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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인터뷰]    글 : 편집부

 

 공공 장소에서의 예술표현

왜?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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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궁금한 문화소식2]    정리 : 부산민예총 문화정책연구소

 

2012년 부산 문화예술지원사업

'종점'에서 시동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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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궁금한 문화소식1]  정리 : 김진해 boom3525@naver.com

떠들썩한 글빨 모음

 

 

 

 

 

 

 

블로그를 취재하여 전하던 기존 <문화소식>이 개편되었습니다. 부산민예총의 웹진 <떠들썩>에 실리고 있는 문화칼럼, 작품비평, 정책칼럼의 세 가지 글빨 꼭지 중에서 일부를 편집, 발췌하여 싣고, 참고할만한 자료들을 같이 곁들이는 방식입니다. 글빨의 원문을 보고 싶으면 아래 주소를 참고하세요.
http://talk.openart.or.kr/talk/main/main.html

 

청년문화의 개념 설정을 시도해보자 

 송교성 (생활기획공간 통 공동대표)


최근 공공기관들과 함께 부산문화현장의 담론으로서 청년문화를 말하며,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러한 때에 청년문화에 대한 개념 설정이 시도되어야 앞으로의 방향설정이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이므로 청년문화에 대한 의미를 사회학의 관점을 통하여 간략히 짚어보고자 한다.
문화에 대한 사회학적 담론에서 청년문화는 청년 대학생들로부터 비롯된 주류에서 비켜난 대안적인 문화적 활동을 의미하고 있으며, 일종의 문화운동 차원의 개념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청년문화에 대한 초기 담론의 출발이 왜곡되었다고 일부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베트남 반전운동으로 촉발된 기성세대의 냉전 정치 논리의 거부 속에서, 프랑스의 경우 알제리 내전과 같은 정치 갈등 속에서, 영국의 경우 계급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화적 표현으로 청년문화가 개념 지어지는 등 대체로 저항문화의 성격이 강조되고 있었으나, 한국의 경우 1970년대 청년문화에 대한 담론이 저항으로서 청년문화의 세계관이나 세대의식이 아닌 소비 형태에 국한되었었다는 것으로 특정 시기의, 특정 세대로서 대학생들의 문화로 개념 지어진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김민규(2001)는 민중문화운동으로부터 나타나는 저항의 문화가 90년대 이후 개인의 사회적 실존에 대한 자각을 기반으로 하는 비주류, 대안, 언더그라운드, 하위, 반문화 등과 관련지어 문화 운동적 의미로서 청년문화의 개념이 재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적 삶의 폐해가 심화되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극복으로서 대안문화운동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최근 부산 지역에서 언급되고 있는 청년문화의 핵심적 담론들에는 실험적인 예술형태와 하위 문화적 형태, 사회적 실천과 문화적 권리의 회복 등 다양한 개념과 문화장르가 섞여 있으며, 서울을 탈피한 지역씬(local scene)의 형성과 같은 지역성도 내포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지자체의 ‘문화도시’. ‘창조도시’ 개념도 혼종적인 양상을 보이며 섞여 있기에 명확히 개념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흐름과 추이를 보건대,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며 실천적인 문화적 가치와 태도를 공유하는 문화적 공동체 정도로 개념 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자료-2 네이버백과사전

미국의 청년문화 : 히피
미국의 1960~1970년대 상황을 살펴보면 베트남 전쟁 발발, 존 F. 케네디의 암살, 맬컴 엑스와 마틴 루터 킹 암살,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등의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이때 미국의 풍경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이는 1950년대에 완성된 현대 대중사회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샌프란시스코, LA 등지 청년층에서부터 시작되어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 등을 주장하며 탈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히피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는 우드스톡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록 페스티발의 시초였으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모든 뮤지션들의 대거 출연과 40만 명이 넘은 관객들이 1969년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동안 지속된 60년대 젊음이들의 저항의식의 표현이었다.

- 테이킹 우드스톡 Taking Woodstock
우드스톡을 개최한 4인방도 아니고 장소를 제공해 준 농장주도 아니고 참여한 쟁쟁한 뮤지션은 당연히 아닌 저자 엘리엇 타이버는 성적소수자로 망해가는 집안의 맏아들로 두 개의 삶을 살다 자신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람의 일생이 담긴 회고담
책뿐만이 아니라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 감독이 만든 영화도 있으니 취향에 맞게 우드스톡과 히피문화를 느껴보시길.

베트남전쟁반대 시위 꽃과 소녀, 미국 워싱턴, 1967년 10월 21일
에펠탑의 페인트공, 마크리부展 / 20120526-0805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프랑스의 청년문화 : 68년 5월 혁명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우리는 굶어 죽을 가능성이 있는 세계일지라도 권태로움으로 죽을 가능성이 있는 세계와는 바꾸지 않겠다.’
처음에는 파리의 몇몇 대학교와 고등학교, 대학 행정부와 경찰에 대한 학생 봉기로 시작했다. 드골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저항을 진압하려고 했으나 이는 운동의 열기만 점화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총 400만 명이 파업과 공장 점거, 대규모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이들은 정부가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 소외, EC(유럽공동체) 체제하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


- 평범한 연인 Les Amants Reguliers
1968년 5월 혁명 이후, 혼란스러운 혁명을 겪었지만, 일상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나날 속 사랑 이야기.
프랑스 중견 감독 필립 가렐과 그의 아들 루이스 가렐이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68혁명의 현장을 직접 기록했던 필름을 분실한 가렐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젊은이들의 모습을 묘사할 때 촬영 필름과 개인의 기억을 최대한 영화에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는 없지만, 68년을 살았던 젊은이들과 시대의 분위기는 감독의 경험 때문에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프랑스 60년대를 다룬 또 다른 영화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에 대한 필립 가렐의 강한 이의제기는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부산 청년문화의 현재

