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띄우는 오래된 사진 한 장]  글 : 노진숙 rakesku@hanmail.net  사진제공 : 김현정


 어린이 대공원은 천국처럼 달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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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대공원은 1909년 수원지 댐이 준공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이후, 1978년 세계 어린이의 해를 맞아 그 명칭을 어린이 대공원으로 바꾸게 되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 어린이 대공원이라는 신조어는 개념조차 생소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린이 대공원” 안에는 무엇들로 가득 차 있었을까. 어린이조차 위로받아야 하는 시대의 도래를 미리 내다보고 그 이름을 <어린이>대공원이라 명명한 것일까.

 

현대는 어린이와 청소년으로 표상되는 자녀 세대를 우대하는 사회다. 경로자 우대는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들 삶에서 가족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며, 가족에서 아이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아동은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뿐 아니라 미래사회의 공적인 주체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 의미가 두드러진다. 아동의 미래, 사회를 짊어지고 갈 한 아이의 미래를 위해 정상적인 구성을 포기하는 기러기 아빠를 보더라도 자녀는 한 가정의 핵심 이데올로기다. 어느 부부가 부모 봉양을 위해 가정의 구성을 포기하겠는가?

 

1930년대까지만 해도 어른과 아이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양 근대 가족의 모습은 18세기 이후에야 보편화하였다.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오고 아이들을 보호와 훈육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 이후, 아동의 위상은 급격히 높아진다. 아동과 관련된 산업이 발달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아동은 세상을 읽어내는 주요한 시선의 주체로 자리 잡는다. 최근 키즈마트가 문을 연 것은 30여 년 전 어린이 대공원이 등장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다른 점이라면, 자본이 더욱 폭력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자본이 아이들과 직접 접촉한다는 것이다.

 

모든 가치가 어른중심(부모중심)에서 아동(자녀)중심으로 옮겨진 이후, 오히려 아동은 소외된다. 소년이 가족의 비전을 제시하는 주체가 된 이후, 연약한 존재인 아동을 보호함과 동시에 훈육과 교육을 통해 부모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아울러 가족의 비전까지 자녀에게로 떠맡긴다. 마치 자신의 아바타처럼 여기고 우상화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동은 그 존재가 무화되고, 어른들의 욕망이 아동의 어깨 위에 날개를 단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지만,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객체로 길러진다. 아이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른들의 조작일뿐인 상태. 이것이 오늘의 아동이며, 오늘의 청년이다.

 

사진 속 아이는 조부모와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만이 수십 년 전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의 아동은 후대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어떤 청사진이 미래에 남겨져 우리를 증거할까. 어린이 대공원은 이 세계가 아동의 천국임을 증거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동의 고통을 증거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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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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