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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38호(2012.06)

[배우 박성진의 시골에서 호작질하기]봄, 거창에서

[배우 박성진의 시골에서 호작질하기]봄, 거창에서

글, 사진 : 박성진, 정영주 norae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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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거창에서

 

1. 도룡뇽

 

3월 말. 식목일이 오기 전에 어린 사과나무를 심었다. 삽으로 땅을 파다 보물을 캤다.
심봤다! 도.룡.뇽!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거나 깰 준비를 하고 있던 폼이다.
행여 다칠까봐 장갑 벗은 손으로 흙 묻은 채로 보듬었다. 엊그제 또다른 도룡뇽을 본 물가에 갖다놓았다. 내 먹고 살겠다고 땅을 헤집어놓고 정작 땅주인들을 홀대했네.
우리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상주해서 살다시피하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개간했다,
엉겹결에 마을 뒷산의 문지기가 된 우리. 이들과 더불어 잘 살아야 할 텐데......
개간한던 첫날, 나무를 자르던 첫날, 마을 형님이 소주를 들고 와 땅에다 부으며 말했다.
“성진아, 절해.”

 

애초에 땅은 주인이 없다. 우리 살 때까지 잠시 임자 노릇할 거라고, 술로 고할 뿐이다. 

 

2. 깨어나는 고추와 옥수수와 오이와 호박과 곰취

 

고추모종. 작년엔 시장에서 사다 심었지만, 올해는 하우스에서 키웠다.
작년에 고추값이 좋아서 올해 고추모종 값이 올랐다. 한 개 200원? 300원? 1000포기면 얼마야? 삼십만 원이잖아. 으악! 씨는 한 봉지에 5만원.
안되겠다, 우리도 고추모종 키우자!
촉을 틔운 고추씨를 사와서 아궁이 방에서 이른 봄부터 키웠다. 가만, 어? 싹이 나네. 아, 다른 것도 하자. 옥수수! 오케이! 오이는? 오이도 좋지. 호박도! 곰취까지!
잠자는 생명이 흙을 만나 물을 만나 온기를 만나 깨어난다. 머리를 밀고 올라온다.
단, 들쥐는 조심할 것! 성질나니 지 먹을 것도 아니면서 헤집어놓음!

 

3. 일거리! 놀거리!

 

우린 일거리! 아이들은 놀거리!
논에 모자리하는 날. 장화가 뻘에 박혀 걷기 힘들어 아예 신을 벗고 발을 동동 걷었다.
맨살과 물을 머금은 흙이 만나는 순간. 에구, 여보 힘들어. 할 줄 알았나? 아싸, 완전 기분좋다!

 

그 때, 우리 개똥이들 왈 “ 엄마, 옷 벗고 들어가도 돼?”
그래, 안될 것도 없지.
허나, 난 들어오라고만 했다.
들어와서 온데 슬라이딩하면서 논바닥을 뛰어다니라고는 안했다.
그 속에서 똥누란 소리도 안했다. 수영하라고도 안했다.
개똥이들아, 그만 뛰어다녀!

 

집에 와서 보니 옷이 뻘물이 들어 빨아도 지지 않는다. 이게 바로 황토염색? 크크..
 

양파, 마늘, 겨울초, 시금치, 쪽파..땅속에서 겨울을 오롯이 나고 봄에 자란다.
신기하단 말이야..심으면 자란다. 분명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혹한을 견뎌낼 힘, 누가 주었을까.

 

소망한다. 자연처럼만 자라다오.
부디 그렇게 놀아라.
민주야, 나래야, 한음아, 현주야, 강산아, 지상아, 은진아, 재민아, 세은아, 하람아, 희선아, 희준아, 범석아!

 

4. 명랑운동회

 

봄철, 일철에도 쉬어가는 날이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함께 달린 명랑운동회.
우리 한음이, 아빠를 닮아 발에 발통을 단 우리 개똥이가 달리기에서 역시 일등을 먹었다.
출발은 한발 이상 늦었는데..
웃는다. 그래, 좋다. 아싸 가오리!
봄철은 우리 한음이 발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겠지?
그래, 좋다. 달린다. 아싸 가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