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적긁적 독립영화 뒤통수 긁어보기]
조규일 감독의 ‘봄’ - 물만골에 봄이 오면, 자라다 - 어긋나다
작은 편집장: 임태환(xlros0000@naver.com)
사진: 김덕원(kkedo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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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은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오면, 왜 너와 나는 어긋나는 걸까? 차갑게 굳은 몸이 기지개를 켤 때, 네가 바라보는 나는 왜 추운 겨울의 ‘나’가 아닐까? 모든 것이 축복받으며 성장하는 시기인 ‘봄’, 그래서 서로 다른 길을 따라 어긋나는 계절이기도 한 ‘봄’, 조규일 감독의 ‘봄’은 그 성장 속에서 어긋나 버린 순간을 이야기한다.
물만골 가는 길
또 어긋났다. 사진 찍는 친구와 ‘나’는 매번 약속장소와 시간이 엇갈린다. 10시에 보기로 한 약속은 11시로, 연산역 4번 출구에서 6번 출구로. 뭐, 이 친구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제발 사진만 어긋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물만골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웠다. 추위와 더위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탓이다. 스웨터를 벗어 던지고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었지만, 사진을 찍으려면 걸어야만 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지나 물만골 입구에 도착했다. 앞에는 물만골 지도가 그려진 안내판이 있었다. 그 지도를 보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짐작했다. 수민과 우형의 관계가 어긋나버린 곳으로.
물만골 놀이터
비바람에 꺾여버린 나뭇가지처럼 위태로웠다. 분명 사람들은 그까짓 고양이하며 지나가겠지. 봄은 어딘지도 모르는 차가운 곳에서 검은 바람을 맞으며 울고 있었다. 말라빠진 몸을 비틀면서.’
수민이 우형에게 -고양이 이야기 中-
산 중턱에 있는 물만골 놀이터는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달팽이 도서관의 유리창은 이미 깨진 지 오래되어 보였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있어야 할 책은 없었고 내부는 아늑하지도 않았다. 일요일 오전이었지만 그곳에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놀이터에는 아이들 대신에 어르신들이 계셨다. 한 아주머니가 큰 가마솥에서 추어탕을 끓이고 있었다. 우리가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아주머니는 부끄러워하셨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시던 아저씨가 웃으며 말씀하신다. “사진 찍으러 왔나? 거만 찍지 말고 여기도 찍어봐라.” 추어탕을 끓이던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국물이 아주 시원해 보였다.
황령산로 503번길
물만골 놀이터를 지나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갔다. 곧 황령산로 503번 길이 나왔다. 그곳은 수민과 우형이 함께 등교하던 길이었다. 벽에는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재치 있는 문구가 엿보였다. 수민과 우형이 걸어온 곳으로 가보니 그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골목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집을 살피는데 갑자기 문이 불쑥 열렸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흠칫 놀랐다. 검은색 치마에 분홍색 카디건을 걸치고 외출하는 젊은 여자였다. 나와 여자의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여자의 눈은 마치 ‘이건 뭐야?’라는 듯했다. 그리고는 문을 잠그고 제 갈 길을 갔다.
물만골 산책로
비가 오던 어느 여름밤, 봄은 사라졌다. 바스러진 작은 몸을 감싸주던 따스한 손길도 이제는 파랗게 물들어, 남겨진 건 또 하나의 생채기뿐이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연붉었던 눈동자를, 붉게 물든 눈동자를, 검붉어진 눈동자를.
수민의 독백
아~ 힘들어!! 물만골 산책로에 도착하자 사진 찍는 녀석이 땅바닥에 발라당 누웠다. 좀 쉬고 하자고. 이 녀석의 저질 체력은 좀 알아줘야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이 누운 곳이 산책로 한복판이라 사람들이 흘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나는 쪽팔려서 그만 일어나라고 했는데 녀석은 요지부동이다. 사람들의 말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그 녀석은 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일어나지도 않는다. 내가 재차 일어나라고 하자 그 녀석의 말, “아~ 원래 산에서는 이렇게 누워도 돼.” 그래 누울 수 있지, 그런데 길 한복판이라서 문제지. 이 녀석과 나도 여기서 이렇게 어긋나버리는 것일까.
내려가는 길
내려가는 길에 또다시 놀이터를 지나쳤다. 수민이 우형을 기다리던 놀이터, 수민과 우형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그곳에는 이미 많은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서 추어탕과 막걸리를 드시고 계셨다. 취기가 오르신 어르신이 사진 찍는 녀석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 와서 한잔하고 가라.” 결국, 그 친구는 막걸리 한 잔을 받았다. 그리고는 또 추어탕 한 그릇 하고 가란다. 아~ 역시 가을에는 추어탕이 제격이다.
수민이 우형에게 전달한 고양이 이야기의 마지막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우울하다는 우형의 감상평에, 수민은 조금 더 밝게 내용을 고쳤을까? 물론, 우리는 알 수 없다. 우형은 수민의 글을 읽어 보지 않았고, 사소한 어긋남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그 어긋남을 바로 맞추기 위해 수민과 우형은 서로 자신의 진실을 전달하지 않았다. 수민은 달팽이처럼 계속 자기 안으로 숨어 버리고, 우형은 주변 친구들의 말에 휘둘린다. 자란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서로 삐거덕거리는 아픔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닐까?
#S1. 놀이터
“이번에 같은 반 됐으면 좋겠다.”
#S2. 골목
수민: “우형아 너 오늘 학교 끝나고 뭐해?”
우형: “몰라 왜?”
수민: “아니 그냥 밥이나 같이 먹자구.”
우형: “그래~”
#S3. 교실 안
수민: “예전에 고양이 이야기 그거 뒷부분.”
우형: “뭐 이런 걸 아직 써, 나중에 볼게”
#S4. 술집 안
아 근데 성현이랑 수민이랑 너랑 같은 중학교 아니었어?
그래 근데 솔직히 같이 다니기 좀 그래 장난쳐도 웃지도 않고
우형: 수민이가 좀 내성적이어서 그런 거야. 오해하지 마.
#S5. 놀이터
버려진 수민의 쪽지
#S6. 골목
우형: “아 어제 갑자기 일이 생겨서, 화났어? 연락하려고 했는데 너 핸드폰도 없구, 삐치지 마.”
#S7. 학교 운동장
우형: “이제 알겠네 애들이 왜 널 따돌리고 같이 놀지 말라는지. 이때까지 너랑 놀아준 내가 병신이다. 꺼져.”
우형에게 간밤에 주운 쪽지를 건네주는 수민.
#S8. 산속
터벅터벅, 느릿한 수민의 무거운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