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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3호(2013.04)

[연간기획 상식과 파괴의 전복] 거리예술_인간적인, 거리의 회복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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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거리의 회복: 활력

글, 사진제공 : 임수택(과천축제 예술감독, 한국거리예술센터 대) sutaeksi@hanmail.net


  거리예술은 실내의 공연예술과 많은 점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거리’라는 공간이 장애를 안기기도 하고, 반대로 가능성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리’는 무엇보다 소란스럽다. 공연자건 관객이건 집중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관객 역시 산만하다. 무엇보다 거리의 관객은 소박하다. 그들은 예술에 대한 경험도 많지 않고, 관심도 별로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심지어는 우연히 공연을 관람하며 아무 때나 왔다가 아무 때나 사라진다.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이러한 관객들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가? 이를 위한 해결책 중 하나가 활력(animation)이다. 그래서 진지한 상황보다는 희극적 상황이, 느린 음악보다는 경쾌한 음악이, 세련된 의상보다는 거칠고 화려한 의상이 선호된다.


호모 루덴스의 [로빈슨 크루섬]_한국


  어느 날 호모 루덴스의 남긍호가 찾아와 과천 중앙로 한 복판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길은 많은 차량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옷을 벗고 샤워를 함으로써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흐름에 ‘물’을 끼얹을 셈이었다. 그렇게 해서 “로빈슨 크루섬”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일단 거리 한복판에 이 2미터, 사방 1미터 크기의 아담한 오두막집을 세웠다. 색깔은 유치원처럼 따뜻한 원색이었다. 샤워기가 달린 것은 당연했다. 노란 해바라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질주하는 차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아니니 물론 불법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연약한 몸을 내세워 쇳덩이 차들과 부딪혔다. 그리고는 장난을 치며 희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그 동안 교통신호가 아니라 인간(수신호)이 차량을 통제했다. 어떤 운전자는 즐거워하기도 하고 어떤 운전자는 공연자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 다음 그는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 애초에 원했던 대로 각종 차량들이 질주하는 큰길 한 가운데서 옷을 벗고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방에 높이 1미터의 울타리가 세워졌으니 관객이 허리 아랫부분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다 그가 실수로 옷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만다. 이걸 어쩐다? 샤워를 한 다음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 옷은 울타리 밖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울타리 밖으로 나오기로 한다. 수건 한 장으로 꼭 필요한 부분만 가렸다. 뒷부분은 당연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가 긴장하는 만큼 관객들 역시 긴장한다. 특히 젊은 여자관객은 더욱 심했으리라.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러저리 쩔쩔매다가 마침내 밖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고 서둘러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아무 일이 없었던 듯 옷을 차려입고,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지휘를 시작한다. 거기에 맞춰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한 곡이 도시를 뒤흔들듯 아주 크게 흘러나온다. 차량의 소음으로 가득하던 거리가 아름다운 음악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 음악은 큰 길을 넘어 뒷길까지 퍼져나갔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어리둥절해하던 보행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지게차가 나타나 그의 오두막집을 메쳐 들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는 지게차에 실려 가면서도 지휘를 계속한다. 그의 모습이 사라짐에 따라 음악도 점차 사라진다.


  첫 공연을 마치자 경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대낮에 한길에서 옷을 벗었으니 경범죄 위반이라는 것이다. 필자와 공연자는 경찰서에 끌려가 조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는 옷을 벗지 않겠다고 약속한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 후 곧바로 시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랫도리 속옷은 입으라고 권유 아닌 권유를 했다. 몇몇 시민에게서 항의를 들은 모양이었다. 사실 시장도 현장에서 공연을 즐겁게 관람했었다. 다음 날 할 수 없이 오두막집 밖으로 나올 때 팬티를 입기로 했다. 아, 그러나 공연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긴장도 없었고, 무엇보다 신명난 활력이 생겨날 수 없었다. 이 외에도 관객과 공연자 사이에 끊임없이 차량들이 지나가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는데 방해가 되었고, 실제로 공연의 효과도 반감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로 인해 관객이 지나가는 차량들에 대해 짜증을 내게 하는 효과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씨르코 임페르펙토의 [엉터리 서커스]_스페인


  서커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이 아주 좋아하는 공연이다. 또한 서커스는 현대에 와서 거리예술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중국이나 북한의 서커스가 우명하고 또 아주 익숙하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한 기예만을 보여줄 뿐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떤 얘기도 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대개 이러한 서커스는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대 서커스는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기예를 이용하여 오늘날 우리의 삶을 얘기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예술’의 경지로 등극한다.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된 스페인의 서커스단 씨르코 임페르펙토의 [엉터리 서커스]는 서커스에 활력을 불어넣은 아주 좋은 예이다. 단체 이름 앞을 차지하는 ‘엉터리’라는 단어부터가 즐거운 활력을 예고한다. 주로 남자 두 명이 여자 한 명을 뒷받침하면서 이루어지는 이 공연은 연기자들의 희극연기가 완벽한 서커스 기예와 어우러져 관객들을 신나는 흥으로 몰고 간다. 여자연기자를 놓고 두 남자연기자가 다투기도 하고, 여자연기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남자관객을 희롱하기도 한다. 관객을 가만히 객석에 놔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 공연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공연의 활력이 배가되기도 한다. 무대와 객석이, 연기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신명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한 연기자가 줄 위를 걸어야 할 때 다른 연기자가 물구나무를 서서 줄 바로 밑에 자기 발을 대주어 그 발을 딛고 줄 위를 걷게 하는 장면은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답다. 여러 에피소드 속에서 여러 가지 얘기가 펼쳐져 공연이 일관된 어떤 얘기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다소 아쉽지만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완벽한 희극연기와 서커스 기예를 수단으로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 관객들과 삶에 대한 짧은 얘기를 나누면서 신명나는 활력을 일으키는 좋은 예이다.


  이 단체는 최근에 해체되어 세 연기자가 각자 활동하고 있다. 거리예술단체는 같이 지내는 시간이 아주 많은 편이다. 연습 때도 그렇지만 공연도 대개 멀리 다니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원들 사이의 관계가 아주 긴밀하고 중요하며, 그 때문에 오래 존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