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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1호(2012.12)

[공무원이 띄우는 오래된 사진 한 장]국가의 주문, 폐허 속으로 집합!!!

[공무원이 띄우는 오래된 사진 한 장]

국가의 주문, 폐허속으로 집합!!!

 

 

노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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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주문, 폐허속으로 집합!!!

 

노진숙

 

2006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당시 연지동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었고, 빗소리가 거세지더니 한 두시간 후, 동사무소의 전화기가 불통이 될 정도로 많은 민원이 접수되었다. 기습적 폭우에 초읍 어린이대공원 아래 복개로가 잠겼고, 집 안방까지 물이 넘쳤다는 것이었다. 동 주민센터(동사무소)에서 주민의 엄지손가락을 관리(담당업무가 주민등록증 발급이었으므로)하고 있었던 내가 불어난 빗물을 감당할 재주는 없었다. 피해 현장을 확인하러 출동조차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주민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예, 지금 나가보겠습니다, 가 전부였다. 그 대답은 배달이 왜 이리 늦냐며 전화를 하는 고객에게 ‘지금 막 출발했습니다’라고 외치는 음식점 주인의 대답처럼 공허한 것이었다.

 

비가 그치고 집안에 넘치던 물이 빠지고서야 현장에 도착했던 기동(!)출동반에게 주민들은 한결같이 ‘인재’임을 주장했다. 상류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내 성지곡수원지의 물을 ‘나라’에서 방류하는 바람에 복개로가 강물이 되었다는 것, 그 증거로 수원지에 있어야 할 잉어가 복개로 곳곳에 눈에 보인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대리통치자인 기동출동반이 할 수 있는 것은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는 것과 피해 상황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후 조사는 철저했으나(!), 보상에 대한 불만으로 동네는 한동안 시끄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가는 성지곡수원지의 조성을 통해 무엇을 ‘관리’하고자 한 것일까. 물을 통치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물을 통치하고자 하는 제스쳐-수원지의 조성-를 통해 국민을 통치하고자 한 것일까. 폭우에서 드러났듯이 허구에 불과한 ‘물의 관리’는 성지곡 수원지라는 풍경을 만들어냈고, 풍경에 매몰된 국민을 기만하여 온 것인가.

 

김영하의 소설 <나쁜 버릇>은 2038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김영하는 정신개량법을 위반한 작가이다. 정신개량법 제3조에는 개인이 국가의 허가 없이 소설이나 희곡, 영화대본과 같이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창작하거나 이를 시도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신개량법 위반으로 거듭 처벌 받는 주인공은 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을 간단한 전기자극과 약물 치료 받을 것을 강요당하고, 상습범인 그를 약물 치료 대상으로 형 확정할 것임을 암시하면서 소설은 종결된다. 개인에 대한 국가의 지배가 신체를 넘어서 정신을 장악하게 될 것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법이라는 통치기구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한다.

 

국가는 점점 더 ‘관리’를 세분화해 나간다. ‘물’과 같이 거대한 자연의 영역에서 비롯되었던 관리가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그것은 얼마 전 업무상 열게 된 ‘이상한’ 회의를 통해 증명되었는데, 그 회의에서 관리대상으로 지목되었던 것은, ‘카페내 흡연 여성’이었다. 외벽이 유리로 된 카페내 흡연 여성의 모습은 도로 주행자들(대다수 국민들)이 보기에 몹시 불쾌하고 심지어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카페 외벽을 콘크리트로 바르던지, 흡연 여성을 안 보이는 곳으로 추방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주민의 요청에 30명 가량 되는 참석자들은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고, 회의 주재자는 추방을 약속하였다. 이 약속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복원 불가능해 보이는 개인의 정신, 국가에게 요청하는 것이 ‘개인의 삭제’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 개인을 지우는 행위-다양성의 삭제-를 통해 자신의 존재-일원화된 국민-를 확인하도록 하는 구조, 2038년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정신은 이미 국가의 통치하에 있는 듯하다. 과거는 이미 지워졌고 미래는 벌써 와버렸다. 역사는 사라지고, 역사 없는 개인의 사생활만이 국가의 이념이 되었다.

 

바닥을 드러낸 성지곡수원지의 모습은 참혹하다. 국가가 다시 건축하고자 하는 것은 진화된 통치술이다. ‘물’이라는 풍경안에 감추어져 있던 국가는 겁도 없이 풍경을 제거하고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었건만, 국민들은 그 폐허 속으로 매몰될 준비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