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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3호(2013.04)

[우린어떻노 부산 살피기] 시 읽기 사람 읽기 : 꿈을 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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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라고?


글 : 윤지영(동의대 국문학과 교수) windnamu@hanmail.net

일러스트 : 방정아 artbang1@hanmail.net


장면1.

회식 자리에서 한 동료가 말했다. 신입생들과 면담을 했는데, 애들이 꿈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더라고, 열정은 고사하고 무기력하기만 해서 큰일이라고, 아마도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다들 동의했다. 요즘 애들은 꿈이 없어.


장면2.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특히나 운동을 잘 한다. 운동만큼은 시키지도 않아도 열심히 한다. 초등학교 때는 줄넘기 영재로 뽑혔고, 남들은 1년이 걸려도 배우지 못하는 수영의 4가지 영법을 석 달 만에 떼기도 했다. 운동 특기생으로 중학교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지만 부모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고 장래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얼마 전 그 딸과 엄마를 같이 볼 일이 있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나 정말 운동하면 안 돼? 왜?” 엄마는 간단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돼. 공부나 열심히 해.”


장면3.

고등학교 때 일이다. 동아리 활동으로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한 남자 아이가 자신의 꿈을 버스 운전기사라고 소개했다. 큰 차를 모는 게 멋있어 보인다나. 속으로 몹시 놀랐다. 어떻게 그런 게 꿈일 수 있지? 꿈이라면 적어도 선생님이나 변호사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냐? 만약 내 꿈이 그런 거라고 한다면 우리 부모님은 뭐라고 하실까?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장면4.

군대 가보니까 세상을 알겠더라구요. 전국의 23살짜리들을 성적 순, 부모 경제력 순으로 한 줄로 세워놓으면 제가 어디쯤일까 생각을 해봤어요. 한심하더군요. 전 꿈도 없고, 능력도 없고, 뭘 해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며칠 전 복학생이 찾아와 털어놓은 고민이다.



   맞다. 아이들이 꿈이 없다. 아이들도 안다. 꿈이 없어 고민이라고 자주 하소연한다. 무작정 자격증 준비하고 토익 공부에 전념하는 아이들에 비하면 진지하게 장래를 고민하는 이 아이들이 기특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무슨 말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고민하다 겨우 해주는 말이 대략 다음과 같다.

꿈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니, 네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봐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고 탐색을 해봐라.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라.

그런데 사실은 모르겠다. 정말? 정말 그렇게 하면 꿈을 찾을 수 있는 걸까? 나조차 확신이 없다. 앞의 몇몇 장면들이 보여주듯 아이들이 꿈을 갖지 못한 것은 그들이 게을러서,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만도 아니니 말이다. 초중고 내내 꿈 꿀 짬도 없이 오로지 대학 하나만을 향해 몰아치는 교육을 받았으니 어찌 꿈이 없는 걸 아이들 탓만 하랴. 대학이라고 들어와 봐도 취업과 스펙 쌓기만 강조할 뿐 역시나 꿈 따위는 돌아볼 여유가 없다. 애당초 꿈이 있더라도 부모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 포기한 경우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세상이 인정하는 꿈도 정해져 있다. 버스 운전기사 같은 건 꿈으로 쳐주지도 않는 사회 아닌가. 게다가 계층의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세상의 틀은 더 촘촘해지기만 한다. 솔직히 물어보자. 이러한 세상에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꿈이 얼마나 있는 건지,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는지.


   상황이 이런데도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하는 건,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세상이 원하는 꿈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불안하다. 꿈도 없는 자신이 하찮고 쓸모없게만 여겨진다. 꿈을 가지라는 요구가 아이들을 루저로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끄럽게도 잘 모르겠다. 그저 질문을 바꿔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든다. 꿈이 뭐냐고 묻는 대신, 행복하냐고, 어떤 때 행복을 느끼느냐고 묻는 거다. 이 또한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행복을 느끼는 기술을 익힌다면 적어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훨씬 열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 또한 너무 낙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