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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는예술인 38호 <좋아요> 기사 인기투표 중입니다.

통계는 39호에 실리게 되며, 매호 독자들의 평가를 반영하여 더 좋은 기사를 생산할 자료가 될 것입니다. 
30명 이상의 설문이 진행되어야 신빙성있는 통계가 되오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기투표에 참여하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본 설문은 비실명으로 집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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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성진의 시골에서 호작질하기]봄, 거창에서

글, 사진 : 박성진, 정영주 norae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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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거창에서

 

1. 도룡뇽

 

3월 말. 식목일이 오기 전에 어린 사과나무를 심었다. 삽으로 땅을 파다 보물을 캤다.
심봤다! 도.룡.뇽!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거나 깰 준비를 하고 있던 폼이다.
행여 다칠까봐 장갑 벗은 손으로 흙 묻은 채로 보듬었다. 엊그제 또다른 도룡뇽을 본 물가에 갖다놓았다. 내 먹고 살겠다고 땅을 헤집어놓고 정작 땅주인들을 홀대했네.
우리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상주해서 살다시피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개간했다,
엉겹결에 마을 뒷산의 문지기가 된 우리. 이들과 더불어 잘 살아야 할 텐데......
개간한던 첫날, 나무를 자르던 첫날, 마을 형님이 소주를 들고 와 땅에다 부으며 말했다.
“성진아, 절해.”

 

애초에 땅은 주인이 없다. 우리 살 때까지 잠시 임자 노릇할 거라고, 술로 고할 뿐이다. 

 

2. 깨어나는 고추와 옥수수와 오이와 호박과 곰취

 

고추모종. 작년엔 시장에서 사다 심었지만, 올해는 하우스에서 키웠다.
작년에 고추값이 좋아서 올해 고추모종 값이 올랐다. 한 개 200원? 300원? 1000포기면 얼마야? 삼십만 원이잖아. 으악! 씨는 한 봉지에 5만원.
안되겠다, 우리도 고추모종 키우자!
촉을 틔운 고추씨를 사와서 아궁이 방에서 이른 봄부터 키웠다. 가만, 어? 싹이 나네. 아, 다른 것도 하자. 옥수수! 오케이! 오이는? 오이도 좋지. 호박도! 곰취까지!
잠자는 생명이 흙을 만나 물을 만나 온기를 만나 깨어난다. 머리를 밀고 올라온다.
단, 들쥐는 조심할 것! 성질나니 지 먹을 것도 아니면서 헤집어놓음!

 

3. 일거리! 놀거리!

 

우린 일거리! 아이들은 놀거리!
논에 모자리하는 날. 장화가 뻘에 박혀 걷기 힘들어 아예 신을 벗고 발을 동동 걷었다.
맨살과 물을 머금은 흙이 만나는 순간. 에구, 여보 힘들어. 할 줄 알았나? 아싸, 완전 기분좋다!

 

그 때, 우리 개똥이들 왈 “ 엄마, 옷 벗고 들어가도 돼?”
그래, 안될 것도 없지.
허나, 난 들어오라고만 했다.
들어와서 온데 슬라이딩하면서 논바닥을 뛰어다니라고는 안했다.
그 속에서 똥누란 소리도 안했다. 수영하라고도 안했다.
개똥이들아, 그만 뛰어다녀!

 

집에 와서 보니 옷이 뻘물이 들어 빨아도 지지 않는다. 이게 바로 황토염색? 크크..
 

양파, 마늘, 겨울초, 시금치, 쪽파..땅속에서 겨울을 오롯이 나고 봄에 자란다.
신기하단 말이야..심으면 자란다. 분명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혹한을 견뎌낼 힘, 누가 주었을까.

 

소망한다. 자연처럼만 자라다오.
부디 그렇게 놀아라.
민주야, 나래야, 한음아, 현주야, 강산아, 지상아, 은진아, 재민아, 세은아, 하람아, 희선아, 희준아, 범석아!

 

4. 명랑운동회

 

봄철, 일철에도 쉬어가는 날이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함께 달린 명랑운동회.
우리 한음이, 아빠를 닮아 발에 발통을 단 우리 개똥이가 달리기에서 역시 일등을 먹었다.
출발은 한발 이상 늦었는데..
웃는다. 그래, 좋다. 아싸 가오리!
봄철은 우리 한음이 발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겠지?
그래, 좋다. 달린다. 아싸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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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인터뷰]거꾸로 서서 가던 길을 계속 가다

비보이 오샤레 크루가 말하는 부산과 '진짜 힙합'

기획 : 신동욱 woogy0213@hanmail.net

 

인터뷰어 : 정재연(와일드 프린즈) ㅣ 인터뷰이 : 오샤레 크루(김민수, 문지환, 이승호, 이정영, 전인혁, 최형)

사진 이장수 ㅣ 촬영편집 : 황영수 ㅣ 스크립터 : 송영제

2012.5.13(일) 용두산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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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지난 5월 13일, 소위 ‘부산 춤꾼’들이 자주 모여 춤을 췄다는 용두산 공원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부산연등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제5회 전국 비보이 5:5 배틀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던 오샤레 크루. 5:5 배틀인데 대회장 주변에서 열댓 명의 멤버들이 북적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몇몇은 간간이 모자를 거꾸로 쓴 다른 이들이 지나가면 꼭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포옹했다. 전국 각지의 비보이들과 친분이 꽤 돈독해보였다. 그럴 수밖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이나 활동했으니.

