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보기/38호(2012.06)

[푸지게 한 판]공자님 보이소, 여기 대동한 놀자 판을

 [푸지게 한 판]공자님 보이소, 여기 대동한 놀자 판을

글 : 조혜지 esc2277@naver.com l 사진 : 이장수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공자님 보시라, 여기 대동(大同)한 놀자 판을!

 

수영야류/ 수영민속보존회 공연(4월 27일 토요일, 광안리 어방축제)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 현지에서는 야유(野遊)를 야류라고 부르며, ‘넓은 들판에서 노는 놀음’, 즉 ‘들놀음’의 한자어다.
 제1 양반마당은 말뚝이(하인)가 양반의 이중인격을 폭로하면서 양반의 무능과 허세를 풍자한다. 제2 영노마당은 영노가, 자신이 양반이 아니라고 거짓말하는 양반을 잡아먹는다. 제3 할미·영감마당은 제대각시와 살림을 차린 영감과 본처인 할미가 싸우다가 영감의 발길에 채여 할미가 죽는다. 제 4마당은 사자춤 마당이다. 각 마당 간은 연결되지 않는 구성으로 이뤄져있다. 1930년 전까지 수영동의 연중행사로 전래되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한때 중단되었으며, 8·15광복 후 복원되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출처] 수영야류 [水營野遊 ] | 네이버 백과사전 편집

 

 광안리 백사장 위 몽골텐트 안. 여기저기 상투 트는 아지매, 아저씨들. 야류 한 대목 뽑기도 하고, 나중에 꼬이지 말라고 발동작도 허이, 허이 맞춰 본다.
 “이거, 있재. 윽수록 성능 좋네. 허~얘 지는거 봐라.”
공연 전 선크림을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는 날피리 악사. 그 모습을 보고 팔선녀 중 하나가 “어허, 저승사자 같노. 툭툭 때리가 발라라.” 톡톡, 뭉친 선크림을 얇게 펴 발라준다.
 해가 쩡쩡, 오 분만 서있어도 목이 칼칼해지고 얼굴이 바싹바싹 굽히는 날씨. 얼굴의 세 배쯤 돼 보이는 탈들을 옆에 끼고 말뚝이와 양반님네들, 연신 물을 들이킨다.
“아,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르네,”
“막걸리 안주나. 클클 막걸리면 해결 되겠는데.”
“야야, 그 세 마당, 순서가 뭐였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그 말을 듣고 나이 지긋한 영로 한 분이 짓궂게 웃으시며
“알아서 해라이, 니~”
초립둥이, 멋쩍게 웃으며 급히 발맞춰본다.
 “두 마당부터 맞춰보자. 하나, 둘, 셋, 땡기고, 일로 와서, 빗잠 걸고, 어리데고, 자치고, 차고. 거리 재고, 키 재고.” 이때 또 다른 초립둥이가 간섭을 한다.
“발은 와 땡기는데, 발 땡기지 말고. 자, 때차고 걸고 때차고, 북치기하고, 안걸이하고, 때치기~때치기.”

 

 저쪽 구석에서 악사들 춤 장단 맞추는 모습 싱글벙글 구경 중이신 양반 할배. 곧장 ‘이리오너라’를 외칠 것만 같다. 정갈하게 다듬은 하얀 수염과 깨끗한 도포자락. 말뚝이에게 욕 씨리 먹는 양반 역할이신가, 싶은데
“아니, 아니다. 태사라꼬. 앞 못보는 봉산데, 음 뭐라케야겠노. 의원이지. 사람 병고쳐주는. 30년 됐지. 이제 영로 되가, 역할들 다 물리주고, 태사만 한다. 이 태사가 죽은 사람 살리는 양반인데, 실제로는 한 사람도 못 살리는 사람인기라. 흐흐” 우와, 놀라서 묻는다. “30년이요?? 그럼 연습은 평소에 얼마나 하세요?”
“연습이랄끼 있나, 매회 하는 건데 뭐. 이게 중요무형문화제 43호다.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줄 아나. 그냥 하는 사람들한테는, 일상인기라.”
뒤통수를 팍, 친다. 30년쯤 했으면 놀멍, 쉬멍 해도 안 되겠나, 싶어 묻는 말에 이 할배는 연습량을 ‘일상’으로 답한다.
 그 때 난처한 표정을 한 단장이 들어오는데, 노기 띤 얼굴이다.
“음향 없이 해야 되겠는데...주최 측에서 음향 준비하는 사람이 오늘 공연 있는 걸 잊어뿟단다.”
“으잉? 그라모 과장이랑 다 우짜노?”
“앰프가 도착 안 했다네... 안내방송도 못 한다칸다.”
“하이고, 마 양반과장 했다치고 길놀이나 하러가자!”
“야는, 말이 씨가 될라.”
처럭처럭. 양반님네, 애꿎은 부채살만 무릎에 굴린다.
“일단은 백구타령 무르고 바로 말뚝이 부르자.”
“그래야지, 우야겠노.”
탈속에서 웅웅웅 웅웅웅, 말뚝이와 양반님네들, 긴급 비상 대책 회의를 연다.

