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보기/39호(2012.08)

[푸지게 한판]마 딴소리는 집어치우이소, 그냥 노는 기라예!

[푸지게 한판]    글, 기획 : 조혜지 esc2277@naver.com    사진 : 이장수 leeseeda@paran.com

 

마 딴소리는 집어치우이소, 그냥 노는 기라예!

남놀=남하고, 놀자=해원상생대동 ∴ 남산놀이마당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남산놀이마당 20주년 기념 거리축제_광안리 해변 6월 24일 일요일
장마를 알리는 비가 푸슬푸슬 내리고 있었다. <아놔, 비 오네. 모래 위에서 하는 공연인데, 취소되는 거 아니야ㅠㅠ> 걱정스러운 마음을 페이스북에 지그렸더니 금방 답이 온다. < 아마 무조건 할 걸^^? 와서 맥주나 한 잔 같이 해요ㅋㅋㅋ^^> 무조건 하는 공연. 하긴, 남산놀이마당의 역사에 조건 따지고 몸 사리며 공연한 기록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비가 내려 푹푹 꺼지는 모래사장 위에 마련된 객석에는 띄엄띄엄 흥이 덜 오른 건조한 표정의 관객들이 앉아 있고, 공연을 준비하는 몽골 텐트 안엔 땀범벅이 된 남산놀이마당(이하 남놀) 식구와 이웃들이 각자 준비한 옷들을 갖춰 입고 연습 삼아 악기를 덩쿵따 덩덩쿵따 굴려본다.
 잠시 뒤 시작된 알림굿. 푸른 조끼에 흰 바지 받쳐 입고 색동띠 두른 아지매, 아자씨, 청년들이 한데 북을 두드리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어울려 논다. 북 찢어져라 둥둥대는 소리에 흐린 날 우중충한 해변 느릿느릿 걷던 주변의 사람들이 객석으로, 무대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헐씨고- 어얼씨고-!”

마이크재비(사회자)의 추임새가 북재비, 장구재비의 장단에 흥을 싣는다. 장단을 슬슬 마무리하고 들어오는 무리 중에, 어라 중고생쯤 돼 보이는 총각 하나가 연신 땀을 훌치며 온다.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풍물은 초등학교 때부터 하긴 했는데, 진짜 관심 가지고 시작한 건 남놀 들어와서부터 고요.”
오늘 처음 메인을 맡았다며 방글방글 복스럽게 웃는 푸짐한 얼굴. 이어지는 공연 시작 소리에 후다닥 달려가 무대 옆 모래사장 구석에서 소고 장단을 보탠다.
-지신 지신 지신아-
“무대 앞에도 술 상 하나 차리자! 오이소! 오이소!”
마이크재비가 지신님 부르는 자리에 더불어 손님들도 불러 모은다. 슬슬 채워지는 의자들. 어디서 구해왔는지 두툼한 생활정보지로 방석을 삼는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막느라 챙겨온 우산들은 북채가 되어 탁탁 타타탁 장단 맞추기에 딱이다. 객석 모서리, 가장 뒤에서 덩그러니 구부정한 허리 채 못 펴고 노는 모양 구경 중이신 백발의 할배.
“내 귀가 안 좋아가. 그래도 보니까 좋네.”
“보시니 좋으세요?”
“좋지, 좋다.”
무대 위, 할배의 동년배쯤 돼 뵈는 실버 풍물단이 오른다. 빗물에 질척거리는 무대 위에 넓은 비닐로 마당을 덮고, 자주색 곱게 단복 맞춰 입은 할매들을 모신다. 마이크잽이 할매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오늘 어떻습니꺼? 좋습니꺼?”
수줍게 홍홍홍, 웃기만 하시고 말을 못 잇는 할매.


“뭐가 좋습니꺼?”
“좋습니더!”
“아이, 뭐가 좋냐고!”
“마 그냥 억수로 좋아예!”

