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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3호(2013.04)

[시부리다] 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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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후기(시인) hoogiwoogi@gmail.com



북 역


강원도의 입구는 어디인가

어느새

광장은 극장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광장에서 손 흔드는 대신

극장에서 은밀하게

열정(劣情)을 탕진한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면

당신은

광장을 허물고 들어선

백화점을 통과해야 한다


옷을 벗지 않아도

자랑을 삽입할 수 있다니,

얼굴 없는 마네킹 한 쌍이

지하도 입구에

미라처럼 서 있다


노인들은 사라진 광장에 모여

식민지의 대를 이어가고,


버림받은 청춘들은

아주 버려지기 위해

북역(北驛)으로 떠나간다


전방은 어디인가요?

입을 틀어막은 야포가

열차에 실려 북쪽으로 달려갈 때,


여기가 삶의 후방인가요?

음부를 찢긴 창녀가

성바오로병원으로 실려간다


사북, 고한, 태백

표 끊고 죽으러 가는 저녁 눈발

나는

북역을 북녘으로 잘못 읽는다








  등화관제(燈火管制)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야간 공습에 대비하여 등불을 가리거나 끄게 하는 일을 일컫는 이 말이 현실화 되는 느낌이다. 비단 전쟁의 공포는 아니더라도, 작가들이 고발당한 지난겨울 이후, 글을 쓰는 내 의식은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과도 같은 자발적 등화관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과거를 미래와 바꿔치기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유의 불빛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 나는 영혼의 창문을 가린다. 다만, 목련 몇 송이 등화관제를 어기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흘리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