 

춤 좀 춘다는 친구들이 모여 2003년에 결성된 오샤레 크루는 10년째 부산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 십 년 중 어느 순간 비보이들이 집중 조명된 때도 있었다. 세계 대회에서 해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한 한국 비보이들을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회가 만들어졌고, 드라마도 나왔다. 영화에 나오는 비보이들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기회의 땅 서울로 올라가는 이들도 많아졌다.

 

오샤레 크루가 서울로 올라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아직도 부산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느냐고. 척박한 부산에 남아 춤을 추면서 어딜 가나 스스로 부산을 대표한다고 소개하는 이유가 있나. 여러모로 서울로 올라가는 게 좋을 텐데. 그러나 그들은 “서울이 좋아요?” 라며 되물었다.

 

예선이 끝나고

 

재연 : 팀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민수 : 재연이가 저희 제자인데, 존댓말 쓰나요? (웃음) 저희는 오샤레 크루이고요. 부산을 중심으로 10년 넘게 춤을 췄어요. 전부터 계속 춤을 추던 친구들이 모여 2003년에 결성되었고요.

 

재연 : 오늘 대회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싶어요.
민수 : 이 대회는 부산연등축제에서 해마다 하는 비보이 대회인데요, 남포동에서 주로 열리죠. 원래 이 행사에 비보이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비보이들을 초대했습니다. 올해로 5년째인데, 방금 예선을 치러보니 바닥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네요. 그래도 비보이들을 위해 부산에서 열리는 행사니만큼 주최측을 존중하면서 즐기려고요, 바닥 크게 신경 안 쓰고.

 

명색이 부산대표인데

 

재연 : 오샤레 크루 활동 10주기예요. 초기와 지금이 어떻게 좀 다른지요?
승호 : 개개인으로 따지면 평균 15년 정도의 세월이죠. 10주년이 가지는 의미도 있지만, 그냥 이 힙합 문화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에요. 부산의 힙합 문화를 통해 우리나라 전체 힙합 문화의 발전도 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민수 : 이젠 10년 전처럼 마냥 어리게만 춤을 출 수는 없잖아요. 그땐 단지 춤이었다면 지금은 문화니까, 그 속에 정체성과 철학을 담아야죠. 지금의 문화를 유지하려면 첫째로 우리가 흩어지면 안 돼요. 그래서 춤을 추지 않을 때도 서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유대감을 이어가죠. 어릴 때랑은 달리 지금은 서로 개인 생활에 애로가 많다보니 자주 모이기 힘든 경우도 있지만.

 

재연 : 10주년 기념으로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요?
민수 : 해마다 비씨비(부산 씨티 브레이커즈)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현실적인 이유로 작년엔 하지 못했어요. 전국에서도 인정받는 행사예요. 경쟁이 아닌 다양한 힙합 문화를 그냥 즐길 수 있는 행사거든요. 수도권에 있는 비보이들도 신선하다며 좋아하죠. 올해 10주년 행사도 비슷하게 치를 계획인데, 저희가 춤을 추는데 있어 큰 영향을 미친 댄서들도 초대할 예정입니다.

 

재연 : 부산과 힙합이 함께 성장해 온 이야기도 해주실 수 있는지요.
민수 : 예전엔 오늘 행사가 열리고 있는 여기 용두산공원에 모여서 춤추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어요.
승호 : 그때를 힙합문화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민수 : 그냥 춤이죠. 그때 춤추는 환경은 말할 수도 없어요. 행사를 열어주는 곳이 없다보니 부산에서 춤추는 친구들이 자비를 털어 행사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다른 지방 팀들도 부산을 찾았고요. 그 뒤로 점점 지원을 해주는 곳이 생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별로라고 느껴졌어요. 비보이 행사인데, 비보이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어요. 단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 정도? 차라리 자비를 쓰더라도 예전처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부산 댄서들이 다시 뭉쳐 행사를 기획했죠. 그러면서 서로 철학도 생기게 되고, 춤 실력도 늘게 되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재연 : 어...... 저 지금 대회 나가야 하는데!
동욱 : 아, 지금 또 뭘 시작하나요?
민수 : 네, 이제 예선 끝나고 본선 하는가봐요. 저희도 지금 준비해야 할텐데......
동욱 : 그럼 지금 잠시 쉬었다가 나중에 다시 하죠. 혹시 다음 상대가 어느 팀인지요?
민수 : 잘 모르겠어요, 인터뷰 하느라 못 들었는데.

 

본선 종료 후 인터뷰를 다시 시작.

