디스테이션 운영 전반에 대해 재검토를 하기로 했다는 거야! 물론 부산문화재단과 사상구가 계약 관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부산시가 자유로운가? 아니잖아! 부산시가 책임져야 하쟈나! 그리고 만들기 전에는 생각 안 하셨나? 거기다 만들어 놓고 5개월도 안 되어서 자립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것도 웃기고, 더 황당한 건 사상 인디스테이션은 주변 상인들 반발로 음료판매시설조차 입주 못 할 정도로 완강한데 그럼 어쩌자는 거니?

그리고 사상인디스테이션 본질을 모르시나? 청년·인디문화 공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공연사업 역시 수익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것 쯤은 기본 아닌가? 이건 단순히 사상 인디스테이션 만의 문제가 아니라구! 여기저기 만들기는 잔뜩 만들고 운영은 위탁이니 공모니 하면서 결국 예산 절감만 생각하고! 정말로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고민은 하는 거니? 무작정 만들지만 말고 지원도 열심히 하란 말야! 우리 세금 20억 들여서 지은 건물을 이상한 날나리들한테 빼앗기고 날리지 않으려면 말이야!

 

 

쫌! 쫌! 살자!

 

쫌! 먹고 살자는 이야기는 매년 하는 거 같은데 도통 나아지질 않으니 나 원 참! 이거 어찌해야 하니? 대한민국아! 부산아! 우리는 사람도 아니니? 정말 절망적이자냐~! 문화예술인 분야별 100만 원 이하 수입비율이 얼마인지 아니?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학 91.5%, 미술 79%, 사진 79%, 연극 74%, 영화 71%, 국악 67%, 무용 64%, 음악 60%, 대중예술 43.5%, 건축 34%란 말야! 심지어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액이 없다는 사람도 26.2%나 된다는 거자냐! 머 사실 태초부터 예술은 항상 천대를 받았지만 그래도 ‘배고픈 예술가’를 부르짖는 이유는 예술이 우리의 삶이요, 상상이요, 행복이닌까! 그러닌까 ‘배배소리’ 많이 많이 시청해줘! 무조건 보는 거야!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선물도 나누고! 말야~ 선물로 배 불러지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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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어떻노 부산살피기] 편집부인터뷰_ 라디오팟캐스트 베트남 목소리

 

기획: 함께가는 예술인

묻는 사람 : 조동흠

답한 사람: 라디오팟캐스트 베트남 목소리

찍은 사람: 이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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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어떻노 부산 살피기] 시읽기 사람읽기 _ 다른것은 다른거고

 

글: 윤지영(동의대 국문학과 교수) windnamu@hanmail.net

일러스트: 방정아 artbang1@hanmail.net

 

 

 

 

 

철이 들고부터 제법 심각하게 고민해온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여전히 명쾌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날수록 새끼만 치고 있다.

고민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에서 시작했다. 아마도 대학생 때 그런 고민을 처음 했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게 서울로 대학을 간 후부터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전에는 지하철이 없는 곳에서 학교를 다녔고, 그보다 더 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별로 없었다. 서울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구걸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놀랐다. 코흘리개를 앞세우고 등에 애를 업은 여인이 다음 객차로 사라지자마자, 뒤를 이어 검은 안경을 쓰고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카세트를 목에 건 남자가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등장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이는 소년이 연신 굽씬거리며 앉아 있는 승객들의 무릎 위에 구구절절 사연이 적힌 종이쪼가리를 떨어뜨리고 지나갔다. 그중 가장 끔찍했던 것은 두 다리가 잘려 아예 바닥을 기며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개중에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잔돈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눈을 감은 채 그 종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 중간이었다. 괜한 죄책감과 불쾌감을 애써 누르며 종이에 적힌 사연을 읽고 종이의 주인에게 건네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한편으로는 나는 내 자신이 그들을 완전히 무시할 만큼 비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선뜻 돈을 건네줄 만큼 어리숙해 보이기도 싫었다. 그들을 도와주는 게 결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제법 합리적인 반론에서부터 그들이 사실은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어서 그렇게 모은 돈을 두목에게 가져다주고, 구걸을 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불구로 만든다는 식의 괴담도 들은 적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내내 무뎌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동전 한 푼 건네지도 못하며 내 손으로 그들의 손에 종이를 건네주는 것으로 죄책감과 불쾌감의 긴장을 견뎠다.

대학 때 빈민 활동, 농촌봉사활동, 그리고 나환자촌 봉사활동을 다니면서도 내 고민은 여전히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활동을 위한 사전 교육에서 우리는 결코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며, 그들과 우리는 동등한 인격과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고, 오히려 그들로부터 삶에 대해 배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들었지만, 철거깡패와 맞서 머리 산발하고 울부짖는 아줌마들 앞에서, 반갑다고 내미는 뭉그러진 손 앞에서, 시큼털털한 땀 냄새 앞에서 나는 언제나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과연 저들과 똑같은가, 그렇다면 어째서 나는 저의 손을 덥석 붙잡지 못하는가, 내가 저들과 똑같다고 하는데 나는 어째서 이 공동 화장실이 끔찍해서 활동 내내 화장실을 못 가고 변비에 걸리는 건가, 내가 그들과 똑같다고 하는데 어째서 나는 그들 앞에서 해도 되는 얘기가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얘기가 있다고 여기는 걸까, 어쩌면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건 아닐까. 그들과 내가 같다는 당위 앞에서, 아무래도 그들이 다르게만 느껴지는 자신에게 당황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는 내가 위선적인 것만 같고, 여하튼 그렇게 복잡하고 분열적인 생각들을 품은 채, 어른이 되면 정리가 될 거라 믿으며 혹은 자신을 속이며 한참을 헤맸던 것 같다.

하지만 웬걸. 그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어른이 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문제에 대해 나름의 대답을 찾게 된 건 그와 비슷한 경험들의 반복과 인문학 덕분이다. 그렇다고 이제는 내가 나와 다른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두려움과 불편함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자유와 더불어 근대적 시민의 조건이자 권리로 천명된 평등과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 정신이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임을 이제는 안다.

그런데 나와 다른 존재들이 어디 그와 같은 소수자들뿐인가. 우리 각자는 얼마나 서로 다 다르고 서로가 낯선가. 익숙해지기 전에는 말이다. 익숙해지기.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처음의 두려움과 거부감은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점점 사라졌다. 함께 일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는 다른 그들의 생김새도, 그들의 말투도, 그들의 공간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만 남는다. ‘아,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이 얼마나 당연한 사실인가.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면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그러나 내가 그토록 곤혹스러웠던 것은 당연한 그 사실이 전혀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낯섦과 차이가 보일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 성격도, 욕망도, 습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 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적인 차이를 발견하기도 이전에 사회적 관습에 따른 차이에 갇혀 나와 다른 것을 내 영역에서 밀어낸다. 어쩌면 그것은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 동물적인 본능에만 몸을 맡길 때 우리는 정체 모를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그 불안과 공포의 정체를 바로 알 때 우리는 평등과 박애라는 이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이 싫고 불편한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다. 비윤리적인 것은 싫고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동물적 직관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첫걸음은 나와 같은 무리로부터 떠나 나와 다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별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문학의 세계에 빠지는 방법도 있다. 깊어 가는 가을, 인문고전을 손에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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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어떻노 부산 살피기] 헤세이티 입간판

 

글, 사진 : 황경민(헤세이티 종업원) coala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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