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보기/42호(2013.02)

[연간기획 상식의 파괴와 전복]거리예술 : 인간과 자연, 그 관계 설정을 위한 성찰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

그 관계 설정을 위한 성찰



글, 사진제공 : 임수택(과천축제 예술감독) sutaeksi@hanmail.net




사회현실에 관한 관심은 현대 거리예술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이다. 거리예술은 ‘거리’라고 하는 공개된 공공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예술행위로, 따라서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것을, 심리적인 것보다는 사회적인 것을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 자연환경에 관한 작품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댄스씨어터 창의 <새> (안무 : 김남진)


하얀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새의 평화롭고 자유로운 몸짓을 표현한다. 이들도 익명성을 나타내는 가면을 썼다. 이들의 운명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들의 가면은 흰색이다. 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다투고, 편을 가르고, 놀이를 한다. 그러다 우연히 한 무용수(새)가 검은 액체 속에 빠진다. 이리저리 허우적거려보지만, 몸은 더욱검은 액체 속에 빠져 들어갈 뿐이다. 마침내 온몸에 검은 액체를 뒤집어 쓰면서 그는 비명을 지른다. “꺼이, 꺼이!” 

온몸에 검은 액체를 뒤집어쓴 채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가는 새의 모습은 쉽게 태안반도의 기름유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바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던 어류와 조개류만 희생당한 것은 아니었다. 하늘을 날던 새도 기름 덩어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 사건이 있기 불과 얼마 전 걸프만에서도 새가 검은 기름에 젖어 죽어갔다. 댄스씨어터 창의 <새>는 검은 기름에 젖어 죽어가던 새들의 모습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언론과 학계는 각종 과학적 잣대를 가지고 이 사건을 평가하였다. 그리고 어느 무용수는 실제로 그 사건을 우리 눈앞에 가감 없이 재현하면서 우리

에게 직접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다.

댄스씨어터 창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던 김남진을 중심으로 2006년에 설립된 단체로, 현대무용에서 주로 나타나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안무를 추구하고, 여기에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연극적 무용을 시도하고 있다. 이 단체 역시 사회문제에 깊이 천착하여, 현대인의 맹목적인 질주를 풍자한 <어쨌든 나는 가야 한다>와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다룬 <똥개>를 발표한 적이 있다.


댄스씨어터 창 blog.naver.com/dancechang



극단 뤼 피에통(Theatre Rue Pietonne)의 카밀라(Camila) _ 프랑스


무대에는 애벌레 모양의 기다란 회색 주름통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잠시 후 검은색 정장 차림의 사내가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한다. 손에는 작은 지휘봉은 쥐고 있다. 사내의 복면은 익명성을 나타낸다. 누구나 해당한다는 뜻이다. 사내는 지휘봉을 들어 지시하기 시작하고, 그 지시에 따라 애벌레 모양의 주름통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름통의 움직임 대부분은 곡예사의 지시를 따르는 곡마단의 거대한 동물들을 연상시킨다. 구르고 뛰고 재주를 넘는다. 동작도 곡마단의 동물들이 그렇듯 아주 단순하다.


사내가 잠시 쉬는 사이 주름통에서 아주 흉측한 모습이 빠져나온다. 아주 흉측한 괴물 같은 모습에 관객들은 깜짝 놀란다. 어린아이들은 무서워 울기도 한다. 그의 움직임은 아주 거칠어서 관객들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사내가 제압하려고 하자 그는 저항한다. 그러나 괴물이 사내의 지휘봉을 이길 수는 없다. 그가 고통을 피할 길은 주름통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다시 이전과 비슷한 곡예 공연이 짧게 이루어진 다음 마침내 공연이 끝나고 사내가 우아하게 무대인사를 한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주름통이 사내를 통째로 삼켜버린다. 무대에는 기다란 주름통만 남는다. 정적인 잠시 흐른 후 주름통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긴 주름통이 가운데가 나뉘면서 마치 세포분열을 하듯이 이내 두 개로 분리된다. 비로소 평화로운 음악이 흐른다. 두 주름통은 서로 쓰다듬고,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가 하면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의 하트 모양이 그려지면서 공연이 끝난다.

공연을 마친 배우에게서 “지금까지 인간에 의해 희생된 그리고 앞으로 희생될 자연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는 마지막 대사가 흘러나온다.

비단 곡마단의 동물들뿐이겠는가! 자연은 생존을 넘어선 인간의 욕망에 의해 삶을 왜곡당하고 심지어는 죽음을 맞는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유일한 자연이다. 이 작품은 자연이 인간에 의해 훼손당하는 것을 고발하고, 화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공연의 후반부 사내가 주름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 똑같은 주름통이 되어서야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 인간이 자연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연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희극적인 분위기에 휩쓸리곤 하는 통상적인 거리극과 달리 극단 뤼 피에통은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이들은 환경문제에 몰두하다가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극단 뤼 피에통 www.theaterruepietonn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