 

영제 : 오샤레 크루 소속의 서울 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활동하는 건지?
정영 : 전 원래 서울의 라스트 미닛이라는 팀 소속이었어요. 군대에서 승호를 만났는데 그 계기로 많이 배웠죠. 그래서 전역 이후 서울에 오샤레 크루의 뿌리를 내렸어요. 서울 멤버는 저와 (최)영이, 인혁이 세 명입니다.
민수 : 원래는 서울에 멤버가 생기는 것을 꺼려했어요. 부산이라는 상징성을 지키고 싶었으니까요. 서울 멤버들이 잘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바꿨죠. 그렇지만 서울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저희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서울과 부산 팀의 경계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뭐든지 같이 해요.
승호 : 거리가 멀고 하는 일이 다 달라도 같이 할 수 있어요. 정영이는 디자인 전공이고, (최)영이는 탕수육 튀기고 있고. (웃음) 그래도 비보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같으니까요.

 

정영 : 서울과 부산 힙합 문화의 차이에 대해 조금 덧붙자면요, 공연이 비보이 문화의 전부가 아녜요. 그런데 행사가 많은 서울에는 아무래도 비보이들이 공연을 할 기회가 많죠. 지역별로 유명한 팀들도 거의 서울로 다 올라갔어요. 자연스레 사람들 인식 속에 비보이하면 공연이 먼저 떠오르게 되고요.
승호 : 쇼 비즈니스죠.
정영 : 네, 쇼 비즈니스. 비보이 문화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전부가 아니란 말이죠.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게 돼요.
인혁 : 남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첫째는 우리가 즐거워야죠. 쇼가 아니니까요. 부산 사람들은 힙합씬을 어떻게든 창조하려고 하니까. 그게 자랑거리예요. 서울엔 그런 게 부족하죠.
정영 : 서울에서 비보이들을 보면 ‘부산 언제 가냐’ 이런 말들을 많이 해요. 서울 비보이들도 부산을 좋아해요.
승호 : 서울엔 비보이 스스로 앞장서서 문화를 창조해내려는 움직임이 적죠. 사실은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표현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비보이죠. 수도권을 꼭 나쁘게만 말하는 건 아니에요. 힙합의 요소들이 잘 녹아들어 있는 곳은 부산보다는 서울이죠. 잘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정영 : 잘 하는 사람은 정말 많은데, 재미가 없죠. 비보이들을 위한 행사들인데 정작 비보이들이 즐기지 못해요. 타이틀을 놓고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인혁 : 그냥 맨날 보는 사람 또 보는 느낌......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 같이 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건데. 행사의 주체는 비보이들인데 정작 비보이들이 즐기지를 못하니까요.
승호 : 비보이 문화에 대한 다른 면도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공연 말고도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거든요. 행사 성격이 아니고, 놀이 문화처럼요. 그걸 잼이라고 해요. 오늘 같은 행사는 괜찮은 편이지만 그래도 행사의 성격이 더 세죠.
정영 : 서울엔 떨어지면 그냥 집에 가잖아.
승호 : 욕하는 게 아니에요. 너도 나도 다 비보인데, 어떻게 보면 같은 가족인데 내가 나를 욕하는 거잖아요. 욕하는 게 아니라, 그런 문제들을 다들 알면서도 못 고친다는 게 문제라는 거죠.

 

동욱 : 그런 바람 때문에 비씨비나 포럼을 여는 게 아닌가요?
승호 : 그렇죠. 비씨비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만든 행사예요.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뭘까. 사랑, 존중.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하는 게 진짜 힙합이 아니냐는 의미에서 소통하려는 행사죠. 부산 씨티라는 이름을 내건 것은 그만큼 부산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으니까요. 파티로 시작했지만 점차 중학생 비보이 대회나 포럼 등 다양한 형태로 즐기려 하고 있어요.
최영 : 서로 사랑하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느끼잖아요. 비씨비는 그런 행사에요. 가면 진심으로 서로를 느끼죠. 내가 실력이 좋아서 갈 수 있는 행사가 아니고, 그냥 비보이라서 다 함께 즐기며 느끼는 행사죠, 비씨비는. 우승자가 중요하지도 않고요.
승호 : 포럼은 크게 두 가지가 목표예요. 하나는 힙합 문화에 대한 지식의 공유예요. 시작한 지는 올 해로 세 번째밖에 안 돼요. 말로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죠. 서로의 생각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또 어린 동생들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도 있고요. 두 번째는 자기 피알이에요. 자신이 소속된 곳을 얼마나 잘 대표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잘 대표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죠.