 한껏 힘 실은 풍물 장단이 주름진 손아귀를 타고 신명나게 퍼진다. 무대 뒤 해변에서 앞으로 뒤로 아령 들고 조깅 중이던 총각이 장단에 맞춰 흥겹게 뛰기 시작한다.
 무대 뒤편, 상모와 부포를 돌리기에 여념 없는 아지매들.
“목 안 아프세요? 되게 무거워 보이는데”
“목 아프지! 아이고~목이야! 흐흐”
“원 크게 돌지 마라, 힘들다. 오늘 같은 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가.”
“그지예, 좁게 잡아야겠지예.”
 잠깐의 소나기와 함께 바람이 몰아친다.
“에헤이, 하늘이 우리한테 비를 내릴 수가 있나! 클클”
“바람 이래 불면 상모 안 돌아갈낀데-”
어랏, 그 말 하자마자 바람이 멎는다. 용왕님 들으시나 보다. 잔치판 깨질 정도의 비바람은 참으시는 걸 보니. 해가 잠시 얼굴을 드민다. 무대 아래엔 재잘재잘 병아리 꼬까옷을 입은 꼬마 풍물단이 기다리고 있다.
“엄마! 엄마!”
“왜?”
“이거 자꾸 풀린다!”
비뚤어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다시 모래장난 시작. 손에 들고 있던 소고채로 모래사장 위에 삐뚤빼뚤 제 이름을 쓴다.
“자자 올라가자! 계단 조심, 조심!”
말갛게 뜬 새벽 해처럼 맑은 얼굴의 꼬마들, 한 손에 소고 잡고 한 손으론 내려오는 바지춤 부여잡고 소고춤을 춘다.
-해야 해야-잠꾸러기 해야- 우리 하늘이 준 것을 따뜻하게 풀어 주렴-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남산 식구들의 놀자 마당. 먼저, 황해도 봉산 탈춤이다.
“탈 들어간다!”
“잘한다-”
“허이, 덩기덕 덩따 얼쑤!”
갑자기 훅 누웠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어난다. 아니, 살아난다. 탈을 보여줄락 말락 애태우는 탈 놀이꾼. ‘아이고! 답답해, 탈 좀 보이도!’ 싶을 때 쑥,하고 탈이 나온다. 탈 나오자 춤판 시작된다. 발목에 강단 있는 힘 싣다가, 끊고, 다시 싣다가, 끊고. “덩끼덩 덩따 얼쑤!” 맞춤 장단에도 야무지게 힘 들어간다.
 너무 힘을 실었나, 싶을 때 아기자기한 소고 춤 장단이 무대를 잇는다. 맛깔시럽기도 해라,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정갈한 맛이다. 크게 들썩이던 어깨가 굴렁굴렁 예쁘게 춤춘다.
-부우우웅
일순간 장내를 정리하는 시나위. 태평소, 이어서 시작을 알리며 신명을 돋운다. 부포를  머리에 동여맨 악사들 들어와 놀음을 시작한다. 고개나 끄떡끄떡 하는 것이 뭐가 어렵나 싶었는데 아이고, 저것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동전만 한 모자 모서리에 그 무거운 부포를 세웠다, 눕혔다, 신기에 가까운 균형감이다. 이어 얼큰한 징소리, 쫄깃한 꽹과리 소리, 덩덩따따 매섭게 몰아치는 장구 소리 들어온다.
“지금부터 보실 춤은, 보릿대춤, 보리 문둥이춤이라고 하는 건데요. 여러분 진짜 오늘 잘 오셨습니더. 이거 어디 가서 보기 힘든 거거든예.”
문둥이? 무대를 쳐다보는데 어린애처럼 연신 방긋방긋 웃고 있는 할배 한 분이 무대 중앙에 오른다. 그러더니 온몸의 관절을 이리 꺾고 저리 꺾고. 브레이크 댄스보다 더 역동적으로 마디마디 꺾어 대신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 저게 뭐꼬, 싶어 일어나서 고개를 한껏 뽑아 구경한다. 필 받은 문둥이, 객석으로 떠그덕 떠그덕 기어 내려간다. 문둥이 다가가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한다. 관객들, 좋다고 손을 부여잡고 흔들어 재낀다. 문둥이가 뭐시 그리 좋은지, 살을 부비고 어깨춤을 함께 춘다. 신명난 문둥이, 무릎으로 걷기 시작한다. 벌떡 일어나 멋지게 마무리 인사한다. 와-하고 박수와 함성이 터진다. 자연스레 하이라이트가 열린다. 무형문화재 11-1호, 진주 삼천포 농악을 이끄는, 남놀의 가장 큰 어른. 김선옥 대장님이 제자들과 함께 무대를 휘저으신다. 까까머리 남놀에서부터, 배불뚝이가 된 아저씨 남놀까지, 이 어른의 장단 아래에선 모두 겸손한 놀림이다. 선생님, 가장 밝은 옷 받쳐 입으시고 울렁울렁 춤을 추신다.
-갱개갱개갱
인사한다.
-갱개갱개갱
일어나서 다시 인사한다.
-갱개갱개갱
갑자기 뒤섞여 몰아치는 꽹과리, 장구, 북, 징, 소고의 풍물 식구들. 상모청년이 상모끈 휘어잡더니 크게 몰아친다. 관객들 함성에 파도 소리 멎는다. 한 판 거하게 놀고 나서, 대장님 한 말씀 던진다.
“우예 놀꼬, 모리겠다. 마 놀자. 힘이 쭉쭉 잘도 맞다!”
크게 크게 어울린다. 원을 그리는 상모따라 모두들 크게 크게 원을 그린다. 와장창 깨지는 것 같은데 무너짐이 없다. 소리가 찬찬해지더니 상쇄들 모여 갑자기 토론을 시작한다. 또 갑자기,
“마, 돌아라!”
신이 났다. 소리로 퍼주고 퍼주는 모양이다. 배가 터질 듯 부르다. 흥을 깨는 단 하나의 웬수는 바람이다. 상모머리 둥글둥글 잘도 노는데, 계속 참외를 그리게 만든다. 에라, 끈이 떨어져라, 목이 꼬여라, 열심히 돌려 재낀다.
-갱갱개갱 갱갱개갱 갱갱개갱
마무리 인사.
-더덩쿵따!
몰아치는 소리에, 발 놀음에, 상모놀음에 관객들, 술 한잔 걸친 듯 모두 얼굴이 불콰해졌다.
“자, 이제 우리도 한번 놀아 봅시다!