 

“일단 나가야지 우야겠노!”
“그래 나가보자!”

 

말뚝이 모래 무대 위에 나서자 하나둘 사람들이 객석에 모이기 시작한다. 무거운 디에스엘알을 목에 맨 눈 파란 관객하나가 가이드에게 “수영야유?”하고 묻는다. “수영 야.류.” 야무진 가이드가 ‘알(r)'발음 더 굴려 제대로 알려준다.
“할머니, 도깨비다!” “응, 도깨비네, 말뚝이 도깨비.”

 

말뚝이 휘청하더니 여유롭게 한 바퀴 주저앉아 일어서며 막을 올린다.
-에에에이 에에에 에에야-
-어얼쑤우 조오타!
힘없이 떨어지다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 팔과 다리. 바닷바람에 장단 맞춰 펄럭펄럭 나부끼는 광목 자락.
-쉬이~
양반님네들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떠드시다가
-그거 좋지 -그것도 좋구만!
주고 받더니
-이놈 말뚝아~ 이놈, 말뚝아~!
하고 말뚝이 불러내신다.
-예,이~

 

“도깨비 나왔다!”
“응, 도깨비 안녕, 해봐.”
“도깨비가 제일 잘 추네.”
객석의 꼬마손님들, 말뚝이 다가올 적마다 자지러지게 울거나, 배 뒤집고 웃거나, 각양각색으로 말뚝이를 맞는다.

 

헤벌쭉 양 갈래로 입 찢으며 말뚝이 등장.
말뚝이 등장에 풍악소리 높아지고, 한바탕 놀아난다. 말뚝이, 가장 높이 날고 제일 늦게 앉는다. 양반 아들놈 툭툭 건들다가 양반들 갑자기 놀래키기도 하고, 흙도 다듬고 연신 정신없이 재롱부린다.

 

 음향이 없어 대사는 탈 속에서 웅웅웅, 웅웅웅. 관객들 “와 소리가 없노? 마이크 없나?” 여기저기서 투덜투덜. 이 일을 어쩌나 싶을 때마다, 악사들 더 신명나게 흥을 돋운다. 꽹과리 셋에, 징 셋, 북 셋, 장구 셋. 3333악사 밴드들, 짝 맞춰 날피리 앞장서는 소리대로 무대를 이끈다.
 

 갑자기 시꺼먼 보자기 쓰고  도깨비 하나 무대 위로 뛰어오른다.
-니, 잡아 묵는다!
멀뚱히 서있던 양반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는 양반 아니다!
아랑곳 하지 않고 양반 좇는 도깨비. 양반, 잠시 숨 고르더니 도깨비에게 제 몸값을 묻는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
-백 냥? 천 냥?
-아니, 내가 양반을 잡아먹어야, 하늘에 승-천한다!
아무 소용없음 알고 양반, 내가 누군지 알고! 으름장 놓으며 마지막 발악을 하는데
-우리 외할아버님은 이조판서를 지내고
에헤이~
-우리 할아버님은 영의정을 지내셨고
어허~
-나는 만리 박사다, 이놈아.
허, 참~

 

악사들 중간 중간, 자기자랑에 심취한 양반님 비웃는 추임새 놓치지 않는다.
둥둥, 둥둥둥둥. 장단이 서서히 빨라지더니 도깨비, 양반에게 슬금슬금 다가간다. 할머니 품의 꼬마 관객님,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잡아먹어라!” 외친다.  아이의 곰살맞은 말투에  기분 좋은 웃음이 터진다.