 

돈 벌려고 춤추나, 춤추려고 돈 벌지

 

동욱 :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죠. 오래된 이야기지만, 부산에도 비보이전용관이 있었어요.
민수 : 민감한 문제라 함부로 말하긴 힘들어요. 들어서 알긴 아는데, 당사자가 아니니까요. 유행처럼 지나간 이야기죠. 비보이가 한창 주목받을 때 생겨나서, 시들해지니 없어진 거예요. 말들은 많지만 그게 전부예요. 제일 처음 들어왔던 공연이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였던가. 그런데 같은 공연을 계속 보는 관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객이 줄다보니 수익이 안 생기는데 전용관이 유지될 수가 없죠.
지환 : 지하 소극장인데, 공연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불편한 시설이었어요.
승호 : 전형적인 쇼 비즈니스죠.
지환 : 부산 비보이 역사에 끼울 수 없는.
정영 : 나쁜 움직임은 아니죠. 비보이를 몰랐던 사람들은 그걸 통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되니까.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어요. 이해가 없이는 어떤 사업도 성공할 수도 없는데. 자본가들 대부분이 비보이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상업에 끌어 들이려고만 해요.
승호 : 힙합도 하나의 문화인데 상업성 때문에 정체성을 잃으면서 왜곡되는 게 제일 큰 문제죠.
인혁 : 제기차기를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려면 그 문화를 통째로 끌어안고 이해해야 해요. 그냥 상업적으로만 제기차기를 이용하려고 하면 오래가지 못하고 망하겠죠. 문화는 문화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예요. 비보이 전용관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망했죠.

 

영수 : 잠시만, 테이프 좀 갈게요.
동욱 : 이런 이야기 말고, 진짜 궁금한 것도 좀 물어볼게요. 그 손 모양, 뭘 말하는 거예요 대체.
정영 : 사랑이에요, 사랑. 중지와 약지를 접고 나머진 다 펴시면 되요. 추측인데요, 이 손 모양 안에 ‘엘 오 브이 이’ 네 글자가 모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승호 : 추측이니까요. 추측성 기사는 쓰지 마세요(웃음). 왼손을 주먹 쥐고 오른손 중지와 약지를 접으면 알파벳으로  ‘오’와 ‘씨’가 돼요. 우리 팀의 약자죠, 오샤레 크루니까.

 

동욱 : 식상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비보이하는 걸 가로막는 현실적인 요소들이 참 많잖아요?
승호 : 돈이죠. 주변에서 많이 말려요. 심지어 가까이에 있는 팀 멤버들까지도. 전 애 아빠니까 더 그렇죠. 그래도 끝까지 춤을 추는 이유가 있어요. 내가 아니면 부산 힙합 문화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불안해요. 여기엔 부산 힙합 씬에서 스스로 차지하고 있는 비중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죠.
인혁 : 덧붙이자면요. 저희들이 추구하는 힙합의 가치는 높은데, 값어치는 낮아지는 거죠. 섭외하는 쪽에선 유행에만 민감해요. 문화의 뿌리 전체는 보려하지 않고, 그런 의식이 쉽게 바뀌지 않아서 힘들죠.
정영 : 전 돈보다 시선이 더. 할아버지는 다 때려치우고 공무원 공부나 하라고 하시거든요. 주변에서도 춤을 보면 멋있다고는 하는데, 꼭 뭐 먹고 살 건지 덧붙여서 물어봐요.

 

좋아요!

 

동욱 : 이번 잡지 주제가 ‘좋아요’인데, 부산 힙합문화에 대해서 좋은 점 하나씩만 말씀해주세요.
민수 : 부산의 힙합 문화는, 그냥 좋아요 (웃음). 이게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지만 계속 노력해나갈 거고요. 부산의 문화가 다른 지방에 비해 더 재밌다고 느끼게끔 만들어 갈 생각이에요. 좋아요!
승호 : ‘함께가는예술인’에 저희가 들어가서 좋아요 (웃음). 예술인이라는 거니까. 부산에서 힙합을 계속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조금만 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정말, 좋아요!
인혁 : 부산이 좋은 이유는, 우리 팀이 있기 때문? 우리가 지키고 있기 때문에 좋아요!
최영 :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진실되게 공부하겠습니다. 좋아요!
정영 : 누군가 부산의 힙합 문화를 접한다면 최고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부산 좋아요!

 

뒷담화

 

취재차 그들을 처음 만난 건 인터뷰 열흘 전인 5월 2일이었다.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춤 동작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해 봐도 무덤덤한 듯해서 섭섭하게만 느껴졌었다. 약간 경계하듯 어색하게 사전 기획 회의를 했었는데, 연습실과 공연을 몇 번 오가고 보니 꽤 많이 친해진 느낌이다. 서로 인사할 때 주고받는 표정에서 필자만 진심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게 그들이 그렇게 강조한 ‘진심’이었나보다.

 

대회 결과는 3위. 아무리 전국대회라지만 명색이 부산을 대표한다면서 부산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1등을 못하다니. 3위 상장을 들고도 좋아하는 걸 보면 10년 차 비보이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괜시리 취재 때문에 연습을 못해서 졌나하는 미안함도 살짝 들지만. 그러나 부산 비보이들의 정체성은 성적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 했으니, 그 기준에서는 단연 1등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본다.