장현정 (부산노리단 공동대표)

 

6월 27일, 장전동 아지트에서 대안문화행동 ‘재미난복수’ 주최로 열린 ‘서브컬처 네트워크’라는 제목의 포럼에서 사회를 봤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의 청년문화 관련 8개 단체 대표들이 모인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제안하는 자리였다.
이날 포럼에서 느낀 게 많았다. 핵심은 한국의 청년문화가 이미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했고 앞으로는 더이상 비주류나 마이너의 감성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의 문화다양성과 대안적 가치를 위해 상당한 역할을 할 것 같다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부산은 90년대 후반 한국 청년문화에 대한 담론이 ‘인디 indie’라는 화두와 ‘홍대앞’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몽땅 소급되면서 오히려 침체기를 겪고 소외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청년문화라고 하면 떠올랐던 거친 발악이나 우울함 같은 부정적 정조나 부산 문화판 어딜 가나 흔히 마주칠 수 있었던, ‘별 수 없다’라고 하는 패배주의보다는 좀 더 다듬어진 목소리로 제 할 말을 하고 함께 연대하여 실제로 무언가를 바꿔보자는 쪽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정조가 지배적인 것 같다. 물론 여전히 힘든 이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또 이것이 철저히 나만의 주관적 느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적극성과 대책 없는 낙관성이 아니라면 도대체 지역에서 청년문화가 어떻게 지금까지 지속 가능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작년 부산문화재단의 첫 공공예술프로젝트였던 ‘회춘프로젝트’는 청년문화를 중심으로 공공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전국 평가에서 1위를 했고 ‘청년문화수도’ 부산을 표방하며 올여름 광안리 일원에서 펼쳐질 ‘청년문화수도프로젝트’도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청년문화가 ‘지역’과 만나고 있는 접점이 넓어지고 있다. 지역이란 화두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서 이 한계를 극복해내고 있다. 이 흐름이 비등점을 지나 실제적 활력으로 이어지려면 지금부터라도 더욱 긴 안목과 섬세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① 자료-1
부산청년문화수도프로젝트FESTA사업에 대한 업무협약
부산문화재단의 문화예술지원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큰 지역문화예술기획지원사업에 최종선정
부산지역 청년문화단체 대부분이 참여하고 지원하는 국?시비 총 1억 9천만 원 규모의 사업
부산문화재단 : 행사에 필요한 사업비 교부와 홍보활동
수영구청 : 사업 추진시 필요한 행정지원, 행사 장소, 홍보지원 등을 지원
광안리사람들 : 청년문화네트워크 총괄사업을 수행
- 학술 : 청년문화 아카데미
(문화기획인력이 부족한 지역 현실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문화정책연구와 조사를 하는 학술단체로 발전시킬 계획)
- 축제 : 사운드웨이브 페스티벌
(8월 일렉트로닉, 힙합, 록, 월드 뮤직을 다양한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신개념 공연)
- 거리예술 : 그래피티 부산, 청춘유랑단
(부산 곳곳을 순회하며 소통을 추구하는 새로운 도심형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차량을 이용한 관객 참여형 퍼레이드 공연)

청년문화프로젝트 Youth & History 역사 청춘을 만나다

부산시 공모사업에 선정돼 5천만 원을 지원받아 부산자연예술인협회가 주도
동아대 부민캠퍼스 일대
- 인문학 토크 콘서트 : 서구 부민동 '에피소드 인 커피'
- 거리공연 : 매주 1회 예정으로 비보이 DJ 파티 등
- 부민 청년예술제 :10월 지역 인디밴드와 퍼포먼스 아티스트 공연, 프리 마켓 행사
- 올해 말에는 부민동 일대를 배경으로 한 문화잡지도 만들 계획

㈔부산대학문화연합회를 발족
경성대 동명대 부경대 부산예술대 부산외국어대 등 5개 대학 총학생회가 모여 남구 지역을 부산의 홍대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문화행사와 공연 등 다채로운 기획 중
- 벽화거리조성 : KT대연점 건물 뒤쪽 50m의 낡고 삭막하던 시멘트벽에 화사한 벽화작업
- 대학로 거리 공연 & 글로벌 중고마켓 :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부경대 앞 가로수 길
(학생 복지 향상과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대학로 가맹 업소 100여 곳에서 할인받을 수 있는 'yo 카드'라는 특별 할인카드를 제작하여 최근 5개 대학 학생 6만 명에게 배부)

 

 

예술단체 망가뜨리는 법?

안태호 (부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예술단체 망가뜨리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뭔지 아세요? 돈을 넘치게 주는 거예요. 몇 년 동안 공연예술과 관련한 지원금이 쏟아졌거든요. 그러니까 대표 이하 기획자, 연출, 스텝, 배우 등이 갖춰진 극단들이 세포분열을 해서 지원금을 받아가요. 서로 그렇게 쪼개지기를 반복하다 지원금이 끊어지고 나니, 다들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며칠 전, 광역지자체 문화재단의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모르고 있던 이야기도 아니지만, 입맛이 쓰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말은 예술지원의 대원칙으로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위의 사례를 보면 어떤가? ‘묻지 마 지원’은 지원을 안 하느니만 못한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은 예술가와 단체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준다는 말이지, 마구잡이 지원을 한다거나 지원 이후에 아예 신경을 꺼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닐 게다. 정책담당자들은 예산 지원에 있어 신중한 디자인과 함께 정책으로 인한 부수적인 효과들을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예술가와 단체를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촛불시위 불참 확인서 요구에 지원금 거부로 맞선 한국작가회의의 ‘한정판 결기’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원로 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전달한 자금 덕에 가능했다. 돌이켜 보건대, 자기역량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모든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협동조합의 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협동조합은 결국 일부 냉소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폐쇄적인 집단이익공동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익공동체가 건강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을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에 있다.

