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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39호(2012.08)

[배우 박성진의 시골에서 호작질하기] 여름, 놀고 싶은 계절

[배우 박성진의 시골에서 호작질하기] 글 , 사진 : 박성진 정영주 noraec@naver.com

 

여름, 놀고 싶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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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 보고 부랴부랴 뛰어나가
어두워 겨우 들어온다

 

저린 다리 펼 새 없어
남자들도 밭에 앉자 오줌 눌 판이고
꼬꾸라진 허리 한번 펼 짬도 없는 며느리는
죽은 시어머니 다시 불러
도와 달라고 할 만큼
시간을 다투는 일, 일, 일들

 

포도야, 사과야, 고추야, 텃밭 채소들아!
자꾸 퍼뜩 오라고 부르지 마라.
니들 쫓아가려다
더위 먹고 입에 단내난다

 

장마까지 겹쳐 하다 말다 하다 말다,
밀린 일을 생각하면 밤낮으로 일해도 못할 판인데,
그래도 간절하다.
우리는 부르짖는다!
“나, 놀고 싶어!”

 

 

허나 감자는 수확했다. 맨 왼쪽부터 킬로당 600원 하는 감자-사진에 실을 600원짜리 감자가 없어서 내 주먹으로 대체한다-, 킬로당 150원 하는 감자, 농협에서도 다시 돌려주는 감자, 보통 밭에 버리는 감자(메추리알만 함, 우리는 다 캐왔음).
컨테이너 하나 가득 담으면 20킬로가 조금 넘는데 150원짜리 감자를 팔면 3,000원 번다. 600원짜리 감자가 12,000원 하는 것과는 가격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난다.
첫날은 농협에 그리 팔았는데 둘째 날 감자를 캘 때는 속이 많이 상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다행히, 다 팔았다.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반거치 가라사대, 뿌리면 거둔다. 허나 모두가 600원짜리 감자를 거두는 건 아니다.

 

흙집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이 흙집을 지은 할머니도 흙집처럼 기운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새집을 지어 마을 입구로 이사를 하셨지만 이 흙집이 그리워 하루에도 몇 번을 오셔서 곳곳을 돌본다. 마치 나, 여기서 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집을 비워드려야 되는데, 우리 부부는 좌불안석이다.

지금은 상수도가 연결돼서 사용하지 않는 우물을 보며, ‘이 우물은 깊이가 8미터가 넘어요, 우리 영감이랑 내가 직접 팠지. 한 달을 넘게 팠어, 근데 물이 안 나오는 거라, 그래서 한 달을 더 팠어요. 그라이 물이 나오데.’

어느 날을 아궁이 불을 지피다가 근처에 있는 나무판때기를 깔고 앉았다. 다음날 할머니가 오시더니, “이상하네, 뒤주를 막아놓는 판때기 하나가 어디 갔지, 판때기 하나 못 봤어요?” 하셨다.
아차, 싶어 못 봤다고 하고는 할머니 가신 뒤에 얼른 끼워 놨다. 불쏘시개로 태웠으면 어쩔 뻔했나.
호미 하나, 쟁기 하나, 지게 자루, 심지어 부지깽이 하나에도 사연을 담아 정을 붙이고 사는 할머니.
여기서 첫아이를 낳았고, 첫아이와 영감님을 하늘로 먼저 보낸 당신의 삶이 오롯이 존재하는 바로 이 집에서 삶을 추억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집에서 돌 하나라도 사연이 없는 게 있을까.
할머니가 말을 걸면 오래된 흙벽과 돌담이 할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할머니 비켜 드릴게, 내년 봄까지만, 올가을까지라도 기다려줘요.
벼도 수확하고, 포도도 따고, 고추도 말려서 고춧가루로 빻아 팔고 나면,
우리 한숨 돌릴 때, 그때 비켜 드릴게. 무너지지 말고, 흙벽, 조금만 더 붙들고 계셔.

반거치 가라사대, 우리도 집 짓는다!

