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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3호(2013.04)

[연간기획 상식과 파괴의 전복] 예술행동_청개구리 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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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상쾌, 허술한 접착제 _ 청개구리 제작소


글 , 사진제공 : 김강(미술가,미학연구자) parasolhs@hanmail.net



만들자! 농성정원

  쌍용자동차 대한문 농성장이 어이없는 방화로 불에 타고 난 후, SNS에는 <만들자! 농성정원>이라는 문구와 포스터가 등장했다. 농성장이 잿더미가 된 것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중구청과 경찰이 급하게 화분을 설치하고 난 후였다. 다시 농성장이 세워질 것을 우려한 이와 같은 미적인(?) 조처는 ‘이 화분들을 이용해서 우리의 정원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라는 전용(detournement)의 위트가 넘치는 포스터의 등장으로 새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그 명랑한 역설은 3월의 매주 일요일, 하나의 접속의 장을 형성했다. 3월 10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1시부터 해질때까지, 패치워크 테이블, 봄바느질, 씨앗폭탄이 대한문 농성장에서 진행되었다.(3월 31일에는 ‘욱(농 거꾸로)성장텃밭’이 진행될 예정이다.)


  버려진 빠레트들이 공동의 테이블과 의자가 되기 위해 대한문 앞에서 망치세례를 받았으며, 바느질과 뜨개질이 일요일 한낮의 대한문을 직조했다. 날아가던 꽃씨는 대한문 앞에 살포시 내려앉아 씨앗폭탄이 되었으며, 노동자의 작업화는 꽃화분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의 관심사(목가구만들기, 바느질, 화단가꾸기 등)로 뭉쳐서 하하호호 농성장을 만들었고, 직접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꽃을 비롯한 여러 재료들을 보내주었다. 자동차를 만들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도 뭉퉁한 손에 작은 바늘을 들고, 얇은 천 조각을 기워나갔다. 이 일상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작은 노동과 연대의 시간 속에서는 여성도, 남성도, 노동자도, 예술가도, 성적소수자도, 장애인도, 아이도, 노인도, 이주노동자도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을 가르는 어떤 구분선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닌, 단지 그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가 있을 뿐이었다. 


  2013년 현재, 한국의 농성장은 약 18곳이다. 저마다 사연과 구호는 다르지만 억울함과 분노, 슬픔과 연대가 함께 하는 곳이다. 최전선의 기운이 형성되는 장소에서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고민으로,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그렇게 대한문의 <만들자! 농성정원>프로젝트가 탄생했으며, 그렇게 청개구리 제작소가 몇 가지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포스터를 만들고, 매주 일요일 마다 그들은 ‘우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새로운 신체_청개구리제작소

   청개구리 제작소(Fab coop)는 기획자이자 디자이너 1인과 문화기획활동 요원 1인이 만나서 만들어진 팀이다. 그러나 이 팀의 활동은 이 둘이 하는 것이 아니다. 청개구리제작소 요원2인은 청개구리 제작소를 “당신의 환대와 우리의 환대가 만나는 그 곳!“이라 말한다. 즉 요원2인이 나와 타자가 환대로 관계맺을 수 있는 시/공간을 제안하고, 그 시/공간을 공유하는 모두가 청개구리제작소인 것이다. 물론, 한번 접속된 청개구리가 다른 접속을 다시 제안할 수 있다. 그렇게 리좀처럼 다른 형태의 관계망을 만들고, 함께 놀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뭐든지 해 보는 것이 청개구리제작소다. 이러한 사태는 제작소의 요원2인이 “실재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어디든 파고들어 무엇이나 만들어 보려는 그들, 생태, 정치, 도시, 자본, 예술, 기술의 맥락에서 자기 살림이 묻어 있는 다양한 제작들을 실험하며 운동과 활동을 생성하고 연결 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들의 말을 빌자면 ‘유령제작소이기도 하고, 요정제작소’이기도 한 청개구리제작소는 2012년 3월, 몸뻬바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통의동의 수상하고 다정한 공간 보안여관에서 열린 <밝지만은 않지만 흥겹고 싶은 봄바느질>’의 일환이었다. 그해 여름에는 몇 개의 제작 워크샵을 진행하며 갈산동 콜트콜텍 공장에서, ‘나무박스기타만들기’워크샵을 수행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서 기타제작을 함께 배울 생각이었던 이 워크샵은, 분업화된 기타제작만 해왔기에 기타제작의 전공정을 알지 못하던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노동자’의 모습과 충돌했다.


