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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복에 숨어있는 권력의 미시경제학
글 : 노진숙(공무원) jinsuknoh@hanmail.net
사진제공 : 손혜숙, 조광석 님
얼마 전 새 부서에 발령받자마자 환경미화 경진대회를 준비한다며 난리법석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친절한 근무태도를 만들기 위해 민원창구 여직원들에게 근무복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여담이지만, 근무복을 선정하는 과정도 헤프닝의 연속이었는데, 7벌의 옷을 7명의 늘씬한 여직원들에게 입히고 단체장에게 선을 뵈러 가는 것이었다. 모델처럼, 아니 상품처럼 단체장앞에 진열된 여직원들을 향해 이거!라고 지목하면 그 옷으로 결정이 되는 것이다. 7명으로 뽑힌 여직원들의 우쭐거리는 모습도 같은 여성으로서 이해하기 힘들었고, 행렬을 이룬 7명을 인솔해가는 여과장의 뒷모습도 슬프기 그지 없었다.
더욱 난감했던 것은 근무복을 입으라면서 탈의실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인데, 환경미화를 하면서 탈의 후 옷을 걸어두는 개인별 옷장은 마련하였으나 정작 필요한 탈의실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참지 못한 내가 탈의실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여자끼리인데 아무 곳에서 옷을 좀 벗으면 어떠냐는 반응이었고, 이 반응은 여직원 당사자들조차 수긍하였기에 나는 더 이상 강하게 요청할 수 없었다.
근무복 지급이후 완장 찬 사람들의 통제는 심해졌다. 왜 옷을 풀세트로 입지 않느냐, 왜 리본을 달지 않느냐는 등등 아침마다 근무복을 입은 민원대의 7명 여직원을 훑어보는 것이다. 기십만원하는 좋은 옷을 지급했으면 고맙게 생각하고 입어야지 왜 입지 않느냐며 성토하였다. 끊임없이 통제하고 규제하여 개인을 복속하고자 하는 권력의 미시경제학이 유령처럼 내 주위를 떠돈다.
이곳에서 근무복의 기원은 아주 오래된 듯하다. 처음 입사할 당시에는 소위 민방위복이라 일컫는 근무복이 남자직원들에게 지급되었다. 그때만 해도 여직원은 부서에 1-2명이 전부였고, 여직원을 ‘인간’으로 여기기보다는 ‘꽃’으로 여길 당시였으니, 여직원에게 근무복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그때의 보편적 정서였다. 그 이후 민원업무를 담당한 여직원을 대상으로 근무복을 지급하게 되었고, 여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들-규율이든 복지이든-은 우후죽순처럼 자라나 여직원 스스로도 그것이 규율인지 복지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근무복을 지급한 것이 복지인양 큰소리 치는 완장찬 남자들의 혼돈처럼!) 지난 20여년동안 끊임없이 근무복 착용/근무복 폐지가 되풀이되면서 이러한 반복적인 실패를 두고 그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 것은 주체없는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옷은 “오로지 세속 사회의 문맥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1) 사회적 문맥에 매개된 옷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모든 형식을 일컫는다”2)고 했듯이 옷을 통해 사회적 관계가 드러난다. 껍데기에 불과한 옷을 매개로 타인을 이해하게 되며, 세계 안에서 개인은 그가 입은 옷 자체에 지배되고 있다. 또한 옷은 늘 계급적, 성적 기호들로 가득한 까닭에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것이다. 더군다나 단체복은 사회적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고, 상하관계를 더욱 뚜렷하게 해주는 알림장인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계급과 성적인 편견을 가지게 하는 준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옷이며, 근무복은 그 최첨병에 서 있다. 계급적 질서속에 통용되는 가치에 순응하여 근무복을 입지 않을수 없는 분위기, 또는 친절이라는 고지(告知)에 응답하는 근무복 착용은 투명한 그물망 같은 권력에 호명당하는 개인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장치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1) 서동욱, 일상의 모험<민음사, 2005년>, 184쪽
2) 위와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