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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38호(2012.06)

[초가삼간 일지라도]보수천, 삶은 역사가 되어 흐른다

[초가삼간 일지라도]보수천, 삶은 역사가 되어 흐른다

글 : 홍순연 amud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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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천, 삶은 역사가 되어 흐른다

 

어릴 적 물가는 놀이하는 장소이자 소통하는 장소였다. 마을 어귀에 있었던 우물과 빨래터,  개천은 생활공간으로서 우리 삶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 물들이 바다로 흘러가는 부산이기에 이곳 부산 사람들에게 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바다와 가장 가까이 접해있던 개천인 보수천은 구덕천과 합류하여 이루어진 하천으로 동대신동을 거쳐 검정다리(지금의 흑교 교차로)에서부터 남항으로 흘러가는 개천이었다. 개항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토성상가 주변은 바다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보수천이 일본 거류민들의 식수원으로 사용되었다. 어떻게 보면 부산 상수도의 효시가 이곳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수양버들 나무가 늘어서 개천 주변을 감싸고 있었지만, 지금은 복개되어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보수천 주변은 여전히 근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얼마 전 수업을 계기로 학생들과 이 길을 다시 걷게 되었다. 약 60명의 학생을 서구청에 모아놓고 지금은 사라진 대정공원에 대해 설명하였다. 학생들은 역사 선생도 아닌 건축하는 선생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게 건축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곳은 자갈치와 오늘날의 충무동 바닷가가 매축되기 이전에는 보수천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자갈밭과 늪지대였는데, 이 해변이 바로 부민포였어. 이곳 부민포와 충무동 로터리에서 만나는 서구청 일대는 낮은 언덕이었는데, 그 언덕을 평지로 만들어 1910년 일제강점기에 대정공원이라는 공원이 만들어졌어.”
몇몇 친구들은 적는 둥 마는 둥 아주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대정공원에서는 당시 야구경기와 전국 자전거 대회가 열렸었고, 군사훈련도 하고 군마를 기르기도 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설명이 학생들에겐 와 닿지 않는 듯했다.

 

다음 장소인 한국전력 중부산지점(구 조선와사주식회사, 등록문화재 제329호)으로 이동했는데, 이곳은 근대기 부산의 전차, 전기, 가스 등 부산의 사회적 기반시설을 담당한 회사로서 1936년에 건립된, 근대기 사무용 빌딩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건축물이다. 당시 부산에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던 건물이 부산 부청사, 미나까이 백화점, 그리고 이곳 조선와사주식회사였다. 몇 해 전 엘리베이터 시설이 해체될 때 확인했더니 이곳의 엘리베이터는 동양 오티스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현재는 당시의 외장만 남아 있는 정도다. 그 외에도 전차표를 보관하던 금고, 회의실의 모습, 계단 난간대의 절묘한 곡선미가 그대로 남아 있어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 건축물을 소개할 때는 그래도 다행히 학생들이 조금씩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다음은 동아일보 임시사옥.
보수천을 따라 영락교회에 이를 때 쯤 도로변에 서 있는 동아일보 임시사옥이 보인다. 이 건축물은 단순히 건축물이라는 의미보다 한국전쟁 당시 동아일보 임시사옥으로 당시에 언론보도의 중심지였다는 기록적 가치가 큰 건축물이다. 한 시간 정도 보수천 주변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수많은 일본식 적산가옥과 정원주택 등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이야기하면서 건축물이 갖는 장소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소성.
이번 답사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잊힌 장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과거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없는 장소에 관해 이야기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건축, 도시 분야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 전반에 걸쳐 역사문화자원이나 스토리텔링이라는 이름으로,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한창 유행 중이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사라진 장소를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을 통해 그 장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충분한 고증과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 그 장소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당대의 삶의 모습과 의미들을 재구성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근거 없는 상상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상상이 사실처럼 굳어지게 되면 이후의 모든 작업은 그러한 사실화된 허구를 근거로 삼게 된다. 우리는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우려하고 반성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축은 상상이다. 한 장소, 한 건축물을 둘러싼 역사의 장면들은 그 장소와 건축물에 특별한 의미를 제공한다. 이러한 특별한 의미는 다른 건축적 작업에 상상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니 장소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