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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7호(2013.12)

[우린어떻노 부산살피기] 공무원이 띄우는 오래된 사진 한장_매우 사적인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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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어떻노 부산살피기] 공무원이 띄우는 오래된 사진 한장_매우 사적인 관광지

 

글: 노진숙(공무원) jinsuknoh@hanmail.net

사진: 김은주

 

 

 

 

이십 년은 훌쩍 넘었을 법한 한 장의 사진 속에는 그야말로 온 국민의 관광지인 해운대를 찾은 청춘들이 앉아 있다. 영화 박하사탕에 나오는 장면 같기도 하다. 우리는 매번 동그라미를 그려 둘러앉았었다. 무대라고 할 만한 것은 모래가 빽빽한 백사장과 바다였다. 우리들의 노랫가락에 효과음이라면 파도소리나 갈매기 소리, 그리고 친구들의 손뼉 치는 소리였고, 조명이라곤 달빛이 전부였다. 그것으로도 충분했었다.

저 사진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들, 털어도 털어도 남겨져서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모래알처럼 우리들의 기억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들, 그것은 무엇일까. 오래된 사진에서 느끼는 낭만적인 향수를 제거하더라도 끝내 남는 어떤 기운, 그것은 꾸밈없는 해운대라는 장소가 가진 힘이 아닐까?

그런데 이제는 해운대라는 고유의 장소성은 점점 탈취당하고, 그 위에 덧입혀진, 문화(?) 또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오염된, 전혀 다른 해운대가 등장한 듯하다. 관광과 문화가 산업이 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지 않으면 매력을 잃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오히려 극도로 화려하게 치장하게 된 탓이다. 그런 극한의 화려함 속으로 빨려 들어간 해운대, 그리고 해운대와 같은 운명의 그 많은 “장소들”에 애도를 보낸다.

주목받던 관광지가 점점 매력을 잃자 사람들은 도시 외곽의 삶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화려함에 싫증난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킬 만한 소재가 바로 골목길이고 산복도로인 것.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사업이 몇 년 전부터 추진되고 있고, 취지는 인문학적이기는 하지만 산복도로 르네상스로 행복해진 사람들은 누구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자신들의 담벼락에 총천연색 물감을 칠해준 것에 대해 그들은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을까.

칠팔 년 전 취미 삼아 사진 찍는 것을 즐겼는데, 그때 벽화로 유명해진 안창마을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회색 담벼락보다는 벽화가 그려진 담이 이색적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보니 그곳은 숨기고 싶어하는 도시의 외곽을 벽화 안으로 은폐해 놓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작 그 터 주인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고, 그곳을 관광 삼아 찾는 자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치. 타자들의 삶의 장소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즐거워하는 자들의 폭력성,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이 느껴졌었다. 자신의 사적 공간을 지킬 권리마저 박탈당한 개인, 타인의 삶을 향수로 느끼고 추억하고 즐기기를 강요받는 익명의 다수들. 극히 개인적인 삶의 장소인 담벼락까지 관광화되고 있으니 가히 이러한 문화는 폭력적이라고 할 만하다.

온 나라가 관광지이고 연중 축제인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전국의 유명한 장소가 더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지 못하자 찾아낸 것이 보호되어야 할 사적 공간인 내 이웃의 담벼락, 내 이웃의 골목길, 내 이웃의 처절한 삶의 장소라 생각하니 사뭇 서글프다. (“나”는 그 곳에 전혀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러한 빈민촌/산복도로에 살아주어야만 “나”는 그곳을 즐길 수 있다. 그곳은 나의 구경거리가 될 때 의미 있는 장소가 된다.) 그곳은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며 개인들에게 반환되어야 할 지극히 사적인 장소라 여기면서 오래된 한 장의 사진에 주목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