 

부산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하려는 노력은 예술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왕 부산을 대표하는 김에 부산 사람 지고 못 사는 근성으로, 다음 전국대회에서 1등 한 번 하면 좋겠다. 힙합 문화의 ‘부산성’을 인정받아 전국대회를 석권하는 날이 오기를. 10년 동안 강산은 변해도 그들의 초심만은 변하지 않길 바란다. 바쁜 일정에도 끝까지 인터뷰를 함께 해주려 마음 써준 와일드 프린츠 팀과 비걸 정재연씨에게도, 선뜻 취재를 도와준 저스트 댄스 스쿨의 원장 김기윤씨에게도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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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기획공간 통]고단한 '좋아요', 선택지 없는 '싫어요'

글 : 박진명 motwj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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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는 <생활기획공간 통>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통으로 찾아오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습니다.

 

고단한 좋아요, 선택지 없는 싫어요


좋아요의 고단함

 

  침묵은 금이 아니라 침묵은 수긍이고 인내다. 회사에서 과장의 터무니없는 농담에 침묵하는 것이 그렇고, 숙제를 빙자한 교수의 자료수집 대행이나 아이디어 도용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 그렇고, 언론을 꽉 틀어진 정권의 실정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그러하다. 워낙이 그런 사회라서 더 이상 ‘좋아요’는 좋아죽겠다는 마음의 표현이 아니다. 그저 싫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를 상대에게 알리려는 예의일 뿐. 그걸로 안 되겠다 싶은 사람들은 ‘아’라고 말하기 전에 배꼽 잡을 준비를 하고, ‘어’라고 하기 전에 구두를 갖다 바침으로써 ‘좋아요’ 정도로 전달 안 되는 표현을 몸소 행동에 옮긴다.
  상황이 이러니 싫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째 표현해볼 선택지가 적다. 돌려 말하나, 직설적으로 말하나, 표정으로 드러나나, 말과 글로 전달하나 싫다는 감정이 드러나고, 혹은 그 비슷한 뉘앙스만 풍겨도 적/아의 논리가 나오고, 공/사가 나오고, 위/아래의 잣대가 꼬치처럼 내 삶을 쑥 꿰어버린다. 편두통에 인상이라도 쓰고 있었다가는 예의도 없고, 공/사도 모르는 눈치 없는 놈으로 전락하고 만다.
  감정의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친 사회에서 ‘좋아요’는 고단하고 고단하다. 해도 별 티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을 다해 ‘좋아요’ 할 수 있는 경우가 점점 줄어든다. 마음과 달리 ‘좋아요’를 하든, 침묵으로 싫지 않은 티를 내기 위해 애를 쓰든, 자연스런 감정의 유로가 막혀버린 곳에서 ‘좋아요’는 다크 서클 작렬이다.

 

좋아요, 고인 물

  부산대 굿 플러스 건축 관련 비리, 땡중들의 도박, 대통령 측근 비리와 민간인 사찰, 고리원전의 부품 비리, 통합진보당의 문제까지 요즘 눈만 뜨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런 일들이 펼쳐지는 것도 한 쪽의 표현이 막혀버린 소통의 구조 탓일 게다. ‘싫어요’를 거세해 버린 세계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되려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곪아 터져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전까지 조직 내에는 ‘좋아요’ 하거나, 싫은 티 나지 않게 완벽하게 소화함으로써 일신의 안위를 지켜 내거나, 나아가 몸소 ‘아’ 하기 전에 배꼽을 잡은 사람들로 가득했을 테다. ‘좋아요’가 쌓여서 병목현상이 되다가 꽉 막혀버린 것인데 ‘싫어요’로 나갈 구멍이 없으니까 요래 뻥하고 터지는 거다.
  이런 것을 두고 썩었다고 한다. 이때 썩었다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의 됨됨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한 사회의 자정능력이 상실된 것을 말한다. 노골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그 구성원들의 합의가 바로 고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환경만 만들어지면 한 인간의 부도덕성이 조직 전체를 썩게 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좋아요, 싫어요

  부산대 축제에 가보니 커다란 미끄럼틀을 갖다 놓았는데, 대학생들보고 동심으로 돌아가라고 한 건지는 몰라도 외국인유학생과 그 자녀가 함께 타고 논다. 그렇게 외국인 가족의 즐거운 한때가 대학축제와 연결될 때.
  쥐뿔도 없는 장전동 문화단체들이 모여서 매월 반상회를 한다(장전커넥션). 뭐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최근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아직 잘 살아 있는지 확인하다가 지역의 축제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없을까 하고 ‘청춘을 누가 막걸리’를 만들었다. 개성 충만한 이 양반들이 찌지고 볶고 하면서도 발랄한 재치를 모아낼 때.
  이 양반들이 “예술가 이모삼촌 만들기”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여해 선생이 아니라 이웃인 예술가가 되어 아이들의 문화예술교육을 함께 고민할 때. 그렇게 함께 어울리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볼 때.
  아마추어들의 장점 극대화라는 새로운 수다의 탄생을 선언한 “아마추어 개념미디어 바싹”이 3호 발간을 버텨냈을 뿐 아니라 점점 많은 아마추어가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 기사 하나를 위해 한 달에 네 번 꼬박꼬박 회의에 빠지지도 않는 아마추어들의 즐거움과 마주할 때.