 

 

부산문화재단과 예술인 

이상우 (극단 해풍)

예술인들이 문화재단에 전화문의를 하는 경우, 지원사업이 거의 대부분인데요. 이 지원사업에 대해 문의를 하면 종종 ‘문화예술위원회 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침에 따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표현을 볼 수 있었는데, 별일도 아닌 일을 예술가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규칙, 그 주된 부분들에 있어서 ‘중앙방침’을 따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예로 정산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원금에 대한 깐깐한 정산제도야 ‘예술가’의 입장에서 죽도록 어렵지만, 어찌하지 못할 부분이라 열심히 따라가야 된다는 거 인정합니다. 문제는 자체자금 10%도 정산을 하라는 건데요, 하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근데 이게 기분 나쁘다는 거죠. 100% 다 정산해도 됩니다. 굳이 예술가들을 못 믿겠다는 의도를 겨우 10% 정도로 표현하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산은 부채와 자본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산으로 많은 부채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연하면서 늘어가는 빚은 정산대상에 포함이 안 되는 건가요? 자체자금 정산분에 배우에 대한 미지급 출연료의 부채분을 인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상업을 고등학교 시절 잠시 배운 기억이 있는데, 예술인들을 위해 약속어음작성법을 부산 문화재단에서 교육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부산의 예술인들을 위한 제도는 당연히 부산문화재단이 제일 먼저 실행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서울특별시가 가장 먼저 시행한 제도가 아니므로.

 

② 자료-2

조각가 구본주
2003년 9월 교통사고로 숨진 구본주(당시 37세) 씨에 대한 보상액 산정기준인 정년 범위와 직종 성격을 놓고, 유족과 삼성화재 손해배상 소송은 예술가의 권리에 대한 보호가 현실에서는 한갓 선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성화재는 조각가가 청동을 주로 다루는 육체노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벽돌을 쌓는 일용 조적공와 같은 정년인 60세로 산정하고 경력을 4년 정도로 책정했다. 이는 수많은 전시와 수상경력 등 촉망받던 작가의 이력이 철저히 외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술가 A를 증명해 줄 사람 어디 있나요?

배은희 (함께가는예술인 편집위원)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자격증 따위 없다. 기금사업이나 위탁사업이 아니라면, 주위 관계에 의해 어떤 때는 두둑한 출연료나 작업비를 받지만, 어떤 때는 밥 한 그릇으로 때우며 창작연행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수입이 일정하지도 않고, 활동을 증명할 수도 없지만 알 만한 사람이면 A가 뭐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안다. 그런데 예술인인지 아닌지, 전문 예술인인지 아마추어 예술인인지를 서류로 증명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바로 예술인복지법 때문이다.
작년 어느 기관이 진행한 좌담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담당자가 시행규칙 초안을 2012년 4월까지 마련, 7월까지 예술계의 의견 수렴과 법률 자문을 거쳐 8월에 부처 간 협의, 10월에 국무회의 상정, 산재보험 적용과 관련해서는 고용부와 협력하여 2월까지 예술인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그 후, 고용부에서 제도설계, 산재보험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며, 복지재단도 그 기간 중에 설립을 추진하여 2012년 11월에 법이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짧은 생각이지만 예술인복지법에서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들을 짚어본다.
먼저 이 논의를 추진할 수 있는 지역의 예술인 연대체가 필요하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예술인조합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는 홍대앞 두리반 문제를 계기로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있고, 올해 초부터 ‘예술인 소셜 유니온’, ‘뮤지션 유니온’ 설립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부산에서는 당장 조합이 아니더라도 느슨한 형태의 연대체라도 마련되어 논의가 시작될 수 있으면 한다.

다음으로 부산문화재단이 지역예술인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예술인 복지법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문화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닥 많지 않다. 그렇다면 먼저 지역 예술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적극적으로 법시행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예술인들의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제도의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정적 시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의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복잡하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일들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표준계약서를 보급하고, 경력 증명 조치를 마련할 예정이라는데, 예술가 스스로가 가감없이 창작연행활동과 수입을 투명하게 처리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핵심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예술가의 지위는 예술가 스스로가 규정하고 증명해야 하며, 그것은 예술가가 누릴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라는 것이다.

 

② 자료-1

캐나다 예술인 지위법 사례연구 - 황진수
예술인복지지원제도 관련 해외사례 검토와 시사점 - 김문길

 

