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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어떻노 부산살피기] 손바닥소설_ 종편뉴스에도 늠름한 이병욱씨를 보라
글: 배길남(소설가) rakesku@hanmail.net
일러스트 : 전진경 wjswlswls@naver.com
< 종편 뉴스에도 늠름한 이병욱 씨를 보라>
“철수야, 니 대체 어데고?”
“아, 미안하다. 빨리 서둘렀는데 차가 말썽을 일으켜서…. 내 금방 갈게. 먼저 들어가서 시키고 있어라.”
“아아 새끼, 니가 먼저 점심 묵자 안했나? 머리를 다 쥐 뜯어 뿔라. 빨리 빨리 안 오나?”
이병욱 씨는 투덜거리며 식당에 들어갑니다. 김철수 씨는 경기도로 직장을 옮겼다가 당당히 부산으로 컴백했습니다.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일본계 제약회사에 면접을 보더니 철컥 붙어버리고는 요즘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 자슥, 이거…. 돈 잘 벌면 비싼 걸 사야지. 착한 식당이면 저렴한 가격에 모시는 거 아이가?”
이병욱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분은 좋습니다. 항상 아웅다웅 싸워대도 철수 씨가 없었던 몇 달 동안 술친구, 밥 친구가 없어 많이 심심했었기 때문입니다. 줄 서서 먹는다는 식당은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자리가 몇 개 비어있습니다. 돌솥 정식을 시키고 앉아 있자니 몇 가지 반찬부터 먼저 나옵니다. 하릴없이 기다리던 병욱 씨는 무심코 가게 벽에 걸린 티브이를 봅니다. 티브이 뉴스는 찬으로 놓인 땡초보다 자극적인 단어들을 뱉어내는 중입니다. 정부의 정당해산 조치에 종북이니 국가안보란 말이 연결되는 걸 보니 종편채널의 뉴스 프로그램인 모양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대한자유총연대 대표란 이가 입에 거품을 물고 있습니다. 옆 테이블의 어르신 한 분이 소리칩니다.
“아지매, 테레비 소리 좀 키아 주이소.”
아주머니가 리모컨을 드는데 다른 자리의 키 큰 중년 남자가 어깃장을 놓습니다.
“거, 안 그래도 시끄럽구만. 밥 묵는데 정신 사납소.”
리모컨을 든 아주머니의 표정이 난처해집니다. 뉴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옆자리의 다른 어르신이 다짜고짜 큰 소리를 냅니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밥이 문제가? 소리 캐소!”
아주머니가 눈치를 보다 볼륨을 높이려 하자 중년 남자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소리를 높입니다.
“거기 영감님들. 식당에 왔으면 밥이 제일 큰 문제지 뭐가 문제요? 그리 중요한 뉴스면 집에 가서 보면 되지, 와 남한테 피해를 주요?”
“거, 젊은 사람이 말을 막 하는구마.”
“뭐? 가만히 밥 묵는 거 방해한 쪽이 누군데 그라요?”
슬슬 고성이 오고 가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중간을 막아섭니다.
“아이고오, 와 이라십니까? 여기 영업하는 집입니다. 그냥 식사들 하시고 가세요.”
말다툼은 중단되었지만, 밥을 다 먹었던 어른신들 쪽에서 먼저 ‘어흠’하며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를 일어납니다. 그중엔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식당 문을 나서면서도 아까의 중년 쪽을 보고 투덜거리는 어르신도 있습니다.
“세상이 우째 될라꼬 이라노? 빨갱이 같은 것들 못 설치구로 옛날 맨치로 다 바까야 돼.”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와 눈까지 마주쳤으나 중년 남자는 이내 모른 척 식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괜히 가슴을 졸이던 병욱 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원망스런 표정으로 티브이를 흘깃 쳐다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뉴스 꼭지가 바뀌었는지 패널이 바뀌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을 알아보자마자 볼륨을 올리고 싶은 충동에 침을 꿀꺽 삼킵니다. 화면에 나온 이는 칼(KAL)기 폭탄테러범 김현희입니다.
“아따, 마유미 저 여자도 인자 늙었네. 하! 그라고 보이 칼(KAL)기 사건 났을 때가 우리 중학교 1학년 때 아이가?”
어느새 나타난 김철수 씨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수다를 떱니다.
“저 아줌마 한국 들어온 날이 대통령 선거 바로 전날 아니었나? 북한 쳐들어온다고 멋모르는 어른들은 전부 노태우 찍었다 아이가? 무슨 놈의 대통령 선거가 그때나 지금이나 엉망진창인 건 다 똑같노? 아! 배고프다. 아지매, 밥 좀 빨리 주이소. 그라고 테레비 볼륨도 좀 높이 주이소.”
속사포 같은 수다를 감당 못 한 병욱 씨가 볼륨 부분에서 “야, 거…, 볼륨 안 되고…, 아, 거참!” 하며 아까의 중년 남자를 흘깃 쳐다봅니다. ‘눈치 없기 100단’ 소유자 철수 씨는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이며 아예 리모컨을 가져오는 중입니다.
“와 또 난리고? 식당 테레비 와 틀어놨겠노? 봐라고 틀어난 기지, 저 아줌마 뭐라 하는지 좀 듣자.”
조금 전의 말다툼을 본 식당 아주머니도 난처한 표정으로 아까의 중년 남자 눈치를 봅니다. 그러자 병욱 씨 쪽을 보던 중년 남자가 아주머니에게 한마디 합니다.
“내가 뭐 소리가 시끄러워서 영감들하고 실랑이 했는교? 대통령 지지 안 하면 무조건 빨갱이 취급하는 영감들 보기 싫어서 그랬지. 저거가 도로 빨갱이 짓 하는 건 모를 기야. 뉴스가 개판이라도 저 젊은 사람들처럼 뺄 거는 빼고 척척 알아들으면 누가 뭐라 하요? 내 신경 쓰지 마소.”
아주머니가 마침 나온 돌솥 정식을 갖다 줍니다. 병욱 씨는 중년 남자의 말을 듣고 슬쩍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중년 남자도 고개를 끄덕하고는 식사를 마치고 나갑니다. 리모컨 볼륨을 조절하던 ‘눈치 없기 100단’ 청년이 병욱 씨의 얼굴을 보며 의아해합니다.
“니 혼자 와 씰씰 웃고 난리고? 밥 오는 기 그리 좋나? 또라이 새끼…. 밥 묵자.”
꼴통 친구의 귀환에 병욱 씨는 오늘도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