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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5호(2013. 08)

[연간기획, 상식의 파괴와 전복]거리예술_거리를 흐르는 예술 : 이동 거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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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흐르는 예술: 이동 거리극

글, 사진제공 : 임수택(과천축제 예술감독, 한국 거리예술센터 대표) sutaeksi@hanmail.net 


  거리예술의 장점은 이동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많은 공연이 여러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공연하기도 하고, 또 1킬로미터 내외의 구간을 이동하면서 거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도 한다. 보통 퍼레이드가 일정한 행위를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한곳에 있으면 전부를 구경할 수 있다면, 이동 거리극은 대부분 이동하는 동안 커다란 이야기 속에 있는 각기 다른 장면들을 펼쳐 보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서 관람해야 한다. 특히 이런 공연들은 차량이 점령한 도로에 예술이 흐르게 함으로써 거리가 인간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회복하는 기쁨을 제공한다. 이러한 공연을 하는 가장 전설적인 단체는 “로얄 드 뤽스”(Royal de Luxe)이다. 이 단체의 특징은 첫째, 7~8미터 크기의 대형인형을 사용한다는 점, 둘째, 한 작품을 약 3일에 걸쳐 공연한다는 점, 셋째, 대개 매번 공연하는 도시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한 작품은 한 번만 공연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극단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대형 소녀 인형은 다른 작품에도 종종 등장한다. 작품이 워낙 규모가 크고 제작기간도 길어서 한번 공연하는 데 보통 15억 원 정도의 경비가 소요되어, 커다란 축제의 전체 예산과 맞먹는다. 따라서 축제에서 공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도시의 커다란 이벤트로 아주 가끔 공연된다. 이 극단의 활동은 너무나도 엄청나, 필자가 감히 글로 옮길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 지면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그렇지만 한편의 전설로서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극단 오포지토(Oposito)의 “요한네스버그의 골목길”(Les trottoirs de Jo’burg… mirage)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비한 순례행렬: “요한네스버그의 골목길”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면 어디선가 갑자기 20여 명의 무리가 1m × 1.5m 함석판을 등에 지고 천천히 걸어온다. 함석판은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듯이 가난한 아프리카인들이 간편하게 집을 지을 때 많이 사용하는 소재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는 땅을 향해 떨구었다. 수많은 관객이 가까이에서 이들을 따르지만, 이들은 마치 세상에 자기들만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다른 한 무리는 기다란 횃불을 들고서 이들 행렬을 보호한다. 얼굴은 흰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검은색으로 몇 개의 굵은 줄을 사선으로 그었으며, 머리는 펑크처럼 거칠게 위로 치올려 전체적으로 옛 아프리카의 전사를 연상시킨다. 약 15분간에 걸친 이들의 이동은 마치 거대한 의식을 치르려고 신성한 곳을 찾아가는 순례행렬처럼 보인다. 마침내 한 곳에 도착하면 커다란 불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여 기괴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긴 나무막대로 땅을 두드리기도 한다. 여기서도 그들은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자기들만의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난 후 거리를 행진한다. 이 행렬은 기다란 레인스틱(rain stick)을 이용한 타악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며, 맨 뒤에는 아프리카의 전통인형 “은데벨레‘를 크게 확대한 구조물 세 개가 뒤따른다. 행렬하는 동안 그들은 우산을 들고 춤을 추기도 한다. 이들 춤의 우아한 몸짓과 다양한 원색의 우산이 어우러져 아프리카의 화려한 문화를 연상시킨다. 뒤이어 함석판으로 아스팔트를 두들기며 행진한다. 함석판과 아스팔트가 부딪히며 생겨나는 거친 소리와 그들의 역동적인 몸짓이 어우러져 마치 대지와 인간을 격리시키는 문명의 아스팔트를 까부수겠다는 심사처럼 보인다. 후반부에 이르면 갑자기 거대한 동물 형태의 인형들이 사방에서 나타나 거리 전체를 점령한다. 몸에 불이 붙어있는가 하면 불을 내뿜기도 한다. 거기에 마치 공룡이 내는 것 같은 기괴한 울음과 빠르고 경쾌하면서 거칠고 강한 타악이 가세한다. 차량이 점령하던 도로에 문명 이전의 원시적 분위기가 창출되는 것이다. 이 같은 한바탕 소란을 벌이고 난 후 그들은 폭포를 연상시키는 폭죽 뒤로 홀연히 사라진다.


  한 시간여의 기괴한 행렬이 끝났다. 마치 악몽을 꾼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어쩌면 무의식 상태에서 꾸었을지 모를 원시의 파라다이스에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아프리카 부족의 축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이 작품은 이성과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문명세계에 거칠게 도전하고, 우리에게 아주 낯선, 다시 말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이성적인 초현실세계의 거대한 힘을 과시한다.


  이 작품은 2007년 과천축제에서 공연된 바 있다. 당시 이 단체는 예술감독인 나한테조차 어느 곳에서 등장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지시된 장소에서 그냥 기다리면 어느 곳에선가 나타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기들의 행렬의 신성함을 지키려고 한 것처럼 보였다. 사족이지만 이 단체는 보통 모든 단체가 하듯이 공연시간을 정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3분 늦은 시간으로 한다. 기차 시간을 보면 정시가 거의 없더라는 것이다. 또 어느 축제에서는 새벽 04시 03분에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 저녁에 하면 관객이 너무 많아 제대로 공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인기가 많은 극단이기도 하다.


  이동공연은 반드시 큰 규모의 작품만 하는 게 아니다. 일인극 등 소규모의 작품도 이동하며 공연하면서, 거리라는 공연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거리는 실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예술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기다리고 있다.



홈페이지: http://oposito.fr/ (극단 오포지토)

http://www.royal-de-luxe.com/en/ (극단 로얄 드 뤽스)


유튜브 검색: “oposito”

보도: http://www.youtube.com/watch?v=6te0QSEG4ak


순차별 동영상: 공연을 거의 볼 수 있음

http://www.youtube.com/watch?v=iOwpVq_T6ck (1)

http://www.youtube.com/watch?v=pytZlnaeVJM (2)

http://www.youtube.com/watch?v=egVKxUvx940 (3)

http://www.youtube.com/watch?v=lQgWsU38QZ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