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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39호(2012.08)

[장백산의 문화체험 비스킷]작품이 걸린 골목, 골목이 작품인 감천 문화마을

[장백산의 문화체험 비스킷]  기획 : 장백산 jfrancisco@naver.com

 

작품이 걸린 골목
골목이 작품인
감천 문화마을

 

문화 비스킷 코너를 담당하던 이수정 기자가 개인 사정 때문에 연재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아쉬운 마음을 이어 받아 문화 비스킷을 연재하게 된 장백산입니다. 문화계 곳곳의 먹음직한 부분들을 뛰어다니며 시식 후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을숙도 문화회관 2층에 자리 잡고 있는 사하문화원은 신생 문화원입니다. 작년 10월에 창립총회를 열고 개원했습니다. 사하문화원의 이정관 사무국장(이하 국장)을 만났습니다. 220개가 넘는 전국 문화원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특히나 부산 같은 도시 지역은 전통적인 주거 지역 이외에는 나름의 정체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감천 문화마을에 관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감천이라는 마을은 6.25 때 충청도에서 태극도가 내려오면서 신도들도 다 같이 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태극도 내부에 문제가 생겨 분리되었고, 분리된 사람들은 서울, 경기도 쪽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신도가 빠져나간 부분을 주위 사람들이 채웠고, 국유지였던 지금의 위치에 무허가로 살게 되었습니다. 80년대 들어 이때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것을 인정하고 국유지를 헐값에 분할하게 됩니다. 이후 감천 문화마을은 시와 구의 사업정책이 맞아떨어지면서 문화마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벽화 때문에 마을은 널리 알려졌지만, 외지인들의 출입이 너무 많아 실제 거주하는 분들이 불편을 호소하기도 하였답니다.

 

사하문화원을 나오면서 자꾸 감천 문화마을이 떠올랐습니다. 작년 여름 감천 문화마을에서 단편영화를 제작한 적이 있었지만, 감천 문화마을의 역사와 배경은 잘 몰랐습니다. 당시 촬영에 급급해 마을 주민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제 주민의 불편을 들었으니 다시 한번 찾아가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감천 문화마을은 다른 유사한 문화마을(벽화마을)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벽화가 있는 마을이지만 벽화가 중심이 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감천 문화마을은 마을 전체가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고불고불한 산복도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그 속에 벽화가 있습니다. 이 벽화는 찾아가서 보는 ‘전시 작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골목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감천 문화마을의 진짜 작품은 벽화가 아니라 감천마을의 골목입니다.

1년여 만에 찾아본 감천 문화마을은 여전했습니다. 지역주민이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고, 골목투어를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반겨주는 아기자기한 벽화 이정표도 있습니다. 아, 그런데 잠깐! 벽화 색이 바래지며 떨어져 나간 것을 보수했군요. 왠지 다른 부분과 다른 느낌이 듭니다. 골목길에 접어들자 전국 방방곡곡에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방부목으로 만든 펜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을 주민과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되었겠지만, 갈색 방부목은 감천 문화마을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터였던 부분에도 벤치를 설치하고 쉼터를 만들었습니다만, 역시 방부목으로 치장되었습니다. 몇몇 빈집은 현대적 느낌으로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빈집의 옥상에는 방부목으로 만들어진 전망대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방부목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요? 감천 문화마을 곳곳은 방부목으로 둘러싸이는 중이었습니다.

문득 1년 전 마을 입구에 외부에서 대형 체인점인 카페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부랴부랴 달려가 보았습니다. 다행히 그곳에는 마을주민이 여는 일일 카페가 들어와 있었고, 그 옆에는 사진 갤러리가 따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갤러리에는 정작 감천마을 사진은 몇 장 걸려있지 않고, 다대포를 찍은 사진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대포 역시 사하의 자랑할 만한 장소이기는 하지만 감천 문화마을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사진 갤러리가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감천 문화마을의 벽화가 아니라 이 마을의 골목과 그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빈집 하나하나, 혹은 걷고 있는 골목길, 좁은 모퉁이에서 만나게 되는 감천의 살아있는 문화를 말이지요.

부산시에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감천 문화마을 역시 이 사업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지역 특성화와 지역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은 환영받아야겠지만, 문화는 현대적 시설물이나 편의시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생하고 풍성한 삶, 그리고 의미 있는 삶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햇볕 좋은 날, 뜨거운 삶이 살아있는 감천 문화마을을 한번 걸어보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