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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2호(2013.02)

[느근괘안나 네트워크]대전_대흥동에 색을 더하다







[대전]대흥동에 색을 더하다



글, 사진 : 월간토마토_대전 www.tomatoin.com



대흥동은 주택가이자, 유흥가인 동시에 문화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활동하는 동네다.

이 걷잡을 수 없는 오묘하고 다양한 색채가 꿈틀대는 ‘대흥동’에 강렬한 색을 더하는 문화 공간 두 곳을 소개한다.


산호 여인숙

가난한 예술가들의 고향, 여인숙이 바뀌다


1970~1980년대 대전문화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대흥동. 요즘엔 대흥동의 밤을 유흥업소의 휘영청한 모습 내지는 칠흑처럼 어두운 모습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흥동 어느 좁은 골목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근원지는 술집 설탕수박 옆 좁다란 골목 끝에 있는 대흥동 게스트하우스 ‘산호 여인숙’이다. 지난 1977년 일반적인 동네 여인숙으로 문을 열었으나, 영업을 접은 지 오래된 곳이다. 그러다 머물면서 교류하는 곳을 만들어 보자는 뜻을 품은 동네 청년들(대흥동립 마을기업 사업단)이 의기투합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산호 여인숙’을 재탄생시켰다. 옛 역할을 이어간다는 역사성을 살리고자 그 당시 낭만과 판타지가 그대로 묻어나는 ‘산호여인숙’이라는 이름을 다시 내걸었다.

여인숙 골목에 들어서면 초록색 대문 위 꽃으로 치장한 ‘산호 여인숙’ 간판과 ‘대형 세면도구세트’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유치하고 촌스럽지만 볼수록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산호 여인숙은 지금껏 대흥동에는 없었던 소통과 교류의 장이자 게스트 하우스이다. 서로 다른 문화가 상호작용하는 대흥동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2011년 여름 동네 축제 대흥동립만세를 통해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한 산호 여인숙. 숙박업소가 하는 1차적 기능 외에도 각종 전시는 물론 집담회 장소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돼 대흥동문화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2012년에는 산호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 전시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론 여행객이 머무는 숙박 공간으로도 이용하기 좋은 곳이다. 깨끗한 화장실과 주방, 이층침대가 있는 방도 여느 숙박업소 못지않게 쾌적하다. 오래된 건물이라 겨울에는 춥긴 하지만, 못 견딜 만큼은 아니다. 1층에 있는 ‘거실’은 대흥동 사랑방 역할을 겸하는 곳으로 많은 대흥동 ‘人’이 모여든다.


아트팩

아트 향기가 솔솔~


오래된 식당이 몰려 있는 대흥동 어느 골목. 고불고불 정겨운 골목으로 들어가자 빨간색, 파란색, 연두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물들인 문패가 보인다. 작가의 남다른 센스가 돋보이는 문패에는 ‘아트팩’이라고 세 글자가 쓰여 있다. 이름만 봐서는 딱히 뭐하는 곳인지 감이 안 오지만 왠지 모를 ‘아트’ 향기를 팡팡 풍긴다.

계단 앞에 놓은 커다란 진열장에는 갖가지 작품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한글을 변형한 도자기부터, 귀를 형상화한 작품, 표정이 새겨진 잔, 예비군 미니어처까지. 아트팩, 각자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찰흙이, 또 다른 한쪽에는 도자기 굽는 가마가 놓여 있다. 이쯤 하면 알 법한 아트팩의 정체.

그렇다. 뭐하는 곳인지 아리송했던 아트팩은 작업실이다. 같은 대학에서 세라믹 디자인 학과를 졸업한 청춘남녀 넷이 모여 만든 공동 작업실이다. 이유는 하나.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해나가기 위해서다.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고, 누구는 그 앞에서 좌절했을 현실과 꿈. 그 쉽지 않은 선택에서 이들은 꿈을 택했다. 그리고 네 사람(권기환, 류승윤, 남미은, 이지혜)은 대흥동에 왔다. 그게 벌써 1년하고도 몇 개월 전이다.

아트팩의 진한 ‘아트’ 향기는 작업실에서 나온다. 한쪽에서 작품을 팔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작가가 작업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아트팩을 방문하면 궁금한 작품 이야기를 작가에게 직접 듣고, 함께 나눌 수 있다. 관객에게는 좋지만, 작가에게는 신경 쓰이고, 부담되는 작업실 공개. ‘집보다 좋고’,

‘놀러 가면 빨리 오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작업실을 선뜻 드러내는 건 ‘다가가기’ 위해서다.

“공개를 해야 미술을 접하는 어려움이 줄어들 거 같아요. 편안하다고 생각하고요. ‘저건 내가 사도 되는 물건일까?’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깨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딱히 물건을 사지 않아도 차별하지 않고, 심지어 물어보면 작업적인 기술도 다 알려준다. 찾아온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한 손님이라는 이지혜 씨. 직접 만들다 보면 ‘공예품은 비싸다.’라는 인식이 바뀌는 것처럼 먼저 관객에게 다가가려한다.

“길게 보면 사람들을 어렵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은 거 같아요. 그리고 작업하다보면 사람이 고파요. 여기는 작업하는 곳이지만 편하게 오셨으면 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내 새끼’를 사랑해줬으면 한다고 남지은 씨는 말한다.

“저희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해요. 이걸로 큰 성공하는 것도 망하는 것도 아니에요. 작업이 사랑받는 거면 돼요.”


나이 들어서도 지금처럼 꾸준히 작업하고 싶기에 동료와 그리고 관객과 ‘함께' 가기를 택한 이들. 작업실 공개가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지금은 편해졌단다. 진로 물어보는 학생부터 매의 눈으로 샅샅이 훑어보는 사람까지 능숙하게(?) 대할 정도로 말이다. “처음에 들어올 때 쭈뼛거리시는데 저희도 노력해요.”라니 궁금하면 쫄지 말고 가보길.



월간 토마토

2007년 5월에 창간한 문화잡지입니다.

‘사람, 공간, 그리고 기록…’ 이라는 테마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의미 있는 것과 가치있는 활동,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2013년 1월 현재 통권 69호를 발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