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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2호(2013.02)

[연간기획 상식의 파괴와 전복]예술행동 : 스쾃하라, 저항하라, 창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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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쾃하라, 저항하라, 창작하라


글, 사진제공 : 김강(미술가, 미학연구자) parasolhs@hanmail.net



갈산동 421-1번지. 장맛비가 내리는 날, 많은 사람이 이 주소의 빈 공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5년 동안 비어 있었던 공장, 5년 동안이나 노동이 거세되었던 공장은 이날 새로운 활기로 가득 찼다. 2012년 7월 15일, <갈산동 421-1> 전시의 오픈 날. 전진경 작가가 빈 공장에 작업실을 만들고 나서 2개월 쯤 지난 시점이다. 김 부부의 방문 이후 ‘우~와, 이렇게 넓고 멋진 공간이! 전시를 하면 죽이겠는데?’ 전시계획이 세워졌고, 많은 작가가 접속했다. 빈 공장의 발견, 작업실, 만남, 전시계획, 우연한 접속 등 <갈산동 421-1>전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쾃은 ‘빈 공간 점거’를 뜻하

는 말로, 오스트레일리아 목

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

에 들어가 자기 양을 먹이던

행위에서 유래했다.


리좀과도 같은 만남은 기타를 만들던 콜트콜텍 부평의 빈 공장을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장소이자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전시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전혀 만날 수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갈산동 421-1> 사이트에서 만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가 되었다. 이질적인 것의 기묘한 만남이 만들어 내는 폭발적인 정서.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의 사이트에 모일 때, 분리된 사물 간의 틈은 흐릿해지며, 질서의 규칙은 비이성적인 것이 된다.


소유주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전시, 누구도 기획자가 아니기에 모두가 기획자가 될 수 있었던 전시. 멈추었던 공장 전체가 한순간에 ‘전시’라는 노동으로 다시 가동되었으며, 200명에 육박하던 노동자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관람객과 관계자들이 북적거렸다. 닫혀 있던 공간은 다시 열렸으며, 열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생성하고 있었다. 이날로부터 2,000일이 넘는 콜트콜택의 해고투쟁은 더욱 폭넓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레드어워드에서 올해의 전시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처럼 도심 한 복판에서 공간을 둘러싼 소유의 문제와 공간관계의 모순을 드러내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을 스쾃(Squat)이라 한다.


스쾃은 ‘빈 공간 점거’를 뜻하는 말로, 오스트레일리아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자기 양을 먹이던 행위에서 유래했다. ‘스쾃’은 산업혁명 시기, 도시화의 과정에서 거주지를 찾지 못한 노동자들이 도심의 빈 공간을 주거 공간으로 점유하면서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오늘날 삶과 예술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예술행위와 실천을 통해 현대적 삶과 예술의 문제에 성찰적 지점을 도발적으로 제기하는 현대의 예술가들, 즉 스쾃티스트

(squartist)1)에 의해 예술적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되었다. 스쾃티스트는 도시 빈 공간을 새로운 예술공간, 자율적 예술 공동체의 공간으로 전용하고 있다.



호메로스의 양들


땅은 언제부터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을까? 우리 모두에게 속해 있던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것’으로 귀속되고, 다수인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콜트콜텍의 사장은 그 공장을 소유하고 공장이 생산해 내는 부를 독점했으나 노동자들이 필요 없게 되자 해고라는 방식으로 그 공간에서 그들을 배제하였다. 그 공간에서 떠밀려 나는 순간, 몫을 잃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는 예술가들의 전시와 함께 공명을 일으키면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그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소유주는 사용하지 않는 공간. 이제, 이 공간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소유주인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자들인가? 한정된 목숨을 지닌 우리는 과연 공간이라는 것을 소유할 수나 있는 존재들인가? 언제부터 우리는 독점적으로 ‘공간’을 소유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는가? ‘공간’을 통한 권력과 부의 재편은 과연 온당한 일인가? 이 시대가 말하는 합리는 자본의 합리 아닌가? 


들뢰즈에 따르면, 호메로스의 시대는 방목장의 울타리나 소유지 개념이 없었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땅을 짐승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짐승들을 숲이나 산등성같이 한정되지 않은 땅/공간 여기저기에 할당했다. 즉 울타리를 먼저 만든것이 아니라, 짐승들이 가고 싶은 곳까지 가게 한 후에 그곳을 짐승들의 사용처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에 점유를 뜻하는 단어와 장소는 마을 주변의 평야처럼 명확한경계가 없었다. 그렇게 호메로스의 양처럼 도시의 땅, 도시의 공간을 개척해가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을 땅에, 도시공간에 분배한다. 울타리도 척도도 없는 유목적 노모스, 유목적 분배이다.


이것이 스쾃티스트가 공간을 사유하는 방식이다. 스쾃티스트에게는 유목적 분배를 통해 생성된 스쾃 그 자체가 자신들의 예술이다. “깨어나라 그대여,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깨어나라 그대여, 우리는 그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예술 활동을 해서는 안된다.” 2) 국가나권력이 지향하는 정착적 분배질서로부터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현대적 기술(art)은 스쾃티스트에게 있어서 예술(art)이자 스쾃이다. 이들은 스쾃을 통해 우리에게 호메로스 시대의 ‘분배’ 개념을 역추적하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이 역추적은 단순한 과거로 돌아가라는 요청이 아니라 공간에 관해 근원적으로 성찰하라는 요청이다.


호메로스의 양들인 스쾃티스트들은 전세계에 걸쳐 퍼져있다. 아시아와 남미에서는 땅과 경작을 위한 공간을 둘러싼 문제에, 유럽과 북미 그리고 한국에서는 거주와 창작에 관한 문제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전방위적인 문제를 횡단하면서. 스쾃티스트는 공간소유를 통한부와 권력의 고리를 끊어버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도시 어디에나 있는 빈 공간에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한다. 자본주의 그 너머의 질서를 자본주의 사회의 한 복판에서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을 재구성한다는 의미에서 랑시에르가 주목한 ‘미학’이 된다.


한국의 스쾃운동은 예술가들에게 의해 2004년 오아시스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용산의 레아미술관, 홍대앞의 두리반, 한예종 근처의 빈 안기부 건물을 거쳐 2012년 부평의 콜트콜택 갈산동 빈 공장까지 이어졌다. 도시의 빈 공간은 그래도누군가의 소유이지 않은가? 그곳을 사용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은 오히려 인간이 대지를 소유할 수나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사적 소유라는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스쾃티스트는 그 권력을 비웃으며, 빈 공간에서 빈 공간으로 횡단한다. 그들의 횡단이 잠시 멈추는 장소에서는 다른 종류의 삶과 예술이 펼쳐진다.


거리를 걷다 눈에 띄는 빈 공간에 주목하자.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실천, 새로운 사유, 새로운 예술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의 상상력마저도 한계를 지니는 지점 너머로 우리 스스로를 분배할 때 우리는 아마도 또 다른 ‘지금’을 만들지도 모른다


1) squartist는 squat과 artist가 결합되어 squ(at)+(ar)ist라는 형태로 재조립된 것으로 스쾃 행위를 하는 예술가를 지칭한다. 김강, 「현대미술에서 예술가의 역할에 관한 연구」홍익대학교 미학과 석사논문, 2008 참조.

2) 김강, 『삶과 예술의 실험실_Squat』, 문화과학사, 2008, p.78. Jean Starck(예술가, 예술가들에 의한 스쾃, 아르 크로쉬의 공동 창설자), Débat 1: 20ans de squats d'artistes, le14 september 2002 à Palais de Tok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