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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5호(2013. 08)

[우린어떻노 부산 살피기]손바닥소설 _ 남보다 못해 늠름하지 못한 이병욱씨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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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부산병 특집 3"남보다 못해 늠름하지 못한 이병욱 씨를 보라"

글 : 배길남(소설가) rakesku@hanmail.net    

일러스트 : 전진경 wjswlswls@naver.com

 

 

1. "에이, 우리가 남이가."


 이 얼마나 순박하고, 정이 가득 담긴 표현인가.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넘쳐나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그렇지 못하단다.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는 도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이 사는 곳이 '배려가 없는 곳'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 국제신문, 2011년 기사 <부산병 고쳐야 부산이 산다> 에서

 

  “뭐어? 동창회장에 또 나간다고?”

이병욱 씨가 실눈을 뜨며 김철수 씨를 바라봅니다.

  “사실적으로 내가 우리 동네나 학교 선후배 잘 챙긴다 아이가? 금마는 에스대 출신이란 거밖에 더 있나?”

김철수 씨는 아까부터 동창회장 케이씨를 씹어대고 있습니다. 동창 케이씨는 김철수 씨의 라이벌 제약 회사에서 근무하다 부산으로 발령받은 지 1년이 되었습니다. 그해 철수 씨는 에스대 출신 케이씨와의 동창회장 선거에서 완패했고, 그 이후 케이씨에게 주변의 영업고객까지 하나하나 뺏기는 중입니다. 안 그래도 더운데 맥주 한 잔 편하게 하고 싶은 이병욱 씨가 귀찮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니 마아음대로 하세요. 동창회장을 해먹든 대통령을 해먹든.”

사실 이병욱 씨는 친구 김철수 씨의 남 탓이 듣기 싫습니다. 그냥 자기가 좀 더 부지런히 하지 그랬어? 하는 생각입니다.

  “어이, 이병욱이! 니가 내를 우습게 보지만, 다 이유가 있으니까 회장선거에 나간다는 기다. 에라이, 대변인도 못 해묵을 시키야.”

군대 갔다 온 이후, 이름 끝에 자 붙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이병욱 씨. 특히 대변인에서 하는 성질이 폭발합니다.

  “뭐어? 귀찮다고 대통령 투표도 안 하던 놈이 동창회 선거에 또 나간다니까 기가 차서 안 그라나? ? 요새 영업이 좀 안 되나? 동창회장 자리라도 차면 한 건이라도 올릴까 싶어서?”

아차, 말이 심하나 싶은데 김철수 씨의 호흡이 가빠지며 붉으락푸르락해집니다. 그때 함가예 호프박 사장이 구세주처럼 등장합니다.

  “으따, 뭐 한다고 또 열을 올려쌓소이? 이가 허벌나게 시린 화채 묵고 열 좀 삭히랑께. 오늘 기아도 지고 롯데도 지고. 우리 엘롯기 동맹끼리 한 잔 허야제? 그란디 저 엘지 쓰벌 것들은 오늘도 이겨 버렀써!”

박 사장과 화채, 그리고 야구 덕에 잠시 휴전입니다. 하지만 김철수 씨는 입에 폭탄을 실은 채, 호시탐탐 이병욱 씨를 노리고 있습니다. 5분쯤 지났나? 결국, 김철수 표 폭탄은 터지고 맙니다.

  “, 철수야. 아까 미안타. 우리가 남이가? 니 선거 나가면 무조건 내가 찍어줄게.”

항복. 그것은 항복이었습니다. 잠시 친구를 비웃기도 했고, 잠시 욱했던 것 모두를 사과하면서 불편함을 없애려는 항복. 그러나 그것이 폭탄에 불을 댕기는 것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에이 18! 그런 소리 하지 마란 말이다!”

김철수 씨의 눈자위가 허옇게 뒤집히고 안주가 날아가고 술잔이 몇 개 깨지고 순결했던 화채 수박이 짓밟혀서야 아름다웠던 액션은 어느덧 마무리됩니다.

  “, 진짜 와 이라는교? 아따, , 오늘 와 이라노?”

단추 두 개가 떨어져 나간 박 사장이 김철수 씨를 다독입니다. 부산에 산 지 10년이 넘은 박 사장은 평소 고향 광주 사투리를 쓰지만, 흥분하면 부산사투리를 쓰는 버릇이 있습니다.

  “, 미안하다 안 하나? 니 오늘 많이 취했나? 도대체 와 이라노?”

에너지가 방전된 김철수 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갑자기 눈물을 주르르 흘립니다.

  “, 있다 아이가. 잘못하면 경기도로 발령 날 수 있다.”

  “…….”

이병욱 씨와 박 사장이 놀라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한 건, 한 건만 더 올맀어도 우리 영업팀 해체가 안 됐을 낀데. 김 선배 병원이 내랑 계약 안 하고 케이 그 새끼한테. 흐흐흑!”

갑갑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이병욱 씨. 가슴이 시린 친구에게 왜 그토록 모질게 대했는지 후회스런 마음뿐입니다. 담뱃재를 터는데 가게 앞 배달 그릇을 덮은 신문의 기사에 문득 눈이 갑니다.



2. 지역 문화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서울 문화의 전당에서 일했던 인사가 부산문화회관장으로 결국 취임했다. 곧 선임될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 자리도 낙하산 인사가 꽂힐 거라는 추측이 난무한다. 부산문화재단의 이사장은 또 어떤 사람이 꿰차게 될까. - 국제신문, 2013715일 국제칼럼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