 

호박말리기 비 오는 날, 일을 거들러 부산에서 오신 부모님께 ‘오늘은 부모님 쉬세요.’ 하고 비옷을 입고 일을 다녀오니 부모님은 텃밭에서 난 마디호박을 썰고 계셨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대나무 꼬챙이에 걸어 건조대에도 말리고 마당 한켠에 빨래처럼 말리신단다.
“텃밭에 호박이 이렇게 많은데 다 뭐 할끼고. 이래 말리면 겨울에 먹을 수 있다. 이게 몸에 얼마나 좋은 줄 아나.”

일하고 오면 해가 져도 수돗가에서 목욕에 작업복 빨래까지 다하고 저녁을 드시는 우리 어머니, 배가 고파서 신던 장화를 그대로 벗고 들어오면 호도천불이 난다.
“야야, 장화부터 씻고 들어가라, 그래야 다음에 깨끗하게 신지, 그러는 법은 없다.”

마늘을 캐고 그냥 내버려둔 마당 텃밭을 깨끗하게 갈아 놓으시고 무, 시금치, 겨울초를 뿌리셨다.
“(농사를) 벌리 놓기만 벌리 놓고 너거는 매도지를 할 줄 모른다. 언제든가 썼던 물건 제자리에 놓고 지섬도 깨끗이 뽑고. 집이 이래 엉망이면 동네 사람이 뭐라 하겠노.”

밤에 비가 많이 왔다. 새벽까지 비가 오네. 앗싸! 오늘은 늦잠 자자!
그렇게 쿨쿨 자고 있는데 우리 어머니 문을 걷어차신다.
“야야, 날 갰다. 일하러 가자!”

우리는 피곤해도 배가 고파도 놀고 싶어도 예, 예, 대답한다. 어떨 땐 입이 댓 발 나와서 예, 예. 때론 건성으로 예, 예.
건성이 진심이 될 때 난 진짜 농사꾼이 되겠지?
이때 반거치 마누라 가라사대,
“싫다! 꿈깨~!”

 

옥수수 언제 묵겠노. 넘들은 다 자라서 삶아 묵는데 우리는 언제 묵겠노.
너거, 와 이리 안 크노. 퍼뜩 크라.
허긴, 거름기 없는 생땅(막 개간한 땅)에 심어놨으니 뭘 먹고 자란단 말인고.
너의 빈약함이나 나의 빈곤한 삶이나 그기 그거다, 에고, 서글퍼라.

 

포도란 녀석, 알고 보니 어지간히 성가신 녀석이다. 4, 5월부터 순이 자라나기 시작할 때부터 붙어살다시피 했는데 일이 마무리가 안 된다.
우리 마을 어른 포도밭인데 작년 수확이 거의 안 돼서 나무를 캐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가 짓기로 했다. 나무상태가 천차만별이라, 열매 굵기도, 순이 자라는 속도도 다 다르다. 허긴 우리 같은 반거치에게 좋을 밭이 떨어질 리가 없지. 감지덕지하며 받았지만, 반거치에게 죽음의 밭일 수 있다.
일은 두세 배, 수확은 불투명! 심하면 포도가 익기 전에 다 터질 수도 있다. 그리되면 쪽박!
도박은 시작되었고 잘되기만을 하늘에 빌 뿐이다.

포도밭은 분주하다.

3월이다, 포도밭을 전지하라! 작년 수확한 포도순을 적당히 잘라내어 올해 수확할 포도순을 받아라!
4월이다, 포도농사 준비를 하라! 전지한 가지도 주워내고 작년 바닥에 깔았던 비닐을 걷고 새로 깔아라!
5월이다, 포도순을 고정시키는 철사에 묶어 고정시켜라! 양쪽으로 곱게 빗은 머리카락처럼 가르마를 타야 훗날 안 엉키고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6월이다, 포도순 사이사이 나는 속순을 따라, 발도 제거하는 게 좋을 걸, 포도순끼리 엉켜 엉망진창 된. 포도알 솎기도 해라! 포도가 너무 커도 안 익고 너무 빡빡하게 알이 차면 포도가 찢어진다!
, 7월이다얼른 포도 봉지를 싸라! 벌, 나비가 쭉쭉 빨아먹기 전에 퍼뜩 싸는 게 좋을 거다!

반거치 가라사대, 포도여! 부디 올해 우리를 먹여 살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