-캐나다 예술인 지위법
자문기구 ‘예술인 지위에 관한 캐나다 위원회' 발족
: 정보수집, 자문, 그리고 예술가 연합체와의 연계활동을 통해 전문적인 예술가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조정기구 ‘예술가와 제작자 간의 전문적인 관계에 관한 특별재판소’ 설립
: 문화영역에서 고용된 예술가와 제작자 간의 노동관계를 조정한다. 그리고 경과기간을 두며 재판소의 활동보고서를 노동부장관을 통해 의회에 보고하고 7년 단위로 상기 법안을 재검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 벨기에 사회보장급여를 임금근로자에서 자영 예술인으로까지 확대
1969년 11월 28일 국왕칙령(Royal Decree)에 따라 모든 무대공연 예술인은 임금근로자와 같은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02년 12월 24일 재정법으로 사회보장을 위한 예술가의 새로운 지위를 확정하여 예술가로 하여금 임금근로자의 지위와 자영자의 지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네덜란드 예술인을 위한 보충적 소득을 지원
1999년 1월 1일 작가, 공연예술인 등과 같은 예술인들의 낮은 소득수준에 대한 특별법.
10년의 기간 동안 최대 4년간 보충소득을 얻을 기회를 부여한다. 수급 여부는 특별예술인기금에서 결정하되 예술인들은 자신들의 예술활동과 낮은 소득소준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 독일 자영 예술인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1970년대 초반 연방회의에서 실시한 전문 예술인 대규모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여 1983년 사회보험제도가 탄생하었다.
2005년 1월 145,000명의 예술인들이 가입되어 있으며 가입조건은 자영자일 것, 예술작업을 통한 연간 3,900유로의 최저소득을 얻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보험료는 예술활동에 따라 얻은 과세소득의 약 35% 수준으로 예술가, 연방정부, 기업이 분담한다.
건강보험, 노령연금, 요양보호 서비스를 제공하며 실업급여를 위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 프랑스 공연예술비정규직 실업급여제도
공연예술비정규직을 대상으로 10개월 동안 최소 507시간을 일하면 이후 일자리를 잃더라도 최대 8개월 동안 하루에 최저 25.90유로(2006년 기준)를 지급한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은 ‘예술인의 집’(시각예술)과 ‘작가사회보장협회’(작가)를 통해 정규직과 같은 조건의 지위를 누린다.

 

 

지켜내야 할 것들!!

박배일 (독립영화감독)

 

‘박.배.일.영.화.제’. - 박배일이 보고 싶은 영화를 박배일이 선정하고, 박배일 시간에 맞춰 스케줄을 짜고, 관객은 단 한 사람 박배일인 영화제.
지난 토요일 아침부터 4편의 극영화와 5편의 다큐멘터리로 프로그래밍 된 영화제 일정을 소화했다. 3일 동안 총 9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영화제의 일정치곤 많은 편수는 아니지만 상영관이 부산 전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9편의 영화를 소화하기도 버거웠다. ‘박배일 영화제’의 상영관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집(덕천동), 오지필름 사무실(서면), 국도가람 예술관(대연동), 아트씨어터 씨앤씨(남포동)로 부산의 끝과 끝을
연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서 영화를 봐야 하는 귀찮음을 마다 하지 않는 이유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관객수가 100만이 넘는 영화를 보며 ‘이걸 왜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보며 재미있어할까? 난 대중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구나!’ 하며 좌절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9편의 영화를 굳이 분류하자면 ‘독립영화’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엔 상영이 되지 않는 영화다. 만약 부산이 아닌 타지역에서 ‘박배일 영화제’를 개최했다면 서울이나 부산으로 오는 기차표를 영화표보다 먼저 발권해야 할 것이다. 3일 동안 난 독립영화를 보며 작품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한가로이 ‘박배일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을 때, 오지필름의 문창현 대표는 다큐멘터리 시사회를 위해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편집 중이었다. 한숨을 푹푹 쉬며 머리를 쥐어뜯는 문대표의 모습을 보며 혼자 놀고 있는 것 같아 눈치도 보였지만, 더 크게 신경 쓰였던 건 작품을 완성해서 보여 줄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독립다큐멘터리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가장 흔한 방법은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건데 작품 편수가 제한되어 있어 연평균 2000편이 넘는 작품을 다 상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 외엔 공동체 상영이나 드물지만 개봉을 하는 것인데, 단편 다큐멘터리로 제작 중인 문 대표 영화의 경우 상상도 할 수 없다.

오지필름이 오랫동안 하고 싶은 독립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독립영화를 보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관객들과 내가 만든 영화로 소통하는 경험은 힘든 현실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사람들과의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 독립영화 전용관은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2년 전 우리는 기본조건을 허무하게 잃었다.

 

나만의 영화제 제안 (초보프로그래밍의 예)

-추격자나 미스 홍당무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감독들의 단편이 알음알음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30분 내외의 작품으로 재기 발랄한 어린이였을 감독들
나홍진<한>
김경미<잘돼가? 무엇이든>
-독립영화계도 독자적인 계층을 형성하여 작업하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 않을 뿐. 켜켜이 쌓인 독립영화계의 별이자 독립영화계에서는 모를 수 없는 감독들
윤성호 <우익청년 윤성호><은하해방전선>
김종관 <폴라로이트 작동법><낙원>
-될 성싶은 나무인지 떡잎을 확인할 수 있는 감독.
한 소녀 박보영이 외딴집에서 늑대소년 송중기를 발견한 뒤 사랑의 감정을 키우게 되는 이야기로 장편영화 데뷔를 앞둔 엄태화 감독의 <숲>

 

 

 

 

관객이 게으른 것이다?!

정진아(국도예술관 프로그래머)

 

<말하는 건축가>를 3월 19일부터 5월 중순까지 상영했다. 예술영화전용관이기에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기본 14일 2주를 상영기준으로 하고 있기에 상당히 오래 상영한 작품이다. 장기상영을 했던 건 정재은 감독님과의 GV에서 약속했던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한국독립영화에 한해서는 꼭 관객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는 연장의 연장을 하고 나름의 관객 수 목표를 세워서 상영에 욕심을 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뜻과 상관없이 누군가가 이 영화를 오늘 알게 되었다면 혹 알고는 있었지만 못 본 누군가가 있다면 상영기간의 길고 짧음은 “그 누군가”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말하는 건축가>는 개봉 안 한 영화와 다를 바가 없다.
관객이 게으른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상영관과 개봉하는 영화가 많아졌기에 상영기간은 짧고 빠르게 지나가고 이 빠름을 맞추기 위해 관객은 보다보다 지쳐 버렸는지도 모른다.