 

  가슴이 헛, 하고 막히는 세상의 뉴스들을 잊어보려고 진짜 ‘좋아요’ 할 만한 일을 떠올려본다. 고여 썩은 일들은 동시다발적이고 거시적인데, 내가 정말 ‘좋아요’ 할 만한 일들은 미시적이고 간헐적이다. 작은 것들은 언제나 움직이고 새로운 자극이 더해지는데, 덩치가 큰 것들은 덩치 자체에 주목하느라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새 자극이 없다. ‘싫어요’를 차단하는 덩치들은 댓글을 삭제하고, 후배들의 비판을 묵살하면서 철옹성을 쌓으려 한다. 그러나 그 철옹성은 외부의 건전한 비판을 막으면서 내부의 풍부한 대지와 그 가능성을 좁혀갈 뿐이다. 그리고 나와 당신들의 고단해진 ‘좋아요’가 어떻게든 한몫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좋아요’는 어째 ‘좋아요’ ‘좋아요’ 잘하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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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띄우는 오래된 사진 한 장]소풍을 빼앗긴 소년들

글 : 노진숙 rakesku@hanmail.net l 사진제공 : 송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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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을 빼앗긴 소년들

 

잠들지 못한 밤이 있었더니라. 그런 밤은 동네 우물 안에까지 달님이 내려왔었더니라. 다락방 창문에까지 별빛이 쏟아졌더니라. 소년은 내일을 기다리느라 잠들지 못하는데 잠들지 못한 밤에는 꼬꼬닭이 울도록 내일이 오지 않았더니라. 오라는 내일은 오질 않고 동만 터 왔다더라. 햇님만 바스스 웃음 지었다더라. 소년아, 잠들지 않으면 결코 오늘밖에 없나니 내일을 품고 있는 것은 잠 속이요, 꿈 속이니라. 잠든 이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내일이니라. 그러니 잠들거라, 꿈꾸거라, 소풍갈 수 있도록 내일이 올 때까지.

 

총총별이 얼마나 떴는지, 달무리가 얼마나 졌는지 내일 날씨를 가늠해보며 하늘만 올려다보던 밤은 없었는지. 비가 오는 건 아닐까, 소풍을 못 가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잠들었던 밤은 없었는지. 35년 전 연산초등학교 교정에는 가을 소풍으로 들뜬 학생들로 가득하다. 학생들에게 소풍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이다.  김밥을 어찌 만날 먹는 김치와 비교할 수 있으랴. 오색찬란한 야채가 심기워져 있는 그 동그란 김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보아도 보아도 어여쁘지 않았던가. 병사이다를 소풍가방 깊이 숨겨놓은 소년은 입안이 벌써부터 달디 달다. 닳아진 교복, 짧아진 소매, 덧댄 무릎, 숨겨도 숨겨도 비집고 나오는 남루한 것들, 5학년 송갑영군의 얼굴 옆으로 수줍게 피어난 낡은 꽃 한 송이. 학교인근 배산 중턱에 걸터앉은 네 명 소년들의 행복은 티가 없다. 삶에서 소풍을 행복한 사건으로 배치했던 사진 속 그들은 지금은 이 세계에서 자신을 어떻게 배치시키고 있을까. 소풍이 이만큼 늙어져 오늘날의 소년들에게 아무런 매력없는 것이 되었는데 사진 속 저들의 삶도 그만큼 늙었을까.

 

개인이 체험한 소풍과 근대 학교 교육이 기획한 소풍은 그 색깔이 전혀 다르다. “학교교육은 교과서를 통한 지식전달과 교실 밖에서 전개되는 단체 훈련(소풍, 운동회, 수학여행, 집단체조, 조회 등) 등을 통해 학생들의 신체와 행동을 직접 통제하고 훈련하는 교육방식”이다(윤해동, 천정환 외 3명, 『근대를 다시 읽는다』 1권, 역사비평사, 2006, 86쪽 참조). 하지만, 학교라는 체제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건 학생들에게 소풍은 신나는 사건이었다.  그러한 소풍이 의미를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2012년 봄소풍을 갔던 소년들은 피로하다. 이미 가정에서 주말마다 여행이 예정되어 있으니 학교소풍은 반복되는 행사로 전락하였고, 학생들의 신체와 행동을 통제하는 훈련은커녕, 통제불가능한 학생들을 확인하는 행사일 뿐이다. 아니 통제 불가능한 자본의 어두운 그림자를 확인시켜주는 작은 일상이다. 소년들은 엄마들의 욕망이 투영된 대상이 되어 재단된 시간 안에 배양되어지고, 그 시간 속에 소풍은 소품조차 되지 못한다. 시간마다 촘촘히 짜여진 일과는 소년들에게서 행복의 싹을 아예 거두어 간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에서 대통령이나 외교관이 사라진 지 오래,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공무원이라는 현실은 소년들의 슬픈 미래를 말해주고 있다. 꿈을 상실하였으니 희망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였으니 밥벌이를 장래희망으로 삼는 세대, 그러한 미래가 온다는 것이 몸서리쳐지지 않는가.

