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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기획] 거리예술 _ 거리예술의 다양성
글, 사진제공 : 임수택(과천축제예술감독, 한국거리예술센터 대표) sutaeksi@hanmail.net
거리예술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실로 거리예술은 어느 공연예술 장르보다 다양한 실험들을 시도하면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매년 거리예술축제에 가보면 이런 형식의 공연도 가능하구나 하고 자주 감탄하곤 한다. 프랑스국립거리예술연구소(horlemurs)가 펴낸 ‘거리예술의 미학’이라는 비디오에서는 거리예술을 8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중 연극 혹은 무용 등 형식에 따른 7가지 외에 딱히 어떤 형식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달라진 도시(The diverted city)” 편이 있다. 이에 속하는 공연들은 도시의 질서를 파괴하고, 자동차와 보행자의 흐름을 바꾸는가 하면 공공공간과 건물의 본래 목적을 변형시킨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질서를 조장하는 것은 아니고 허구를 지어냄으로써 익숙한 환경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델리스 다다(Délices Dada_프랑스)의 “D 코스, 가이드 방문”(Circuit D, visites guidées)에서 관객은 가이드를 따라 도시 관광에 나선다. 가이드는 안내를 하는 동안 도시의 갖가지 모습을 작위적으로 해석하고 이야기를 지어내 관광객이 된 관객들에게 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가 하는 안내는 전부 거짓이고, 아주 순진한 관객 외에는 모두가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관객은 그의 거짓에서 유쾌한 상상력을 확인하는가 하면, 때로는 현실에 대한 씁쓸한 풍자도 읽을 수 있다.
그룹 류드(Ljud Group_슬로베이나)의 “거리미술관”(Street Walker)에도 가이드와 비슷한 도슨트가 관객에게 미술관을 안내한다. 물론 미술관은 거리에 있다. 그렇다고 미술관을 거리에 옮겨놓은 것은 아니고, 거리의 갖가지 간판이나 물건 혹은 구조물을 미술작품으로 해석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이 설명 역시 모두 거짓이고, 관객들도 이 사실을 안다. 그러나 이들의 거짓된 엉터리 안내는 거리를 유쾌한 상상력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줌과 동시에 종종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해석을 지어냄으로써 현실에 개입하려는 예술을 제시하기도 하며, 또한 미술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다소 긴 이름의 원스텝 엣 어 타임 라이크 디스(One Step at a time like this)(호주)의 “거리에서”(en route)는 관객 한 명만을 대상으로 한다. 관객은 엠피스리(MP3)와 거기에 연결된 헤드셋을 제공받고,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지시하는 대로 길을 가고 음악을 듣는다.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들음으로써 그는 거친 현실에서 벗어나 감성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때로는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거리의 어느 전광판에는 광고나 경고 문구 대신에 아름다운 시(詩)가 흘러나온다. 헤드셋을 쓰고 있으니 음악을 들으면서 시를 읽게 된다. 텅 빈 옥상 주차장에서 홀로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음악을 듣다 보면 저절로 침잠해지기도 한다. 이동의 마지막은 아무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이루어진다. 그곳에서 관객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벽에 쓰게 한다. 그동안 음악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일깨워진 감성이 폭발한다. “**야 사랑해!”가 가장 자주 쓰는 문구이다.
오페라 파가이(Opera Pagai)의 “가까이 들여다보는 사파리”(Safari intime)는 관객을 좁은 골목으로 안내한다. 이 공연의 목적은 거리극을 표방했음에도 ‘거리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 공연에도 안내원이 있지만, 적극적인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흐트러지지 않게 흐름을 조절하거나 발견하기 어려운 곳을 가리키는 역할만 한다. 공연의 목적대로 관객은 ‘거리에서 볼 수 없는’ 집안이나 정원, 지하주차장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한다. ‘사파리’의 대상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와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창문에는 다음과 같이 안내문구가 적혀있다; “♀ 45세, ♂ 42세, 사내아이 10세, 아이는 오랫동안 부모와 함께 살지만, 10세 무렵이 되면 정신적으로는 부모 곁을 떠날 준비를 한다.” 주차장에서 사랑을 나누는 한 쌍의 젊은이, 방에서 수없이 속옷을 갈아입는 소녀, 경찰차 안에서 남의 편지를 뜯어보는 경찰, 성적 정체성에 방황하는 젊은이,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홀로 된 중년 남자 등을 볼 수 있다. 공연은 실제로 우리가 거리에서 볼 수 없는 갖가지 풍경들을 마련하고서, 인간이라는 동물의 숨겨진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
어느 광대는 왕복 6차선의 도로 한가운데에서 샤워를 하고 싶었다. “로빈슨크루섬”(호모루덴스_한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작품에서 그는 교차로 한 가운데에 아주 작고 예쁜 오두막집을 섬처럼 세우고,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은 후 샤워를 했다. 다시 옷을 차려입으려는 찰나 옷이 오두막집 밖으로 떨어지고, 그는 옷을 집어 들기 위해 할 수 없이 극히 중요 부위만 가린 채 밖으로 나와야 했다. 관객들도 배우만큼 긴장했다. 한낮 큰길에 한 사내가 거의 벌거벗고 나타난 것이다. 옷을 주어 입은 그는 지휘를 하기 시작한다. 그의 지휘에 맞춰 준비된 음악이 흘러나왔다. 차량의 거친 소음이나 들리던 곳에 아름다운 음악이 크게 울려 나오는 것이다. 그의 이 행위가 용납될 리 없다. 이내 어디선가 지게차가 나타나 오두막집과 함께 그를 데리고 가버리고, 음악도 사라진다. 그 광대는 이를 통해 차량으로 점령된 삭막한 도로에 인간적인 면모와 아름다운 음악을 안겨주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 거리예술은 마치 봇물이 터져 나오듯 매년 아주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래서 종종 이런 형식도 가능하구나 하는 감탄이 나오는가 하면, 이런 작품도 거리예술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거리예술을 정립하려는 학자들은 매번 이러한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허덕인다. 유럽에서 1970년대 시작된 이래 1990년대 질과 양 모두 크게 발전한 ‘거리극’(street theater)은 2000년대 들어 영상예술이 합류하면서 ‘거리예술’(street arts)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그러더니 몇 년 전부터는 ‘공공공간 예술’(arts in public space) 등 다른 용어들이 아주 많이 등장했다. 용어가 이렇게 자주 바뀌고 또 여러 용어가 난무한다는 데에서도 우리는 거리예술이 얼마나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2012서울국제공연예술제 “거리에서” 참가기(블로그 참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ziayang&logNo=60200225502
원스텝 엣 어 타임 라이크 디스 홈페이지
http://www.onestepatatimelikethis.com/enrout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