단관 극장들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0여 년 전 이야기지만 너무나 까마득한 옛날처럼 예전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때는 ‘무엇을 볼 것’인가였다면 지금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본다’는 의미는 같아도 그 주체는 영화가 아닐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 버렸다는 것이다.
취미는 영화감상입니다. 요즘 취미로 영화감상이라는 이야기하는 사람은 잘 없다. 그건 모두가 다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취미였다고 말했던 그때처럼 영화를 고르고 골라 나의 시간을 쪼개어 투자를 하고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했던 그때의 우리는 이젠 남들과 특별나게 다르지 않게 보인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장기상영을 꿈꾸다. 한 달 동안 몇 편의 영화들이 개봉을 하는지를 모르는 정도인데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볼 게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볼 게 없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게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일 것이다.
자랑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고 홍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한국장편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장기상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2년 6월 23일이면 딱 1년이 되는 이 영화. 단관극장의 시절처럼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와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라는 것의 모든 의미를 담아 1년을 견뎠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오래오래 극장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관객이 보아주는 것. ‘영화를 본다‘는 의미에 조금 더 긴 호흡과 음미를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극장에 갈 때는 조금 느림보가 되었으면 한다.

 

③ 자료-1
여름 휴가지 제안 (전국예술영화전용관 탐방)
웹진 NEXTplus의 A+Schedule에서 2주간의 전국상영작을 확인할 수 있다.
http://www.artpluscn.or.kr/NextPlus_webzine/65/Nex
-부산
롯데시네마 아르떼 센텀시티 (8관) http://www.lottecinema.co.kr
아트씨어터 씨앤씨 http://cafe.naver.com/cnctheater
국도&가람예술관 http://cafe.naver.com/gukdo
-서울
CGV 무비꼴라쥬 구로 (10관) http://www.cgv.co.kr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http://www.cinematheque.seoul.kr
허리우드 클래식 http://www.bravosilver.org/
CGV 무비꼴라쥬 압구정 (4관) http://www.cgv.co.kr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http://www.spongehouse.com
KT&G 상상마당 시네마 http://www.sangsangmadang.com
씨네코드 선재 http://cafe.naver.com/artsonjearthall
KU시네마테크 http://www.kucine.kr/
KU시네마트랩 http://cafe.naver.com/kucinematrap
아트하우스 모모 http://www.cineart.co.kr
-경기?인천
CGV 무비꼴라쥬 오리 (8관) http://www.cgv.co.kr
CGV 인천 무비꼴라쥬 (1관) http://www.cgv.co.kr/
-강릉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http://theque.tistory.com
-대전
대전아트시네마 http://cafe.naver.com/artcinema.cafe
-광주
광주극장 http://cafe.naver.com/cinemagwangju.cafe
G시네마 http://cafe.naver.com/gcinema/
-전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http://cafe.daum.net/jifftheque/
-대구
동성아트홀 http://cafe.daum.net/dsartholic
-경북
안동 중앙시네마 http://cafe.naver.com/joongangcinema
-경남
거제아트시네마 http://cafe.naver.com/geojeart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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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카드]  기획 : 신동욱 woogy0213@hanmail.net

 

꿈으로, 예술로 通하고 싶은 부산 젊은이들의 모임

부산청년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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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청년예술단 대표 홍지원(부산대학교 1학년)양은 “중학교 때 첼로를 잠깐 했었다. 그러다 문득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공연을 직접 기획한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단체의 설립 동기를 설명했다. 예술감독을 맡은 권나은(계명대학교 1학년)양과 함께 지난 5월 1일에 설립한 부산청년예술단.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갓 조직을 갖춘 단계이다.

 

부산의 젊은 예술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부산청년예술단은 공연팀과 기획부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 의뢰가 들어오면 예술가와 기획팀, 그리고 공연팀이 함께 하나의 행사를 만들어간다고 한다. 여기서 부산청년예술단만의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다. 기존 공연들은 미리 짜여있는 공연 형식에 예술가들이 참가하는 형식이 많다. 참가한 예술가들이 기획된 틀에 맞추어 재능을 보여주는 보편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주어진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예술가들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부산청년예술단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이런 제약을 넘어설 가능성이다. 기획에서부터 진행 및 공연까지 모두 함께 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한계보다 표현력이 좋아지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부산청년예술단이 기존 공연 체제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홍지원 양은 “관습화된 행사 준비 체제들은 나름의 노하우와 기술이 축적된 것이다. 가장 좋은 체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공연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두 개가 서로 다른 것으로, 부산청년예술단만의 색깔로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차이를 분명히 했다. 갑이 을의 대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갑과 을이 서로 다른 것으로 공존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기존 공연 체제의 대안이길 스스로 거부하니, 엄연히 말해 기성문화의 ‘히든카드’라 할 수는 없다. 이쯤에서 홍지원 양은 부산청년예술단의 좌우명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통할 통(通)자를 교묘히 ‘꿈’처럼 보이게끔 디자인한 로고도 슬쩍 보여주었다. 대안을 기대했던 필자에게 홍지원 양이 보여준 것은 공연 기획서였다. 들을 수 없었던 ‘대안’에 대한 대안으로, 그들이 먹고산다는 꿈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었다.