 

소풍이 공부에 열중한 소년들에게 박하사탕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주었고, 네모반듯한 교실에서는 꺼내놓기 어려웠던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였었다. 이제는 그러한 청량감도,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 공간도 상실한 소년들은 어디에서 또다른 소풍을 꿈꾸고 있을까. 자신의 현재를 미래에 저당 잡힌 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소풍이라는 작은 놀이조차 삶에서 배제되고,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교육용 체험 여행을 전전하는 우리들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내일이면 소풍간다는 설레임에 들떠 잠들지 못했던 소년들, 그 소년들에게서 잠들지 못한 밤을 빼앗아 간 이들은 누구인지. 소풍을 빼앗긴 소년들은 저항조차 빼앗겨 어른보다 고단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여행은 자본만큼 넘쳐나고 새로운 여행상품은 끝도 없이 탄생하지만, 소풍은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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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긁적긁적, 독립영화 뒤통수 긁어보기]

이성욱 감독의<소녀들>-환상이 살아 숨쉬는 동물원

기획 : 임태환 xlros0000@naver.comㅣ 사진 : 김덕원 kkedo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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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욱 감독의 ‘소녀들’ - 환상이 살아 숨 쉬는 동물원


이성욱 감독의 ‘소녀들’에는 소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소녀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한 5,6살 꼬마와 예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등장할 뿐이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이 ‘소녀들’일까? ‘소녀들’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old tears라는 부제가 따라 나타난다. old tears? 굳이 한국말로 번역하면 ‘오래된 눈물’인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골치 아프게 제목 뜻풀이에 머리 굴리지 말고 편안하게 영화를 들여다보자.

 

케이블카 안에는 할머니와 손녀 혜민이 마주보며 앉아 있다. 카메라는 케이블카가 내려가는 도중에, 도시의 풍광을 담아낸다. 하늘은 화창하고 날씨는 짜릿한 산들바람이 불고 있을 법한 좋은 날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배경 소리는 음흉하다 못해 사람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소리다. 뭐지 이 소리? 그 순간, 천진난만한 표정의 혜민이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여기서 오는 묘한 기분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지만, 티 없이 맑은 아이의 얼굴과 침침한 소리가 섞여 왠지 모를 몽환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고나 할까? 이 케이블카가 언제부터 이런 몽환스러운 공간이었지?

 

영화 속에 나타난 케이블카는 금정산 케이블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웬만한 부산 사람이라면 동래 온천장에 위치한 ‘금강공원’에 한번쯤은 가봤을 것이다. 금정산 케이블카는 바로 이 ‘금강공원’에서부터 금정산 남문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부산에서는 꽤 알아주는 명소 중 하나다. 그런데 사실, 내가 가 본 금강공원은 영화에서 비춰진 것처럼 환상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다. 금강공원은 그저 시민의 쉼터 혹은 놀이기구가 있어 아이들이 엄마아빠 손잡고 나들이하기 좋은 공간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아빠가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곳, 그리고 등산을 마친 등산객들이 내려오거나 이제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지나쳐가는 곳이었다.

 

어쨌든 영화는 계속된다. 혜민은 나무 밑에 죽어있는 매미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고 할머니와 함께 어디론가 향한다. 혜민이가 도착한 곳은 ‘텅 빈 동물원’이었다. 다람쥐 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 그곳에, 할머니는 손녀를 데리고 온 것이다. “여기에 예전에 혜민이가 좋아하는 코끼리, 호랑이, 무서운 악어도 살았데이.”라고 말하면서. 코끼리가 살았다는 그 큰 웅덩이에는 이제 잡초만 무성하다. 그러나 호랑이와 코끼리의 몽환적인 울음소리가 그 텅 빈 웅덩이에 깔리면서,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 안에 공존하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상상력과 환상이 그 ‘텅 빈 동물원’을 채운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성지곡 동물원에 가 본 적 있지만 금강 동물원에는 가 보지를 못했다. 금강 동물원이 94년부터 경영 위기에 빠졌고 2002년에 묻을 닫았으니 88년생인 나는 금강 동물원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는 세대인 셈이다. 그러나 동물이 살고 있지 않는 동물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뿐만 아니라, ‘소녀들’ 속에서 구현된 ‘텅 빈 동물원’의 매혹적인 분위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금강 동물원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금강 동물원을 찾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금강 공원 입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니 동물원 입구가 나왔다. 그곳은 이미 오래 전에 철거가 되서 동물원이었다는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동물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약 1.5미터 높이의 검은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나는 이곳을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누군가 나를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동물원 입구에서 나와, 왼쪽 방향으로 인도를 따라 조금만 걸으니 금강사라는 절이 나왔다. 그 절 옆에 있는 샛길을 따라 올라간다면 ‘텅 빈 동물원’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내가 간 곳은 ‘텅 빈 동물원’이 아니라, 그냥 ‘텅 빈 곳’이었다. 다시 말해, 동물원의 흔적은 도저히 찾기가 힘들었다. ‘아무거나 던져 주지 마세요.’ 같은 경고판만이 이곳이 예전에 동물원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미친 처녀 귀신이 풀어헤친 푸석한 머리카락처럼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엉켜있는 길을 헤메다가 낡은 건물 앞에서 밭일을 하고 있는 아저씨를 만났다. 나는 무심히 그곳을 지나치려고 했지만 아저씨의 말이 나를 가로막았다. “여기 올라가면 안되요. 개인 사유지라서 마음대로 올라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아저씨 몰래 다른 길을 만들어 올라갔다. 다행히 몇 발자국을 옮기니 코끼리, 호랑이, 악어가 살았다는 영화 속 큰 웅덩이가 보였다. 이곳에 과연 무엇이 살았을까? 아무래도 이 깊은 웅덩이에 코끼리가 있었을 리는 만무하고 악어 정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곳에 악어는 없고 푸른 잡초만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영화 속 혜민이에게는 엄마가 없다. 엄마는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혜민이는 할머니와 아빠, 단 셋이서 산다. 아빠는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와 자기와 잘 놀아주지도 않아서 혜민이는 오직 할머니와 함께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할머니도 뭔가 심상치 않다. 혜민이가 보기에 할머니와 놀이기구 아저씨가 왠지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처럼 느껴진다.

