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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기/42호(2013.02)

[느근괘안나 네트워크]웹진 월간내이름_손대선,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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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월간내이름



기획 : 웹진 월간내이름

글, 사진제공 : 손대선 sds1105@newsis.com

이윤정 miloyun@naver.com



월간손대선 창간호_콘돔이 어쨌길래


한동안 모텔을 부지런히 들락거린 적이 있다. 2~3만원을 웃도는 고비용을 구태여 감수하면서 그곳들을 찾았던 이유는 모텔하면 흔히 연상되는 이성과의 '성관계'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며 대부분 '숙박'을 위해서였다. 선천성 떠돌이로서 외박을 즐기던 내 기질 탓도 있겠지만(덧붙여 성인방송을 원없이 볼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다만) 
 
 모텔을 찾는 나에게는 몇가지 습관이 있다. 객실에 비치된 물건을 들고나오는 것인데, 그대로 두고 나오기 아까운 면도기나 칫솔 커피 따위를 주머니에 숨겨 나오는 게다.(전날밤 허영의 대가로 치른 술값을 생각하면 이런 행동은 뭐랄까, 궁상맞다고 해야할까?) 대담하게 헤어드라이나 삼퓨, 로션, 타올 등을 '슬쩍'하는 차원은 아니지만 이것도 남의 시선을 피해야만하는 일종의 '허가된' 도둑질이기에 은근히 스릴도 있다.
 

 잡스런 물건을 챙기다 보면 흔히 망설임의 순간을 맞는다. 그 순간의 제공자는 바로 '콘돔'이다. 숙박을 위해 들어온 사람에게 침대 맡에 놓여진, 그것도 꼭 두 개씩 짝을 맞춘 이 물건은 '잉여'도 아니요 '우수리'도 아니다. 단지. 모텔 속에서 벌어지는 일반적 행위(?)에 동참하지 하지 못한 채 홀로 숙취를 달래며 걸어나오는 청춘에 대한 '조롱'의 의미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이 콘돔을 주머니 가장 깊숙한 곳에 밀어둔다. '고도를 기다리듯' 가까운 장래에 결코 실현되지 않을 '그날'이 올 것이란 어리석은 기대를 품어서가 아니다. 기욤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사람은 꼭 희망이 있어 모든 일을 기획하는 것은 아니며, 꼭 성공을 할 수 있어 끈기있게 밀고나가는 것은 아니다"
 
 콘돔이 가장 주머니 안쪽에 있으면 즐거운 기분이 든다. 부대끼는 인파 속에서 저 홀로 '준비된' 자의 은밀한 만족이랄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도토리를 한주먹 머금은 다람쥐처럼 양주머니를 부풀려 모텔밖 거리에 나서는 내 모습이 우울하다. 콘돔은 그 우울함의 메아리가 채 끝나기 전에 대개 하수구나 길옆 쓰레기통에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버려진다.
 
 "콘돔이여 나는 너에게 안녕이란 말을 하고 싶구나"(우리 엿같은 젊은 날)
 
 문제는 항상 의도하지 않은 지점에서 발생한다. 모처럼 집에 들러 빨래감을 달라는 어머니에게 무심코 건넨 바지. 미처 버리지 못한 미련처럼 주머니 속에 웅크리고 있던 콘돔이, 그 이물스런 놈이 덜컥 빠져나온 것이다. 순간, 두 사람 사이는 진공상태가 되고 만다. 아무리 허물없는 모자지간이라지만, 더욱이 '성관계'가 당연한 장정한 아들이지만, 나는 갑자기 '성관계는 없다'는 라캉의 전언을 어머니에게 두서없이 확인시켜드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먼데이마일로 창간호_우리는 즐겁다, 힘든 일만 빼면


지난 1월 첫째주 휴일에 안산에 있는 이주민 센터에 갔다.
한글 반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해서다. 물론 수업 참가자들은 모르고 한글선생님의 의지였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20,30,40 대 결혼 이주민들이었다. 그들은 자녀가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해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소통의 어려움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20대 초반의 젊은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할 기회가 많아졌는데 이들은 밥먹고 자는 시간 말고는 일을 하기 때문에 한국어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해 소통이 어려웠다. 참가자 중에 한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
모처럼 쉬는날 더 부족한 잠을 채우기에도 바쁠텐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대견했다. 물론 미술 수업으로 바뀌었지만,


어쨌든 미술수업을 시작했다.
내가 한마디를 하면 통역이 한마디를 하고 또 각자 소곤대며 키득거리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모두 캄보디아 친구들이었는데... 휴대전화로 셀프사진을 찍고 그모습을 보면서 자기얼굴을 그렸다. 하도 제나라 말로 수다를 떨어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닮았다, 이상하다, 웃기다 라고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보니 그림과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에 자신없어 하던 친구들도 완성을 했다. 결혼이주민, 외국인 근로자들과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는 즐겁다.’이다. 힘든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우리는 한국에 사는게 즐겁다. 단 힘든 일만 빼면... 다문화가정의 자녀들과 한국인에게 그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와 첫 만남이라 수줍었는지 캄보디아인들의 특징인지, 어려서 그랬는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