 

조직이 점차 안정되자 부산청년예술단이 슬슬 일을 준비하고 있다. 다름 아닌 창단 공연이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이 공연은 장르가 다양하다. 1부에 예정된 공연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라면, 2부엔 힙합 댄스와 팝 핀 댄스 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다. 공연의 주제는 ‘청년 예술가들이 풀어가는 부산 이야기’이다. 왜 하필 부산을 표현하느냐는 질문엔 ‘부산청년예술단’이니 당연하다고 답했다. “아이들 장기자랑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우려하면서도 홍보 부탁을 빠뜨리지 않았다. 8월 22일 늦은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부산대학교 10?16 기념관에서 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말한 부산청년예술단만의 색깔이 바로 드러날 수는 없겠지만, 부산청년예술단이 먹고 산다는 꿈이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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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보내는 리듬]     곡, 글 : 박기태 _ kiraeda@naver.com

 

바다가 보이는 종점

 

                            

 

 

 

96번 버스 종점에서는 바다가 보인다. 종점을 나서면 바로 다대포 해변이 나오는 것이다. 죽이는 종점이지. 96번뿐만이 아니라 내가 살았던 다대동 쪽으로 가는 버스들은 다 이 종점을 향한다. 그래서 다대, 장림에 사는 사람들이 늦은 밤, 술에 취해 내릴 정거장을 놓치고 비몽사몽 간에 몸을 일으키면 이 바다가 보이는 종점에 내리게 되어있다.
대학 시절 한창 술 마시고 다닐 때 심심찮게 이 종점에서 잠을 깨곤 했었는데, 씨발 씨발 자책하며 종점을 나설 때 나타나는 밤바다에 그나마 마음이 풀어지곤 했다.
당시만 해도 다대포 해수욕장은 덜 개발 되어 있어 광안리나 해운대의 밤처럼 북적거리지도 않았으니 조용히 걸을만했었다. 담배 꼬나물고 혼자 멋 부리며.
지금은 뭐 아파트도 엄청 생기고 술집도 많이 생기고 아시아에서 제일 큰 분수까지 있다 하니 늦은 밤이라고 해서 혼자 밤바다를 즐길 분위기는 아니겠다. 어차피 뭐 술 취해 종점까지 간다 해도 택시 탈 것이고… ㅎㅎ

사실 다대포 백사장은 전국에서 제일 넓은 백사장이라 저 멀리에 파도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고 어두운 밤이라 바다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바다 냄새와 기운을 느꼈을까? 어쩌면 그저 여기에 바다가 있다는 나의 인식일 뿐이기도 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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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 인터뷰] 

자기를 찾는 것과 사회 속에서 나를 찾는 것

채희완 민족미학연구소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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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2년 7월 7일 오후 3시  /장소 : 부산민족미학연구소  /참석 : 배인석(인터뷰어), 조동흠(글 정리), 이장수(사진)

 

 

민족미학연구소는 1993년도에 시민강좌로부터 시작했어요. 민예풍, 풍수, 연행분야, 미술, 음악 등의 교육프로그램이 당시에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줬고, 그것이 기틀이 되어서 그 당시의 현실적인 문제를 문화와 예술과 연관해서 풀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의가 있었습니다. 학문, 예술작업, 사회운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관심을 둔 사람들이 모여서 학술활동, 문예사업, 시민교육사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사단법인으로 공식 등록되었습니다. 미적 시각이 오늘날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에 대한 이론체계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에 학술적인 면이 중심이 된 한국민족미학회를 발족하였습니다.

 

 

전통사회의 민족적 미의식, 감수성 등을 이야기하면 오늘날 젊은이들의 정서와 떨어져 있다고 보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나 촛불집회의 열기는 우리 민족 특유의 신명이나 열정을 재발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90년대 2000년대를 지나온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은 자기 삶을 사회의 변화와 연관시키거나 실천적으로 뛴 적이 없어서 앞으로 어려운 처지를 많이 당할 것 같아요. 사회가 점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퇴행적이고 편파적인, 억압적인 구조로 갈수록 거기에 대해 대항하지 못하고 거꾸러지거나 회피하거나 굴복하기 쉬울 것 같아서 굉장히 안타깝고 우려되는 바가 있어요.
자기를 찾는 것과 사회 속에서 나를 찾는 것, 그야말로 삶의 전체상 속에서 생명에너지의 유통과정 속에서 내가 사는 것, 이런 것에 대해서 조금은 실천적인 습득, 몸을 통한 습득이 필요하고, 몰두하고 매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1세기는 문화와 상상력과 감수성과 영감의 시대라고 이야기해요. 가상이 현실화되는 시대라고도 하고. 하지만 실제 삶의 방식에서는 자기 연출의 시대예요. 전에는 흠모하거나 쫓아가기 마련인데 지금은 자기가 실현해 버리잖아요. 자기가 물품을 선택하고, 아니면 폐기처분을 하고. 자기의 주관과 자기의 실천적 결단이 자기화되어 있는 근사한 시대에 사는 것 같아요. 봉건사회는 나라고 하는 것이 도저히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근세도 계몽의 틀 속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관이 장악했던 시기인데, 현대로 와서는 개인의 문제가 개인으로 국한되면서도 좋은 점으로서는 자기가 자기를 판단할 수 있죠. 그렇지 않게 되어 있는 경우들이 그 못지않게 많다는 거죠.

 

20대에 취직들이 안 되가지고 절망한다기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계발이 안 되게 되어 있는 형편에 놓여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거죠. 그런 점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 자기 결단뿐 아니라 사회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라고 생각해요. 8, 90년대 사회운동하고는 또 다른, 생기발랄한, 자기 거를 자기가 스스로 챙기고 누리는 속에서의 사회적 실현, 이것을 같이 생각하고 몸으로 실천해주는 방식으로 문화적인 것을 활용하고, 찾아내 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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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삼간일지라도]   글, 사진 : 홍순연 amudo@hotmail.com

 

 바다를 추억하는 송도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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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는 어디로 휴가를 갈지 고민한다. 산으로? 바다로? 아님 국외로? 이런 고민 탓에 어떤 때보다 설레게 되고, 그래서 인터넷 검색창을 수시로 두드리게 되는 시기가 바로 여름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부산에 산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부산 사람들에게 바다는 정말 도무지 갈 곳이 없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장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은 생각보다 부산의 바다에 잘 가지 않는다.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에 몸을 담그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흔해서 싫증나기 때문일까? 부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옛날보다 더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옆자리 동료가 인터넷에서 동해 바다를 검색하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듯 여겨진다.