해원상생대동. 같이 노는 무대라예. 자자 올라오이소!”
멈춘 줄 알았던 풍물이 앵콜도 안 불렀는데 다시 덩덩 덩따쿵따 더더덩 더더덩 덩따 쿵따 휘모리를 시작한다.
 주뼛주뼛 앞사람 뒷사람 옆에 사람 눈치 보던 사람들. 마이크잽이의 재촉에 기대 하나 둘 무대로 오른다. 다시 풍악이 울리고 어색해 어쩔 줄 모르는 관객님네들 손에 솟대 하나씩 쥐어준다. 해원상생대동. 결국 속 아픈거 풀고 더불어 한 판 놀자는 거다. 노란 비닐 앞치마 둘러맨 횟집 아지매가 풍물 장단에 고속버스 춤을 춘다. 두서너살 배기 울어 재끼는 아들 등에 업고 뻘줌하게 서서 어깨를 들썩이는 젊은 아빠도 보인다. 진탕 술에 취한 할배가 솟대를 아이의 손에 쥐어주고 박수를 치며 아이를 어른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놀 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하나가 되삣네- 아니 이게 무신 남놀 20주년 기념행사고! 그냥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나 와서 같이 놀아재끼는 남놀의 놀자판이지. 남하고 놀자, 그래서 남놀인가. 아무튼 오늘도 한 판 제대로 놀았다. 아이고, 저 횟집 아지매는 오늘 장사 다했네. 저 할배는 언제 집에 들어가실랑가. 하기사, 세상 근심 시름 모두 내려놓고 놀자는 판에 돈이 다 뭐고. 아끼야 되는 시간은 또 어딧노. 그냥 마 노는 기지! 그래야 해원상생대동(解怨相生大同)되는 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