   그리고 2012년 이전, 요원2인은 오랫동안 문래동에서 활동해 왔다. project space LAB39의 공동운영자이자 열성멤버로, 예술과 도시사회 연구소의 진지한 연구원으로 도시에서의 삶의 문제 횡단했다. 작은 문화기획의 기획자이자 운영자로, 기발한 디자인과 문구로 연대를 이뤄내는 일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산떨지 않으며 ‘요원’처럼 활동해왔다. 그런 활동들이 청개구리제작소를 ‘제작’하게 된 그들의 실체적 경험이다.


   청개구리제작소는 ‘몸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살아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기획이든 디자인이든 머리가 몸의 일부인 이상, 몸으로 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좀 더 몸을 아날로그하게 사용하고, 그렇게 생산하며, 그렇게 타자들과 접속하며 살고 싶었다. 비록 SNS을 통한 접속이 일상화되었다손 치더라도, 직접 나의 몸과 타자의 몸이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서 서로의 경험을 날것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즉 새로운 신체를 만드고 싶었던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에서 따왔음짐작 ‘오리보트프로젝트’는 제천에서 유기농 농사짓는 일이었다. 


   철벅철벅 오리배를 타고 전 세계 이주 노동자들이 이곳저곳 옮겨 다니듯이 이들도 작은 땅이라도 있는 곳 어디나 일시적으로 정박해서 농사를 짓고 싶었다. 이들은 대한문 농성정원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해킹을 주제로 세미나와 워크샵을 열어볼 까 한다. 청개구리제작소에게 해킹은 또다른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 혹은 창조적 전유의 공간이다.

자칫 소소하고, 일상적으로 보여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들의 활동은 명랑한 문구와 상쾌한 디자인이 결합하여, 새로운 감성을 자극한다. 만만하게 보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감정, 혼자하자니 뻘쭘한데 같이 하자면 즐거울 거 같은 감정, 꼭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별루 기회가 없었던 여러 가지 ‘자립에 관한 기술들’을 함께 익힐 수 있는 워크샵, 풍문으로 들어 관심은 있었으나 정말로는 잘 몰랐던 여러 대안적인 고민들과 활동들의 세미나. 청개구리제작소는 예술에 대해서도, 정치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과 정치를, 일상과 예술, 일상과 정치를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결하였다. 미술공간(보안여관)과 노동의 상징인 몸베바지를 만나게 하고, 강고한 투쟁의 상징인 대한문 농성장을 여리디 여린 바느질로 엮어내고, 꽃을 피운다. 약한 자급을 위한 생활의 4종기예의 워크샵을 진행하며, ‘자급과 기술’을 연결시켰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개를 접착시켜 다른 감성을 촉발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접착은 한번의 접착으로 언제나 지속되는 것이 아닌 ‘일시적 공동행동로서의 접착’이기에 조금은 허술하다. 그러나, 이 허술한 접착은 접속되는 관계들 사이에 숨구멍을 만든다. 이 숨구멍은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순간의 긴장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끄 랑시에르가 ‘감각적인 것의 분할’에서 ‘피지배자들의 문제는 결코 지배 메커니즘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와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신체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문제였’다고 사유할 때, 청개구리제작소의 실천과 공유지를 형성한다. 즉 ‘감성적 구별짓기와 사회적 현실사이, 예술을 위한 예술과 참여예술 사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사이 등의 모든 표면적 대립을 해체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또 모두의 후원아래 있는 장소. 어쩌면 청개구리제작소에게 예술행동은 일상의 환대적 시/공간들을 생성시키는 것, 그리고 그 시/공간들 아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하기에 전체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