 

부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부산의 해수욕장과 여름은 요즘 어떤 모습일까?
해운대 해수욕장은 외지 피서객들의 상징이 되었고, 광안리 해수욕장은 술집과 카페촌으로 북적이고, 송정해수욕장은 그나마 대학교 엠티 장소로 잠깐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실 해수욕장은 해수욕을 하도록 개설된 장소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산의 해수욕장은 해수욕을 즐기는 장소라기보다는 유희의 장소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해수욕장인 송도 해수욕장도 마찬가지이다.


송도 해수욕장은 1913년 거북섬에 수정이라는 휴게소가 설치되면서 바다 기슭에 있는 모래사장을 해수욕으로 개발하였다. 지리적으로 볼 때 당시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 서구와 가까이 붙어있어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 초까지 부산시민이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는 유희의 장소였으며, 당시에는 여관, 해수탕, 탈의실, 귀중품 보관소, 구급시설, 다이빙시설까지 갖춰져 해수욕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공되었다. 특히 남포동에서 해수욕장까지 도선이 1시간마다 운행하였고, 당시 부산시 인구가 약 30만 명일 때 송도해수욕장의 이용객이 연간 6만 명 정도였으니, 송도 해수욕장은

지금의 해운대가 부럽지 않은 인기 해수욕장이었다.
지금의 해운대는 1927년 해운대온천합자회사가 설립되어 해수욕과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1963년 이후에야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으니, 당시만 해도 부산 시민이 즐길 수 있는 해수욕장은 송도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송도를 찾는 이들은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가지 않는다. 겨우 회 한 접시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이 고작이다. 송도는 이제 밤에 현란하게 비추는 모텔 간판들이 즐비한 곳으로 바뀌어버렸다. 이제는 바닷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첨벙거리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나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인파는 찾아볼 수 없다. 
부산 사람들이 해수욕장에 가지 않는 이유가 과연 나빠진 수질 때문일까? 그렇다면 수질을 개선하면 부산의 해수욕장이 과거에 가졌던 이름값을 하게 되는 것일까?

작년 2월 싱가포르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사실 싱가포르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해수욕장이 없다. 산토사라는 테마공원형 인공섬을 만들고, 인공모래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해변을 만든다. 하지만 그 모래사장에서 해수욕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유니버설 놀이공원에서 잠깐 쉬면서 공짜 관람차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오는 정도의 코스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기는 해변이라고 적혀 있다.
부산이 여름을 상징하는 도시임에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수욕장이 점점 사라진다면, 머지않아 아이들이 인공해변에서 놀아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옛날에 엄마아빠가 즐겼던 해수욕장의 추억을 이야기한다면 멋쩍지 않을까?

해수욕장은 바라보기만 하는 장소가 아니다. 해수욕장은 자연 그대로의 주변 풍광과 함께 넘실대는 바닷물결을 즐기는 장소이고, 그 바닷속에 빠져 물장구도 치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무더위 속에서도 다들 바다로 가는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해수욕장조차 사실상 바라만 보아야 하는 그림의 떡으로만 존재한다면 부산은 여름의 도시, 바다의 도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바다를 추억하는 도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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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리다]   글 : 박후기 emptyhole@hanmail.net

 

먹거나 먹히거나 여의도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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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먹어댄다. 주야장천 먹고 싸고 삼키고 내뱉는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 흘러나오고, 틈만 보이면 어김없이 반칙을 한다. 상대의 귀를 물어뜯거나 돌아선 자의 등을 치는 일은 오히려 사소한 일, 밤늦도록 씹고 마시고 주먹을 날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심야식당을 찾아 다시 새벽까지 피 묻은 잔을 돌리며 술을 마신다.
  오늘 밤은 언제나 파이널 라운드. 있는 힘 다해 적금 붓고 보험 들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 어차피 한방인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그들은 점잖게 말한다.
  눈먼 관객들은 피 터지는 그들만의 리그를 보며 끝없이 열광할 뿐, 눈앞에서 벌어지는 반칙과 그 반칙을 가려주는 심판의 검은 손을 눈치채지 못한다.

 

 

  여의도 정치판만 보면 끝이라는 생각, 종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텅 빈 버스는 누구를 위하여 벨을 울리나?
  밥 먹고 사는 일을 핑계로 투표 안 하고 잠깐 졸았더니, 어느새 종점이더군. 더군다나 막차라니…….
  벤저민 버튼의 시계만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니었어. 여의도 정치 종점 벽에 걸린 주발(周鉢 : 놋쇠로 만든 밥그릇) 시계 역시 역사를,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려놓고 있는 거라.
  배드민턴 치자고 꼬셔. 커피 한 잔 하자고 불러. 동네 한 번 걷자고 꼬셔. 넌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라고 버스커 버스커가 노래 불렀잖아.
  선거 때만 되면 살살 꾄다는 걸 알면서도 국민은 한 번도 그래 안 된다는 말이 없었지…….
  종점이라, 그래 2012년 12월 19일이면 우린 종점에 서게 될 거야. 이번 선거야말로 막차를 타거나 첫차를 타거나 둘 중 하나를 결정하게 될 테니까.
  불 꺼진 막차에서 쫓겨 내려와 또다시 캄캄한 절망의 어둠 속을 5년 동안 걸어갈 것이냐, 아니면 어둠을 뚫고 달려온 희망버스 첫차를 타고 내일을 향해 달려갈 것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인데, 정말 문제인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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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사이 사람 사이]   글 : 윤지영 windnamu@hanmail.net   일러스트 : 이희은 eunilust@naver.com

