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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2호(2013.02)

[시부리다]바람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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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


바람인형



글 : 박후기(시인) emptyhole@hanmail.net



바람 인형


사는 게 이벤트야. 바람이 아니었다면, 쓰러진 몸 일으켜 세우는 저 바람이 아니었다면 속 빈 내 몸이 어떻게 당신들을 향해 손 흔들 수 있었겠어.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드는 건 영혼의 구조 신호 같은 것. 손을 흔들면, 밤하늘의 별들처럼, 차갑지만 곧 따뜻해 질 수 있을 거야. 자, 흔들어. 살아남으려면 몸을 흔들어야 해. 흔들다보면, 살(肉) 자루 하나 가득 기쁨이 부풀어 오르다 갑자기 주저앉곤 하지. 주저앉은 기쁨이 슬픔이야.
있는 힘 다해 춤을 추는 슬픔, 기약 없는 초대장을 들고 흔들면서 흔들리면서 바람 같은 시간을 소비하는 게 인생이야. 남자는 여자의 자루를 빌려 내세를 소비하고, 여자는 자루 가득 꿈을 부풀리는 일에 정성을 소비하곤 하지. 죽으나 사나 어차피 제자리걸음, 무릎 꿇지 않으려면 바람의 뼈를 이식 받아야 해. 그리고 겨울이 오면 트리 끝에서 명멸하는 알전구라도 끌어안으며 내일을 생각해야 해. 주저앉으면, 끝이야. 그게 죽음이야. 그러니 사랑 결혼 취업 재혼 개업 쉼 없이 이벤트를 벌여야 해. 배알
도 없이, 정신없이 흔들리면서 우리는.


삐이~ 삐삐, 삐삐삐~ 바람 든 인형이 길 위에서 춤을 추고 있어. 음악에 맞추어, 뼈도 없는 것이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다시 일어서는 바람 인형의 모습이 살려고 애쓰는 내 모습 같기도 하고, 당신 모습 같기도 해.
오죽 다급했으면 간판 색깔만 대충 바꿔 달고 신장개업을 했을까. 식당 주인만 사장 여동생으로 바뀌었을 뿐인데도, 바람 인형들은 좋다고 손을 흔들면서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대고 있더군. 춤추고 떠들어봐야 저만 고달프고 힘들다는 것을 바람 인형들은 모르고 있었던 거야.
돈 많은 바비 인형이 또다시 식당 주인이 되어 카운터에 앉아 돈을 세는 동안 바람 인형들은 죽으라고 문밖에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지. 쓰러지지 않으려면 자전거는 계속 달려야 하고, 팽이는 계속 매를 맞아야 하며, 바람 인형은 끊임없이 헛바람을 들이켜야 했으므로. 
바비에겐 여동생, 사촌, 백인과 흑인 남자친구, 스포츠카, 항해용 보트, 소형 비행기, 아름다운 침대, 공주 드레스 등이 있지만, 알다시피 엄마 아빠 인형은 없어. 바비에게 걸리적거릴 건 없다는 얘기지. 그러니 속 빈 바람 인형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가난을 모르는 바비는 더러운 인형을 아주 싫어하거니와 더군다나 주저앉은 인형은 더욱 싫어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