 

양반, 알아차리고 도망을 놓다가 결국 검은 보자기 속으로 꿈틀꿈틀 잡아먹힌다. 고통스럽게 몸을 꼬아대며 도깨비와 함께 무대 밖으로 빠져나간다.
무대 밖, 탈 벗고 모습 드러낸 양반님, 땀으로 머리를 감으셨다. 정말 도깨비에게 먹혔다 다시 살아온 듯이 기진맥진한 얼굴. 연신 물을 들이키신다.

 

도깨비와 양반이 사라진 모래 무대 위로 허리 직각으로 굽은 할미가 실룩실룩 들어오신다.
날피리 든 악사를 요리 뜯어보고 조리 뜯어보더니
-우리 영감 못 봤는교?
-영감 말이요, 저~리 갔소. 퍼떡 가 보이소.
-영감아~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객석을 향해 돌진한다. 그러곤 갑자기 객석 가운데, 엄마 품에 안긴 서너살배기의 생수통을 빼앗아 뚜껑을 열고는 “몇 살?” 하더니 천연덕스럽게 벌컥벌컥 들이킨다. “할매가 아 물을 뺏아묵네! 클클”
 날피리 악사의 말에 다시 총총총 무대로 돌아오는 할미.
-영감아, 영감아~
 애타게 부르는 영감은 젊고 이쁜 새각시와 놀아나느라 바쁘시다. 툭탁 툭탁 영감에게서 요망할 각시년을 쫓아내는 할매. 할배가 방구끼고 성내며 할매를 밀어다 붙인다. 쩌그덩, 하고 모래 위에 쓰러진다.  ‘이 할매가 와 카노.’ 싶어 할배, 발로 슬- 밀다, 흔들어 깨우다 한다. 일어나지 않는 할매. 아이쿠야, 그제서야 다급히 태사 어른(동네 의원)을 불러낸다.
-태사 좀 불러~주~이소~
관객들과 악사들, 다같이
-태사님~ 태사님~
지팡이 짚고 절뚝절뚝 고개질하며 들어오는 태사님. 앞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무대로 오르다 광안리 바다로 향하는 태사님.
-저 태사 봐라, 보소, 바다로 들어갈라꼬예?
악사가 방향을 수정해주자, 그제야 할매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피는 태사. 이미 숨넘어간 할매 다리를 방정맞게 들었다 놨다 저었다, 풀었다 하더니 할배에게 할매의 숨넘어감을 알린다. 킬킬 클클,  철없는 관객님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웃기 바쁘다.
-아이고- 아이고오오-
할배의 후회막심한 곡소리. 어느새 상주꾼들 들어와 할매를 염하고, 들쳐 멘다. 그리고 한 판, 신나게 상놀이 시작한다. 아이고, 죽은 할매 멀미할까 무섭다.
 상여가 나가고 웬 발 10개 달린 사자 한 마리 들어와 껄뚝껄뚝 고개놀이를 시작한다. 뱃속에서 새끼한마리 튀어나오더니 흥이 났는지 어미 사자 등을 넘나들며 촐랑촐랑 놀아난다.  꼬마 하나가 일어나 초롱초롱한 낯빛으로 연신 발을 구른다.
  ‘그래서, 그리하여’가 없다. 갑자기 아이고 판이 어느새 얼쑤 판이 된다. 그래도 아무도 따지는 이 없다. 본디 이 놀음이 가진 이름은 야류(野旒)라 한다. 들에서 놀자 판이었던 것이, 지금은 모래사장에서도 놀고, 아스팔트에서도 논다. 그러나 저러나, 몇 백 년 전 ‘놀자’든, 지금 ‘놀자’든 제대로 신명나게 한 놀음판인건 똑같다.
 높이 올라서서 보니 넓게 펼친 빛깔 좋은 바다와 둥그런 마당이 하나로 겹쳐 보인다. 마치 바다 위에서 넘실넘실 노는 모양이로구나. 객석도 들썩들썩, 왁자지껄 웃음소리와 조오타! 얼씨구! 갖가지 추임새를 붙이면서 어깨장단으로 파도를 친다. 무대와 객석이 출렁출렁 크게 어울린다. 기분 좋은 착시. 조오타! 좋아!