 

혜민이는 ‘텅 빈 동물원’에 갔다 온 뒤, 스케치북에 호랑이, 코끼리, 악어 등으로 꽉 찬 동물원을 그린다. 할머니와 함께 거실에서 밥을 먹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혜민이는 할머니의 잔소리에 그리기를 중단한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아빠는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고 엄마 없는 혜민이는 점점 더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혜민이는 손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어 그림자 놀이를 한다. 그림자는 두 개, 세 개, 네 개로 늘어나고 혜민이가 스케치북에 그렸던 동물들이 살아나 거실 쇼파 위를 구르며 장난친다. 이 장면은 실사 위에 애니메이션이 겹쳐지면서 가장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혜민이의 상상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혜민이와 할머니는 그 다음 날 다시, 공원을 찾는다. 혜민이는 어제 주웠던 매미를 땅 속에 묻어준다. 그리고 놀이기구 아저씨는 “공짜로 한 번 태워줄게, 이거 안전벨트 딱 차고 타면 재미있다.”라고 말하며 할머니에게 놀이기구를 타보라고 한다. 할머니는 혜민이가 놀이기구 타는 것을 무서워한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아저씨는 막무가내다. 어쩔 수 없이 할머니는 혼자 놀이기구를 타지만 표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놀이기구는 빙글빙글 돈다.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 따라 주변 풍경도 빙글빙글 돈다.

 

‘텅 빈 동물원’ 구경을 다하고 내려오는데, 검은 철문 앞에서 40대쯤 되어 보이는 중반 남녀를 만났다. 남자가 내게 불쑥 말했다. “어, 거기 나가는 길도 없는데 거기서 뭐하요?” 다소 공격적인 말투에 나도 모르게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아, 그냥 뭐 확인할 게 있어서요.” 확인? 동물도 없이 우거진 잡초와 나무만이 무성한 ‘텅 빈 동물원’에서 뭘 확인하겠다고?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 아저씨가 다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게 물었다. “아니, 동물도 이제 없는데 거기.” 나는 당황하며 “동물원 흔적이라도 구경하려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흔적? 허허허”하고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아저씨가 가고 난 뒤, 나는 돌아서 길을 나갈까 아니면 그냥 철문을 뛰어 넘을까 고민했다.  결국 나는 철문을 뛰어 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철문 위쪽 고리에 바지 가랑이가 걸려 보기 좋게 자빠졌다. 나의 기막힌 운동 신경이 아니었다면 다리 하나는 족히 부러졌을 것이다.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금강공원 입구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나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가 탔던 전투기 놀이 기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위를 둘러보니, 할머니와 혜민이가 앉아서 쉬던 벤치가 사라지고 없었다. 영화가 만들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곳도 어느새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금강공원은 활기가 넘치는 상쾌한 곳이었으나, 그 바로 옆에는 이미 폐허가 된 동물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가 이 두 공간을 두루 보여준 것처럼 나도 이 두 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에 있다가 갑자기 헐벗은 건물과 풀어헤쳐진 나뭇가지 그리고 녹슬어버린 경고 문구를 보았을 때,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혜민이가 황폐한 동물원을 천진난만한 상상력으로 되살려 내고 있을 때, 그리고 죽은 매미를 주워 다시 땅 속에 묻을 때, 그 똘망똘망한 눈망울에서 별다른 감정을 발견할 수 없을 때도, 나는 혜민이의 순수한 환상에 동화되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를 갈등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신기하게도 이 줄타기 속에서 중심을 잘 잡고 버티고 있었다. 혜민이의 환상에 동화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 환상을 내치지도 않았다. 영화 속, ‘텅 빈 동물원’에 울려 퍼지던 동물의 울음소리는, 그 공간을 죽은 공간도, 그렇다고 생기있는 공간도 아닌, 죽음과 생명,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환상이 살아 숨쉬는 공간. 금강 동물원은 나에게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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