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띄우는 오래된 사진 한 장]소풍을 빼앗긴 소년들
글 : 노진숙 rakesku@hanmail.net l 사진제공 : 송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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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을 빼앗긴 소년들
잠들지 못한 밤이 있었더니라. 그런 밤은 동네 우물 안에까지 달님이 내려왔었더니라. 다락방 창문에까지 별빛이 쏟아졌더니라. 소년은 내일을 기다리느라 잠들지 못하는데 잠들지 못한 밤에는 꼬꼬닭이 울도록 내일이 오지 않았더니라. 오라는 내일은 오질 않고 동만 터 왔다더라. 햇님만 바스스 웃음 지었다더라. 소년아, 잠들지 않으면 결코 오늘밖에 없나니 내일을 품고 있는 것은 잠 속이요, 꿈 속이니라. 잠든 이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내일이니라. 그러니 잠들거라, 꿈꾸거라, 소풍갈 수 있도록 내일이 올 때까지.
총총별이 얼마나 떴는지, 달무리가 얼마나 졌는지 내일 날씨를 가늠해보며 하늘만 올려다보던 밤은 없었는지. 비가 오는 건 아닐까, 소풍을 못 가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잠들었던 밤은 없었는지. 35년 전 연산초등학교 교정에는 가을 소풍으로 들뜬 학생들로 가득하다. 학생들에게 소풍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이다. 김밥을 어찌 만날 먹는 김치와 비교할 수 있으랴. 오색찬란한 야채가 심기워져 있는 그 동그란 김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보아도 보아도 어여쁘지 않았던가. 병사이다를 소풍가방 깊이 숨겨놓은 소년은 입안이 벌써부터 달디 달다. 닳아진 교복, 짧아진 소매, 덧댄 무릎, 숨겨도 숨겨도 비집고 나오는 남루한 것들, 5학년 송갑영군의 얼굴 옆으로 수줍게 피어난 낡은 꽃 한 송이. 학교인근 배산 중턱에 걸터앉은 네 명 소년들의 행복은 티가 없다. 삶에서 소풍을 행복한 사건으로 배치했던 사진 속 그들은 지금은 이 세계에서 자신을 어떻게 배치시키고 있을까. 소풍이 이만큼 늙어져 오늘날의 소년들에게 아무런 매력없는 것이 되었는데 사진 속 저들의 삶도 그만큼 늙었을까.
개인이 체험한 소풍과 근대 학교 교육이 기획한 소풍은 그 색깔이 전혀 다르다. “학교교육은 교과서를 통한 지식전달과 교실 밖에서 전개되는 단체 훈련(소풍, 운동회, 수학여행, 집단체조, 조회 등) 등을 통해 학생들의 신체와 행동을 직접 통제하고 훈련하는 교육방식”이다(윤해동, 천정환 외 3명, 『근대를 다시 읽는다』 1권, 역사비평사, 2006, 86쪽 참조). 하지만, 학교라는 체제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건 학생들에게 소풍은 신나는 사건이었다. 그러한 소풍이 의미를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2012년 봄소풍을 갔던 소년들은 피로하다. 이미 가정에서 주말마다 여행이 예정되어 있으니 학교소풍은 반복되는 행사로 전락하였고, 학생들의 신체와 행동을 통제하는 훈련은커녕, 통제불가능한 학생들을 확인하는 행사일 뿐이다. 아니 통제 불가능한 자본의 어두운 그림자를 확인시켜주는 작은 일상이다. 소년들은 엄마들의 욕망이 투영된 대상이 되어 재단된 시간 안에 배양되어지고, 그 시간 속에 소풍은 소품조차 되지 못한다. 시간마다 촘촘히 짜여진 일과는 소년들에게서 행복의 싹을 아예 거두어 간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에서 대통령이나 외교관이 사라진 지 오래,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공무원이라는 현실은 소년들의 슬픈 미래를 말해주고 있다. 꿈을 상실하였으니 희망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였으니 밥벌이를 장래희망으로 삼는 세대, 그러한 미래가 온다는 것이 몸서리쳐지지 않는가.
소풍이 공부에 열중한 소년들에게 박하사탕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주었고, 네모반듯한 교실에서는 꺼내놓기 어려웠던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였었다. 이제는 그러한 청량감도,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 공간도 상실한 소년들은 어디에서 또다른 소풍을 꿈꾸고 있을까. 자신의 현재를 미래에 저당 잡힌 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소풍이라는 작은 놀이조차 삶에서 배제되고,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교육용 체험 여행을 전전하는 우리들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내일이면 소풍간다는 설레임에 들떠 잠들지 못했던 소년들, 그 소년들에게서 잠들지 못한 밤을 빼앗아 간 이들은 누구인지. 소풍을 빼앗긴 소년들은 저항조차 빼앗겨 어른보다 고단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여행은 자본만큼 넘쳐나고 새로운 여행상품은 끝도 없이 탄생하지만, 소풍은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