 

아버지의 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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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교육계에 몸담았다가 퇴직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아버지의 노후 계획은 어긋나버렸다. 손주 유학 보내주는 할아버지가 되기는커녕,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겠다는 소박한 다짐마저 지키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의 자존심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손상된 자존심은 가족들을 향한 역정으로 표출되었다. 아버지가 가장 괴로워했던 것은 어머니를 끝내 호강시켜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장남에게 시집와서 남편 공부시키고 시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당신과 당신 자식들은 뒷전이어야 했던 아내의 세월을 보란 듯 보상하겠다던 큰소리가 그야말로 흰소리로 전락해버리려는 참이었다.
"나중에 호강시켜주려고 했지. 그런데, 나중은 없더라." 곱디고운 소녀에서 골골 할망구로 변한 엄마의 인생이 전부 당신 탓이기라도 한 듯,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시간은 얼마 없고 일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되어 버렸는걸.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꿈같이 흘러가버린 한 생의 덧없음에 대해,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는 시간들에 대해, 뒤늦게 알아 버렸으나 어찌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해. 감히 짐작건대 그건 마치 상대 팀에게 리드 당하는 가운데 9회 말을 맞은 타자의 낭패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데, 도대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의 대차대조표에 마이너스 부호가 찍히기에는, 누구보다도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고,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맡은 책임의 120%를 해내며, 검소하다 못해 금욕적으로까지 살아오신 분들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 점,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게 문제라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흔히 하듯 인생을 길에 비유할 수 있는 거라면 그 길에는 목적지가 있을 테고, 목적지에는 당연히 가장 먼저 도착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길을 가는 게 가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종점을 향해 전력질주 했던 거고, 당연히 그 대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남은 건 후회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치솟는 배신감뿐.

그런 생각을 하신 게 어디 우리 아버지뿐이겠는가. 정년을 앞두고 고배를 마신 게 우리 아버지에게 크게 작용하긴 했겠지만, 일의 성패를 떠나 아버지 연배의 자수성가한 분들이라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실 터, 종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한눈을 팔아서도, 아파서도 안 되고, 심지어 잠시 멈춰 서서 숨 돌리는 것마저 죄책감을 가지며 달리는 게 성실한 삶이라 믿었던 게 잿더미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룬 그 세대들의 공유된 가치관이니 말이다. 그런 일념으로 당신 자신과 가족들을 채찍질하며 몰아온 덕에 자식들을 이만큼 키우고, 집안도 이만큼 일으키고, 또 우리 사회도 이만큼 성장한 건 분명하다.

그렇긴 한데, 그분들 각자에게 주어졌을 한평생의 시간이란 걸 생각해보면 왠지 아릿하게 마음 한 켠이 아프다. 누구에게나 한 번씩만 주어졌을 인생을 그렇게 휘몰아쳐 달려왔건만, 종점에는 그분들을 기다리는 성대한 환영식도, 화려한 꽃다발도 없다. 종점에 가까울수록 주변 풍경은 황량해지고, 인적은 드물어지고 낯설기만 하다. 내릴 곳을 지나쳐버린 취객과 변두리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행색의 승객들마저 떠나가고 텅 빈 버스들만 줄지어 모여 서 있는 텅 빈 공터, 마지막 정리를 마치고 서둘러 불이 꺼진 관리사무소가 허술하게 서 있는 곳, 그런 곳이 그분들 삶의 목적지였단 말인가. 그게 우리가 사는 목적이란 말인가.

설마 그럴 리는 없다. 버스의 목적지가 종점이 아니듯, 이 길을 가는 목적이 종점에 도착하는 게 아니듯, 우리가 사는 목적도 단지 종점에 도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종점은 그저 차량이 모든 운행을 마치고 돌아가 정차하는 곳일 뿐이고, 때가 되면 돌아가야 할 곳일 뿐이다. 버스가 달리는 한 목적지는 그 버스에 탄 승객들이 가고자 하는 바로 그곳이며, 길이 뻗어있는 한 그 길을 걷는 것 또한 목적이 될 수 있다. 아니, 우리의 삶은 결코 노선을 따라 달리는 버스와 결코 같지 않다. 모든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행을 하고 정해진 종점으로 돌아와 운행을 마치지만, 우리의 삶은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운행을 마칠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은 종점을 향해 비교적 순조롭게 가고 계시다. 게다가 당신들 성에는 차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한 발 떨어져 생각해보면 나쁠 것도 없는 삶이었다고, 감히 말한다. 문제는 나의 삶이다. 종점만 보고 달리느라 지금 걷고 있는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시간들, 어서 종점에 도착하려고 서두느라 정거장을 그냥 지나쳐버린 맹목, 그래서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실을 것을 싣지 못한 채 속도만 내고 있는 탐욕, 당장 다음 정거장이 내 삶의 종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달리는 안일함. 종점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온 우리 아버지들이 내게 남겨준 유산이고, 인간이라는 종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리석은 DNA다. 결국 우리 삶의 종점에 이르러 한 생을 헛헛하게 느끼게 한 이유다. 햇볕 쨍한 날을 꿈꾸는 걸 포기하지 않되, 잿빛 가득한 장맛비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껴야 할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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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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