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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1호(2012.12)

[생활기획공간 통]'우리가 남이가'와 '독고다이' 사이

[생활기획공간 통]'우리가 남이가'와 '독고다이' 사이

 

 

박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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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가”와 ‘독고다이’ 사이

 

박진명

 

 

 

# 1

  흔히 부산 사람 기질에 대해 ‘우리가 남이가’라는 이야기를 곧잘 한다. 특히 남자들의 세계가 더 그런데 ‘마’ 술자리 몇 번 하면 자연스레 ‘행님, 행님’되면서 무리가 지어지는데 무리를 이탈하면 ‘궁물’도 엄따. 근거를 알기도 어렵고 이성적이지도 않은 그 관계성이 외부의 시선에서는 부담스럽기도 신기하기도 했겠다. 그 사람들 눈에는 ‘친구 아이가’ 뒤에는 아이라 카믄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리겠다는 모종의 협박이 포함된 것처럼 보일 법도 하다.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는 게 어디 대화하는 거가 싸우는 거지. 부산출신 서울 공무원들이 부산 오기를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오면 직장 상사가 갑자기 행님으로 둔갑할 수도 있으니까.

 

  또, 예전에 혈액형 A형에 별자리 사자자리에 경상도 남자라면 삼재라고 들은 적이 있다. 소심함과 무뚝뚝함이 3중이라서 여성들이 피해야할 1순위라는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못생겼다거나 성격이 안 좋다는 것보다 더 치욕적인 남성에 대한 혹평인 줄 알았다. 99년 전후로 무뚝뚝한 남성의 시대는 가고 자상하고 개그 잘 치는 사람이 인기 있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던 징후다. 그 전에는 무뚝뚝하던 선배들 연애만 잘 하더니만, 그 멋을 따라 개폼 잡던 후배들은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부산도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요런 부산사람의 기질이라는 것이 한 번에 싹 사라졌을 리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부산에 살고 있는 예술가 남자들은 어떨까. 예술가가 창조적인 작업을 하려면 자기만의 동굴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가 보통 사람들과 동일한 시공간을 살면서 동일하게 체험하고 바라본다면 예술이 탄생하기 어렵다. 보통 우울하거나, 대인기피증을 가졌을 것만 같은 예술가들은 각자만의 그런 동굴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예술가들 중에 유독 독고다이가 많은 이유다.

 

  창작에 몰두하는 사람일수록 관계에 취약할 수 있겠다. 그러니 부산에서 창작에 매진하는 예술가는 ‘우리가 남이가’나 ‘행님 행님’에 좀 취약하다. 그러면 부산 ‘싸나이’도 못 되고, 대박 난 ‘싸이’도 아니어서 동굴이 여전히 필요한 예술가들은 폐병에 걸려 쓰러질 때까지 독고다이로 살아야 하는가. 혹시 A형에 사자자리에 경상도 남자인데다 게다가 예술가이기까지 한 사람도 있을 법한데 주눅 들지 말자. ‘우리가 남이가’도 아니고 ‘독고다이’도 아닌 이상한 종들도 있다.

 

# 2

  10월 28일 경륜장이 있는 부산의 스포원에서는 금샘 외국인센터가 개최한 인도네시아 축제가 열렸다. 공연과 부스야 대부분의 축제가 비슷하니까 특별할 것 없지만 옆의 축구장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이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었다. 조기축구회처럼 유니폼을 맞춰 입고 공을 차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오후 2시. 힙합 패션부터 잠잘 때나 입을 추리닝 패션, 웃통을 벗어 재낀 사람까지 도저히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한 무리가 경기장에 나타났다. 축구화를 신은 사람도 두세 명 뿐.

 

  인도네시아 팀과 친선경기를 하기 위한 문화단체 반상회 팀의 모습이다. 쪼리를 신고 오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예측을 정확히 실현시킨 친구도 있었다. 20분쯤 몸을 풀고 호흡을 좀 맞춰보고 나니 심판이 도착했는데 몸 푸는 동안에 이미 다수는 방전된 상태였다. 인사를 하고 경기 시작! 인도네시아 창원팀의 노련한 공격이 이어졌다. 그 날의 경기는 축구가 아니라 야구였다.

 

  스코어 7:1. 전후반 없이 30분 만에 완패했다. 패배의 요인을 찾자면 전 날에도 술․담배에 혹사를 했을 폐나 간, 숨쉬고 공연할 때말고는 쥐뿔도 안 하는 운동, 불규칙적인 생활,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생활, 오합지졸의 팀워크 등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승부욕이 과한 한둘의 오기는 있을지언정 졌다고 참담해하거나 울상을 짓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폐에 과도한 산소가 공급되면서 호흡곤란을 일으키거나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이 있었을 뿐. 우리를 이리저리 따돌린 상대편의 7골은 안중에 없이 중앙선에서 날린 우리의 기적 같은 한 골에 헤헤거리며 뒤풀이에서 또 간과 폐를 혹사시켰다.

 

# 3

  이 희비극의 주인공들은 부산대 일대에서 매월 문화단체 반상회를 하고 있는 장전커넥션의 멤버들과 그들의 친구들이다. 이 날 축구에는 재미난 복수, 생활기획공간 통, 화가공동체 민들레, 작은고추디자인스튜디오, 개념미디어 바싹의 멤버들이 힘을 합쳤다. 그리고 축구 하는 동안 DJ 플레이를 하면서 골이 터지면 효과음을 울려주자는 아이디어 때문에 왔지만 공연장과 축구장의 거리가 멀어 실행하지는 못한 건봉의 친구들이 부족한 자리를 채웠다.

 

  이런 오합지졸들의 만남은 그리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만남이야 시차가 있겠지만 2011년 회춘프로젝트를 통해 안면을 트고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각자의 공연이나 전시 등에 초대하기도 하고 함께 행사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흔히 경상도의 ‘우리가 남이가’랑 다른 점이 있다. 애초에 그룹이 있어서 ‘형님’하고 부를 사람도 없고, 그저 각자가 잘하려다 보니 도움을 요청하고 도와주면서 ‘장전커넥션’이라는 그룹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활동 경력과 분야도 다양하지만 함부로 상대방을 동생 취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뭉치는데 안 온다고 집단 따돌림을 하지도 않는다. 뭉쳐봐야 같이 술이나 마시고 담배나 피다가 맘 맞으면 공연이나 축제를 함께 만들고 바쁘다 하면 바쁜 대로 ‘먹고 살라니 바쁘겠지’ 그러려니 넘어간다. 이심전심. 내가 먹고 살기 팍팍한 만큼 저들도 그렇겠지.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래도 문화나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들이니 자기만의 동굴도 있어야겠거니 어디 훌쩍 여행을 가거나 한 동안 안 보인다 해서 욕할 것도 없다. 굶어 죽지 않는다면 다시 나타날 테니. 그래도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고집들은 또 세다. 근데 신기한 게 고집들이 센 사람들도 같이 뭉치고 협력하다 보면 배려도 배우고 조율의 방법도 익힌다.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외국인들의 축제에 오합지졸이 팀을 꾸려 스스로 즐겨보자 한 거고, 7:1의 완패에도 유쾌하게 소주잔을 함께 나누는 힘이 생겼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굴 속에 갇혀버린 독고다이도 아닌 빈 틈은 이렇게 별 것 아닌 일에서 하나 둘 생겨난다. 그러니 부산에서 힘들게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 모두를 싸잡아 ‘니도 남이 아니가’나 ‘니도 독고다이가’이래 막 묻지 말자. 예의 없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