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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1호(2012.12)

[독자에게 보내는 리듬]이제는 구도를 바꿀 때

[독자에게 보내는 리듬]이제는 구도를 바꿀 때

 

박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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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도를 바꾼 이유’

 

새벽 세시 쯤일까
아니 네시쯤이 됐을까
하루가 지나고 잠들었으니
동이 트지 않은 지금은 그 시간쯤

화장실에 가다가
좁은 방 피아노 모서리에
또 부딪힌 나의 오른쪽 다리
어제도 오늘도 자꾸만 부딪히네

아물새도 없이 너무 아파와
너무 아파 너무 아파
주저앉아 한없이 울다가 잠이 들어

 

 

예전에 자취하던 단칸방에 88건반 짜리 마스터 건반을 들여놓았다. 이미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신발장, 냉장고, 책상, 옷장 때문에 그 큰 건반(이라기보다 방이 작아서 크게 느껴졌던 것)을 책상 한쪽에 붙여 방 한가운데 가로로 놓을 수밖에 없었다. 건반 안쪽 공간에서 잠을 잤고, 건반 바깥쪽으로 겨우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공간만 두고 화장실과 부엌과 현관을 들락날락했다. 그러니까 건반때문에 그 작은 방이 두 동강 난 것이다.

혼자 사는 방인데다 타고난 귀찮음까지 더해져서 '그냥 대충 조심해서 지나다니면 별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리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제정신일 때는 괜찮은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였다. 자다가 깨어나 화장실에 갈 때면 매번 건반 모서리에 허벅다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건반은 무사했지만 언제나 같은 부위를 가격당한 나의 허벅다리는 퍼렇게 멍들곤 했다. 그럴 때면 깜깜한 방에 혼자 주저앉아 궁시렁궁시렁 욕하다가 지쳐 잠들기도 했다. (울지는 않았다.)

 

나는 지독한 귀차니즘과 선천성 정리정돈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귀찮음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방 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건반과 책상을 한쪽 벽으로 붙이고 또 거기 있던 짐들을 가운데 쪽으로 옮기고... (아, 이 글을 쓰기만 하는데도 나로선 진짜 쉽지 않은 일이었음이 다시 느껴지고 있다!) 어쨌든 둘로 갈라졌던 기형적인 방 구조는 누구 하나 상처입히지 않을 평화로운 모습을 되찾았고, 더 이상 화장실을 가다 다리를 부딪치는 일도 없었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귀찮음과 무관심은 결국 나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

나 하나 조심한다고 해서 이미 구조화된 불편함을 피해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는 내가 무심코 버린 무관심과 귀찮음을 주워담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때문에 불편한 구조는 더욱 더 불편하게 굳어져 버린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들은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독고다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옛말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지만, 지금은 잘못된 선택만큼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위험한 때이다. 놓는 위치에 따라 애물단지가 되기도 하고 필요한 악기가 되기도 하는 나의 건반을 옮긴 이유, 방 구조를 바꾼 이유처럼 조금 귀찮더라도,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사는 세상을 내게 맞게 리모델링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