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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39호(2012.08)

[초가삼간일지라도]바다를 추억하는 송도 해수욕장

[초가삼간일지라도]   글, 사진 : 홍순연 amudo@hotmail.com

 

 바다를 추억하는 송도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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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는 어디로 휴가를 갈지 고민한다. 산으로? 바다로? 아님 국외로? 이런 고민 탓에 어떤 때보다 설레게 되고, 그래서 인터넷 검색창을 수시로 두드리게 되는 시기가 바로 여름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부산에 산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부산 사람들에게 바다는 정말 도무지 갈 곳이 없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장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은 생각보다 부산의 바다에 잘 가지 않는다.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에 몸을 담그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흔해서 싫증나기 때문일까? 부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옛날보다 더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옆자리 동료가 인터넷에서 동해 바다를 검색하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듯 여겨진다.

 

부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부산의 해수욕장과 여름은 요즘 어떤 모습일까?
해운대 해수욕장은 외지 피서객들의 상징이 되었고, 광안리 해수욕장은 술집과 카페촌으로 북적이고, 송정해수욕장은 그나마 대학교 엠티 장소로 잠깐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실 해수욕장은 해수욕을 하도록 개설된 장소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산의 해수욕장은 해수욕을 즐기는 장소라기보다는 유희의 장소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해수욕장인 송도 해수욕장도 마찬가지이다.


송도 해수욕장은 1913년 거북섬에 수정이라는 휴게소가 설치되면서 바다 기슭에 있는 모래사장을 해수욕으로 개발하였다. 지리적으로 볼 때 당시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 서구와 가까이 붙어있어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 초까지 부산시민이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는 유희의 장소였으며, 당시에는 여관, 해수탕, 탈의실, 귀중품 보관소, 구급시설, 다이빙시설까지 갖춰져 해수욕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공되었다. 특히 남포동에서 해수욕장까지 도선이 1시간마다 운행하였고, 당시 부산시 인구가 약 30만 명일 때 송도해수욕장의 이용객이 연간 6만 명 정도였으니, 송도 해수욕장은

지금의 해운대가 부럽지 않은 인기 해수욕장이었다.
지금의 해운대는 1927년 해운대온천합자회사가 설립되어 해수욕과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1963년 이후에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으니, 당시만 해도 부산 시민이 즐길 수 있는 해수욕장은 송도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송도를 찾는 이들은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가지 않는다. 겨우 회 한 접시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 고작이다. 송도는 이제 밤에 현란하게 비추는 모텔 간판들이 즐비한 곳으로 바뀌어버렸다. 이제는 바닷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첨벙거리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나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인파는 찾아볼 수 없다. 
부산 사람들이 해수욕장에 가지 않는 이유가 과연 나빠진 수질 때문일까? 그렇다면 수질을 개선하면 부산의 해수욕장이 과거에 가졌던 이름값을 하게 되는 것일까?

작년 2월 싱가포르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사실 싱가포르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해수욕장이 없다. 산토사라는 테마공원형 인공섬을 만들고, 인공모래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해변을 만든다. 하지만 그 모래사장에서 해수욕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유니버설 놀이공원에서 잠깐 쉬면서 공짜 관람차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오는 정도의 코스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기는 해변이라고 적혀 있다.
부산이 여름을 상징하는 도시임에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수욕장이 점점 사라진다면, 머지않아 아이들이 인공해변에서 놀아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옛날에 엄마아빠가 즐겼던 해수욕장의 추억을 이야기한다면 멋쩍지 않을까?

해수욕장은 바라보기만 하는 장소가 아니다. 해수욕장은 자연 그대로의 주변 풍광과 함께 넘실대는 바닷물결을 즐기는 장소이고, 그 바닷속에 빠져 물장구도 치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무더위 속에서도 다들 바다로 가는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해수욕장조차 사실상 바라만 보아야 하는 그림의 떡으로만 존재한다면 부산은 여름의 도시, 바다의 도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바다를 추억하는 도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